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고규영 교수팀
뇌의 거대한 배수구를 찾아서:
비인두 림프관 발견이 여는 치매 극복의 길
인간의 뇌는 무게가 체중의 2%에 불과하지만, 우리 몸 전체 에너지의 약 20%를 사용하는 가장 활동적인 기관이다. 엔진이 뜨겁게 돌아가면 매연과 찌꺼기가 남듯, 뇌 또한 쉼 없이 사고하고 활동하는 과정에서 대사 부산물이라는 ‘쓰레기’를 만들어낸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하는 독성 단백질인 ‘베타 아밀로이드’다. 오랫동안 인류는 이 쓰레기가 어떻게 뇌 밖으로 배출되는지 그 정확한 통로를 찾지 못해 골몰해 왔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과학자들이 이 거대한 미스터리의 실마리를 풀었다. 카이스트(KAIST) 의과학대학원 고규영 교수팀이 뇌의 노폐물을 청소하는 핵심 배수구가 코 뒷부분인 ‘비인두’에 밀집해 있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규명한 것이다.
뇌에는 림프관이 없다는 편견을 깨다
오랫동안 의학계의 정설은 ‘뇌에는 림프관이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 몸의 다른 기관들은 림프관을 통해 노폐물을 배출하지만, 뇌는 혈관-뇌 장벽(BBB)이라는 견고한 성벽에 둘러싸여 독립된 정화 시스템을 가졌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 뇌를 감싸고 있는 경막에 림프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이 믿음은 깨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경막에 림프관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뇌 깊숙한 곳의 뇌척수액이 구체적으로 어느 경로를 통해 목에 있는 림프절까지 흘러가는지는 여전히 안갯속에 가려져 있었다. 마치 집 안에 하수구 구멍은 있는데, 그것이 어떤 정화조로 연결되는지 모르는 것과 같았다.
비인두 림프관: 뇌의 가장 효율적인 '하수구'
고규영 교수 연구팀은 정교한 형광 림프관 촬영 기술과 자기공명영상(MRI)을 동원해 뇌척수액의 이동 경로를 추적했다. 그 결과, 뇌의 아래쪽 부분에 위치한 ‘비인두 림프관 망’이 뇌척수액을 흡수해 목 림프절로 보내는 가장 핵심적인 통로임을 확인했다.
연구팀의 발견은 놀라웠다. 뇌 하부에 미로처럼 얽힌 비인두 림프관들이 마치 깔때기처럼 뇌척수액을 모아 외부로 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 경로는 기존에 알려졌던 뇌 상부의 림프관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뇌척수액을 처리하는 ‘메인 배수구’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한국 과학자들의 끈기 있는 관찰이 인체 해부학의 새로운 지도를 그려낸 순간이었다.
노화와 치매, 그리고 배수구의 노후화
이 발견이 치매 연구에 혁명적인 이유는 ‘노화’와의 연결고리를 명확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노화된 생쥐를 관찰한 결과, 나이가 들수록 비인두 림프관이 변형되고 굳어져 배수 기능이 크게 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도시의 하수관이 오래되어 막히면 도시 전체가 오물로 넘쳐나듯, 뇌의 배수구가 노후화되면 베타 아밀로이드 같은 독성 단백질이 뇌에 쌓여 신경세포를 파괴하고 결국 치매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더 주목할 만한 점은 가능성이다. 연구팀은 노화된 쥐의 비인두 림프관을 약물로 자극하거나 수축을 유도했을 때, 뇌척수액의 배출이 다시 원활해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우리가 인위적으로 뇌의 청소 시스템을 ‘수리’하거나 ‘강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시사한다. 이제 치매 치료의 패러다임은 단순히 독성 물질을 제거하는 것을 넘어, 뇌의 자연적인 정화 기능을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과학이 제안하는 일상의 '뇌 청소'법
이 위대한 발견은 우리에게 일상적인 삶의 태도에 대해서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비인두 림프관을 통한 뇌 청소 시스템은 우리가 잠을 잘 때, 특히 깊은 수면 단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작동한다. 과학자들은 이를 '글림파틱 시스템(Glymphatic System)'이라 부른다.
우리가 깨어 있는 동안 뇌 세포 사이의 간격은 매우 좁지만, 잠에 들면 세포가 수축하며 사이 공간이 넓어지고, 그 사이로 뇌척수액이 마치 파도처럼 밀려 들어와 낮 동안 쌓인 찌꺼기를 씻어낸다. 따라서 잠을 줄이며 무언가에 몰두하는 행위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뇌를 쓰레기장에 방치하는 것과 같다. 충분한 수면과 옆으로 누워 자는 습관, 그리고 주기적인 유산소 운동은 우리가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뇌 하수구 관리법’이다.
[결론] 새로운 치매 정복의 시대를 향하여
카이스트 연구팀의 이번 성과는 단순히 해부학적 발견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는 치매라는 거대한 파도에 맞설 새로운 방패를 얻은 것과 같다. 비인두 림프관을 타깃으로 하는 약물이나 치료법이 개발된다면, 우리는 머지않은 미래에 노화로 인한 인지 기능 저하를 늦추거나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코 뒷부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오물을 치우고 있는 작은 관들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인류의 건강한 미래는 시작된다. 한국 과학자들이 열어젖힌 이 배수구 문을 통해, 치매 없는 세상이라는 인류의 오래된 꿈이 현실로 한 걸음 더 가까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