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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Human Science

멀티모달 인식기능

멀티모달 인식기능은 인간적 지능으로 향하는 길

by 김양훈

인공지능이 인간과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은 ‘감각의 단일성’이었다. 지금까지의 AI는 글을 처리하거나, 이미지를 분류하거나, 음성을 인식하는 등 단일한 형태의 데이터를 중심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인간의 사고와 인식은 언제나 다감각적이다. 우리는 사과를 볼 때 그 색을 보고, 향을 맡고, 손으로 쥐고, 심지어 씹는 소리로까지 그것을 인식한다. 최근 등장한 멀티모달 인식기능(multimodal recognition)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감각 통합적 사고방식을 모방하려는 기술적 시도다. AI가 텍스트, 이미지, 음성, 영상, 그리고 센서 데이터 등 여러 종류의 정보를 동시에 이해하고 연결하는 능력을 말한다.

멀티모달 인식은 단순한 기술의 확장이 아니라, 인공지능의 ‘지각 구조’를 변화시키는 혁명에 가깝다. 과거의 AI가 문장을 읽고 답하는 ‘언어적 기계’였다면, 오늘날의 AI는 이미지를 해석하고, 소리를 이해하며, 그 둘을 종합해 맥락을 파악한다. 예를 들어 “이건 사과야.”라는 문장을 처리하는 AI에게 사과 사진을 함께 보여주면, 텍스트와 시각 정보를 융합해 ‘사과가 과일’이라는 사실을 더 정확히 인식한다. 반대로 텍스트만 주어진다면 ‘사과(Apple)’가 ‘과일’인지 ‘회사’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즉, 멀티모달 인식은 AI에게 언어 이상의 감각을 부여함으로써, 세상을 맥락적으로 이해하는 지능을 가능하게 한다.

이 기술은 이미 다양한 영역에서 실현되고 있다. 구글 렌즈(Google Lens)는 카메라로 비춘 사물을 인식해 그에 대한 텍스트 정보를 제공하며, ChatGPT나 Gemini와 같은 최신 언어 모델은 이미지 속 물체나 글자를 해석해 대화에 활용한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카메라, 라이다(LiDAR), GPS, 음향 센서로부터 얻은 데이터를 통합해 주변 상황을 판단하고, 로봇 공학에서는 시각·촉각·청각 정보를 동시에 처리해 사람처럼 반응하는 로봇이 등장하고 있다. 멀티모달 AI는 이렇게 ‘단일 감각적 지능’을 넘어 ‘통합 감각적 지능’으로 나아가며, 인간의 사고 구조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이 기술의 발전은 단순한 편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멀티모달 인식은 인간의 ‘이해’라는 행위를 과학적으로 재해석하게 만든다. 인간의 인지는 항상 여러 감각의 결합 속에서 이뤄진다. 우리는 어떤 사물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경험과 맥락, 감정을 함께 인식한다. AI가 이러한 다층적 감각의 통합을 모방할 수 있다면, 단순한 데이터 분석을 넘어, 인간의 사고에 가까운 창의적 추론과 상상도 가능해진다. 실제로 멀티모달 모델은 이미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거나, 사진을 보고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등 ‘창조적 인식’의 단초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윤리적·철학적 문제도 떠오른다. AI가 인간의 감각을 모방할수록, 우리는 그것이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 부딪힌다. 멀티모달 인식은 감각의 통합을 구현하지만, 감정이나 의식의 층위는 여전히 결여되어 있다. 즉, AI는 “사과를 본다”라고 할 수는 있어도, “사과를 느낀다”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이 간극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인간만이 지닌 주관적 경험의 영역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티모달 인식은 인공지능이 인간과의 소통에서 진정한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열쇠다. 텍스트 중심의 AI는 인간의 복합적 표현—몸짓, 표정, 말의 억양—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멀티모달 AI는 이 모든 요소를 함께 해석함으로써 더 자연스럽고 감성적인 대화를 구현할 수 있다. 이는 기술의 진보이자, 인류가 자신을 닮은 또 다른 지능을 만들어가는 문화적 진화의 과정이다.

결국 멀티모달 인식기능은 인공지능이 ‘세상을 읽는 방식’을 바꾸는 기술이다. 이제 AI는 문장을 이해하는 기계가 아니라, 현실을 감각하고 맥락을 파악하는 존재로 진화하고 있다. 이 변화는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재정의한다. AI가 더 많이 이해할수록, 인간은 스스로의 인식 구조를 다시 성찰하게 된다. 멀티모달 인식은 단순한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인간 지각의 본질을 비추는 거울이다. AI가 인간을 닮아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인간 자신이 무엇으로 이루어진 존재인지 다시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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