22. 09 / 9와 숫자들을 왜 좋아하나요?
9와 숫자들이라는 밴드를 좋아한다. 9숫을 좋아하며 또다른 팬과도 친구가 되었다. 바로 찬경. 우리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공연(딱 1년 전)을 같이 보고 그때 처음으로 함께 식사를 하고(술을 마시고) 의기투합을 했다. 우리같은 9와 숫자들 팬을 인터뷰 하자고. 2월부터 준비하고, 팬들을 섭외하다가, 3월부터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인터뷰하기 전 우리는 스스로에게 먼저 질문했다.
우리는 9와 숫자들을 왜 좋아하는 걸까?
질문에 답을 적고 서로 그 파일을 공유했던 기억이 난다. 그 파일을 오늘 다시 보면서, 다시금 ‘나는 왜 9와 숫자들을 좋아하는가’ 생각해보았다. 읽으면서 부분부분 조금 수정했지만, 올해 2, 3월에 9와 숫자들을 좋아하던 내 마음 그리고 지금의 마음이 담겨 있다. 아래는 자문자답.
Q. 9와 숫자들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대학교 1학년 때, 친구가 ‘그리움의 숲’이라는 노래 특이하고 좋다면서 뮤직비디오 링크를 보내줬어요. 그 친구와는 고등학생 때부터 영화나 음악 코드가 잘 통했기 때문에, 그 추천이 좀 저에게 잘 먹혔어요. 바로 클릭해서 들었죠. 뮤직비디오 보면서 노래에 푹 빠졌어요. 그 이후로 9와 숫자들의 1집을 많이 듣고 또 들었죠.
9님의 목소리에 일단 놀랐어요. ‘그리움의 숲’을 처음 들었을 때, 세상에 존재하는 목소리일까 생각했답니다.
너의 눈빛은 별처럼 밝아서
우리 집에서도 다보여
나도 알아 한 걸음씩 다가갈수록
거룩한 너의 광채는 내 눈을 멀게 하겠지
몽롱하고, 아득했어요. 아련한 느낌을 자아내는 목소리. 빨간 연기를 피워도, 빨간 모자를 써도 나는 왜 구조받을 수 없는지... (노래 가사에요) 들으면서 계속 생각도 하게 되구요. 밝은 멜로디, 생각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가사. 아름답죠 정말. (객관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저만의 평가!)
그리고 저는 구숫이 다양한 면을 지니고 있어서 좋아해요. 밝고 어두워서 좋아요. 저는 저라는 사람 자체가, 밝음과 어두움을 동시에 많이(?)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높낮이가 많다고 해야 하나요? (음, 물론 사람이라면 밝음과 어두움을 동시에 다들 지니고 있겠지만...)
9와 숫자들은 그 부분을 다 지니고 있으니까 매력적이었어요. 9숫의 밝은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같이 밝아져요, 어두운 노래를 들으면 한없이 같이 가라앉아요. 그런데 그렇게 밝든, 어둡든 9숫의 노래를 듣고 나면 마음이 조금 차분해져요. 밝았던 마음도, 어둡고 슬펐던 마음도.
20대 중반에, 삶이 버겁고 가라앉고 지쳤을 때가 있는데요. 방에서 9숫 음악을 틀어뒀거든요. 몇 곡 듣다가 일어났어요. 그 에너지 덕분인지, 집도 조금 치우고 내 할 일을 찾아 하게 되더라구요. 읽으면서, 뭐야, 하는 분도 있으시겠지만, 정말 그랬어요. 이런 힘을 주는 밴드가 삶에 있는 분들은, 무슨 말인지 알겠죠...?
그리고 9숫은 가사죠. 가사. 가사가 시에요.
Q. 가장 사랑하는 노래가 있나요?
솔직히, 이런 질문은 어려워요. 한 노래를 꼽기가 참 힘들어요. 좋아하는 노래 몇 곡에 대해서 말해볼게요.
1집 [9와 숫자들]은 밝고 어두워서 좋아요. 즐거운 음악을 듣고 싶을 땐 ‘말해주세요’, ‘슈거 오브 마이 라이프’를 들어요. 그리고 즐거운 음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선유도의 아침’이에요. 듣다 보면 어깨가 들썩...!
1) 9와숫자들 - 선유도의 아침 20180909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 (9님만 계속 나오는 영상)
2) 190608 9와 숫자들(9 and the Numbers) - 선유도의 아침 (화질은 조금 안 좋지만, 공연 분위기 느껴지는 영상)
더 어두운 마음으로 가라앉고 싶을 땐 ‘삼청동에서’, ‘낮은 침대’를 들어요. 9와 숫자들의 어두움도 무척이나 좋아한답니다. 즐거운 것도, 어두운 것도 아닌, 오묘한 마음이 들게 만드는 노래는 연날리기. 들어보세요. 제가 한 말의 뜻을 조금 이해하실 수도 있어요.
[유예] 앨범도 말해볼게요. 2012년 11월 15일에 발매됐고요. 유예에 들어있는 노래를 평소에 많이 듣지는 않아요. 그러나 공연에서 나오면 정말 반갑고 좋아요! 평소에 듣지는 않지만, 이미 노래가 나왔을 때 많이 듣고 또 들었기에 다 외우고 있는 앨범이에요. 그래서 공연에서 들으면 진짜 좋아요. 눈물바람, 몽땅, 그대만 보였네!
공연 때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플라타너스. 플라타너스는 진짜 실제 라이브로 보는 게 느낌이 확 달라요. 웅장하고 막 느낌이... 엄청나요. (공연을 가서 보셔야...) [온스테이지] 118. 9와숫자들 - 플라타너스
곰곰이 생각해보니, 보물섬. 평소에 가장 많이 듣는 노래들이 보물섬 앨범에 있네요. 초코바는 전주부터 신나고요, ‘톱니바퀴’는 “그대를 불러보네~” 할 때 드럼 소리가 저에겐 환상적이에요. ‘한강의 기적’은 “나 처음 너를 봤을 때~” 이 부분 들을 때부터 마음이 두근두근거리고요.
그리고.... ‘창세기’ 이 노래를 빼놓을 수 없죠. 아주 잔잔해요. 듣고 있으면 마음이 잔잔하게 요동쳐요. 가장 아름다운 가사라고 생각해요 저는. 9와 숫자들 - 창세기
그대는 내 아침의 볕
그대는 내 공기의 열
수억 광년 어둠을 뚫고
날 부르는 별
그대는 날 이끄는 길
그대는 날 지키는 법
수백만 년 정적을 깨고
날 흔드는 손
포근한 그 품 속에 가득
안겨있을 때면
기도해요 난 지금이
내 마지막 순간이길
그대 그 아름다운 미소
그 밖에 난 없어요
유일한 나의 세계
매일이 하루 같은 나의 꿈
3집 [수렴과 발산]도 빼놓을 수 없죠. 이 앨범에서는 ‘드라이플라워’를 가장 먼저 말하고 싶어요.
9와 숫자들 - 드라이 플라워 [RDiMUSIC Live Series]
이 노래의 우울한 분위기를 좋아해요. 처음에 기타 연주로 시작해서 드럼이 들어옵니다. 이 부분만 한없이 계속 들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다 들어오는 9님 목소리.
아무리 날 지켜내고 싶어도~ 창틀에 말려두진 말아요~
향기와 색을 잃을 바에는.... 다시 필 날을 꿈꾸며 시들게요
정말, 제일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후반부에 기타 소리가 강해지는 부분 있잖아요. (이걸 음악적으로 무어라 표현해야 할 지!) 그 부분은 공연에서 볼 때 압권이에요. 저는 기타와 베이스보다는 드럼 소리가 돋보이는 부분을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이 노래에서 이 부분만큼은 기타 연주가 멋지다고 생각해요.
‘평정심’은 정말, 평정심을 찾고 싶을 때에 찾아 듣습니다. 멜로디도 좋고 가사도 좋고. 들을 때마다 가사에 감탄해요. 어떻게 이런 가사를 썼을까? [Studio Live] 9와 숫자들 - 평정심]
비틀 비틀 비틀 비틀 / 비틀거리네
울먹 울먹 울먹이는 / 달그림자 속에서
역시 내게 너만한/ 친구는 없었구나
또다시 난 슬픔의 / 품을 그렸어
내일은 더 나을 거란 / 너의 위로에
대답할 새 없이 꿈으로/ 평정심
이 노래를 들으면서 ‘너만한 친구는 없었구나’라고 생각해요.
Q.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나요?
노래에 대해 너무 길게 이야기를 했네요. 저는 공연을 많이 보러 다니는 팬은 아닌 편이에요. 그래서 봤던 공연이 적으니, 다 기억에 남고 좋아요. 그래도 가장 기억남는 건 지난해 가을에 본 공연이요.
제가 2019년엔 1월에 한 번 공연 보고, 그 이후로 못 봤어요. 그 해엔 9숫이 정말 공연을 매달 했던 때인데 말이죠. 제 사정상 볼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10월에 9숫을 보러갔거든요. 10월 9일. 거의 10개월 만에. 공연을 보는데 9숫이 제 마음을 어루만져준다는 생각을 깊이 했어요. 특히, 그날 셋리스트 중에 ‘여러분’이 있는 거에요. 저는 그 노래 부르는 공연은 처음이었거든요. 들으면서 눈물이 났어요. 엄마도 생각나서 눈물이 또르륵 흘렀어요. 엄마도 저한테서 9와 숫자들 이야기를 오랜 시간 들었으니까, 멤버들 중 두 사람의 얼굴은 아는 정도였거든요. 엄마도 알고 있는 밴드. 마음 속으로, ‘엄마, 9와 숫자들은 여전히 좋네’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10년을 함께한 밴드에요. 내가 기쁜 시절에도, 2019년처럼 너무나 슬픈 시절에도 9와 숫자들이 이렇게 노래하는구나,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내가 살아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9숫의 공연이 큰 위로로 다가왔어요.
Q. 9와 숫자들이 더 유명해지길 바라나요?
네! 더 유명해지면 좋겠어요. 팬 인터뷰 하면서 그런 이야기 했던 기억 나요. 잠실 경기장에서 공연해서 막 튕기고, 못 보면 슬프긴 하겠지만, 그래도 그 정도로 유명해지면 좋겠다고요. 그럼 9숫이 음악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밴드니까,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Q. 9와 숫자들에게 바라는 점?
건강하게 오래오래 9숫 해주세요. 그거면 돼요.
9와 숫자들의 팬인 찬경이가 썼던 글도 너무 좋다. 그래서 일부도, 살짝 옮겨본다. (물론 찬경이에겐 이야기하고 허락받음)
9와 숫자들의 매력
1. 기획력을 자랑하는 밴드
2. 고민하는 밴드
3. 변화하는 밴드
4. 노랫말이 아름다운 밴드
5. 세상을 보는 눈이 되어주는 밴드
'이런 이유들로 나는 구숫이 좋고, 아무것도 아닌 내가 구숫을 좋아해서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좋은 사람’이란 세상에 분명히 존재한다 믿고 근접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진다. 구숫의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는 먼저 자문한다. ‘나 스스로에게 떳떳한 하루하루를 보내왔나?’ 공연을 보고 나면 용기가 생긴다. 고민하고 반성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걸 포기하지 않을 용기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에 실패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을 굳센 마음이. 방전된 날이면 어김없이 구숫이 떠오르고, 구숫의 노래를 들으면 다시 힘을 내보게 된다. 구숫을 좋아하는 일은 자랑스럽다. 무엇보다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게 그 누구도 아닌 구숫이라서 기쁘다. (덕심이 차올라서 고갤 들어...)'
+ 아, 마지막으로 글 쓰다가 이 영상을 봤는데, 꽤 좋네요. 9와 숫자들이 I'm not the only one을 불렀어요.
[앞모습 LIVE] 9와 숫자들 - I'm not the only one
https://www.youtube.com/watch?v=KBsinUyhXXQ
구보라
보고 듣고 씁니다.
인스타그램 아이디는 '9_bora', 1990년 9월에 태어났고, 9와 숫자들을 좋아해요.
오늘 일러스트에 살짝 변화가 생겼는데, 보이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