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백석 번역 시 전집』은 시인 백석이 해방 이후 북한에서 작업했던 방대한 번역 작품 중 하나다. 백석은 한국의 천재 시인에 머물지 않고, 러시아 문학을 우리말로 옮기며 한국 현대시의 지평을 넓힌 '문학적 매개자'이기도 했다. 한편 이 번역 작업의 이면에는 분단이 가져온 개인사적 비극이 숨어 있기도 하다.
변방의 고독, 북방의 언어로 피어나다:
백석의 러시아 시 번역과 그 문학적 영토
1. 시인의 붓으로 옮긴 러시아의 영혼
백석에게 있어 번역은 단순한 외국어의 치환이 아닌, 자신의 시 세계를 확장하고 당대 북한의 문학적 폐쇄성을 극복하려는 처절한 시도였다. 1948년 이후 북한 문단에서 활동하며 그가 마주한 현실은 시작 활동에 대한 자유의 억압이었다. 그는 시를 짓는 대신 러시아 시를 번역하며 자신만의 문학적 '내심의 망명지'를 구축했다. 이러한 태도는, 이를테면, 북한 체제를 향한 소심한 저항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번역한 푸시킨, 레르몬토프, 마야콥스키의 시들은 백석 특유의 토속적이고 유려한 한국어 문체와 결합하여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 특히 푸시킨의 서정시를 옮길 때 보여준 그의 언어 감각은, 러시아어의 음악성을 한국어의 리듬으로 재창조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단순한 시구(詩句)의 직역을 넘어선 '시적 재창조' 작업이었다.
2. '북방 정서'의 공명과 시적 연대
백석의 초기 시(詩)들이 평안도 방언을 바탕으로 한 북방의 향토색을 띠었다면, 그의 러시아 시 번역은 그 '북방 정서'를 유라시아 대륙의 광활한 서정으로 연결하는 바탕이 되었다.
*동질적 고독: 백석이 주목한 러시아 시인들은 대개 체제와 불화하거나, 광막한 자연 속에서 인간의 근원적 고독을 노래한 이들이었다. 그는 러시아 시인들의 고독에서 자신의 처지를 발견하고, 이를 한국적인 정서로 녹여냈다.
*언어의 확장: 백석은 번역 과정에서 자신이 아끼던 평안도 방언과 고어를 적절히 배치하여, 러시아의 낯선 풍경을 우리 민족의 보편적 정서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는 한국 현대시가 서구 중심의 모더니즘에서 벗어나 슬라브적 서정이라는 새로운 자양분을 섭취하는 계기가 되었다.
3. 번역, 시적 실천으로서의 저항
해방 후 북한의 문학 환경은 점차 도식화된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굳어져 갔다. 창작의 자유가 제한된 상황에서 백석이 선택한 '번역'은, 직접적인 발언 대신 위대한 고전의 목소리를 빌려 문학의 본질을 지키려 한 우회적 저항이었다.
그가 번역한 시집들의 서문이나 해설을 보면, 비록 당대의 이데올로기적 요구를 반영하는 듯 보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항상 인간의 순수한 감정과 삶의 비애에 대한 깊은 애정이 흐르고 있다. 위 사진 속 전집에 수록된 시들은 시인 백석이 겪었을 고통스러운 침묵의 시간을 견디게 해 준 버팀목이었을 것이다.
4. 문학사적 의의: 경계를 허무는 시적 번역
백석의 러시아 시 번역은 한국 문학사에서 두 가지 기여를 했다.
첫째, 한국어 표현의 극대화다. 그는 러시아어의 낯선 비유를 한국어의 풍부한 어휘로 치환하며 우리말의 수용 폭을 넓혔다.
둘째, 세계 문학으로서의 한국시 정립이다. 백석의 번역을 통해 러시아 문학은 한국 문인들에게 모방의 대상만이 아닌, 깊은 내면적 공감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결론] 영원한 북방의 시인, 백석
백석은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살다 간 시인이었지만, 그의 펜 끝에서 탄생한 러시아 시의 번역어들은 결코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는 시베리아의 눈보라와 평안도의 세찬 바람을 문학이라는 하나의 용광로에서 녹여냈다.
오늘날 우리가 백석의 번역 시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 안에서 타국 시인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그 목소리를 빌려 끝내 지키고자 했던 백석 자신의 준열한 시 정신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번역을 통해 세계와 소통했고, 그 소통의 기록은 우리 문학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왼쪽: 북한의 인민증 사진, 오른 쪽: 부인 이윤희, 뒤쪽: 차남과 딸. 젊어서 그 잘 생긴 백석, 초라한 말년의 인민복 차림에다 볕에 그을린 얼굴.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시인 백석. 이윤희는 두 번째 부인으로 둘 사이에는 위 사진 속 아들과 딸을 두었다. 한때 평양에서 작가 활동을 하며 살았으나, 당성이 약하다는 소위 <붉은 편지 사건>과 동시를 써서 자평한 글이 노동당의 비위를 건드렸다. 당국의 북한식 하방(下放)으로, 백석은 한번 가면 나올 수 없다는 삼수갑산으로 들어가 양을 키우고 농사를 지며 말년을 살다 세상을 떠났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