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분리 파괴, 그리고 독재와 종교의 야합
신정정치와 권위주의의 불온한 야합: '크리스토파시즘'의 유령과 한미 극우 동맹
21세기 민주주의가 직면한 가장 기묘하고도 위협적인 현상은 첨단 기술의 발전이나 경제적 격차만이 아니다. 오히려 근대 국가가 분리해 놓았던 '종교'와 '정치'가 다시금 기괴한 형태로 결합하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는 날카로운 도구가 바로 '크리스토파시스트(Christofascist)'이다. 1970년대 독일 신학자 도로테 죌레가 나치즘에 부역했던 독일 기독교의 과오를 반성하며 내놓았던 이 용어는, 반세기 뒤 태평양 양안의 극우 정치를 설명하는 가장 시의적절한 키워드로 부활했다.
1. 크리스토파시즘의 본질:
신의 이름으로 행하는 배제의 정치
크리스토파시즘은 단순히 '기독교 신앙을 가진 정치인'을 뜻하지 않는다. 이는 기독교적 근본주의와 파시즘적 통치 수단이 결합한 이데올로기다. 이들의 핵심 논리는 명쾌하다. 그리고 위험하다. "국가는 하나님의 법(Biblical Law)에 의해 통치되어야 하며, 이에 반하는 모든 세력은 국가의 적이자 신의 적"이라는 논리다.
여기서 파시즘적 요소는 '적과 아군의 명확한 구분', '강력한 권위주의 지도자에 대한 맹종', 그리고 '소수자에 대한 물리적·법적 폭력의 정당화'를 통해 드러난다. 이들에게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다원주의와 관용은 신앙을 오염시키는 불순물에 불과하다.
2. 도널드 트럼프와 미국적 크리스토파시즘의 폭발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은 미국 내 잠자고 있던 크리스토파시즘의 화약고에 불을 붙인 사건이었다. 도덕적으로 결함이 많아 보이는 트럼프가 어떻게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는가는 정치학적 미스터리처럼 보였으나, 그 이면에는 철저한 이데올로기적 거래가 있었다.
2.1. '선택받은 자'라는 서사의 구축
트럼프는 자신을 성경 속 인물 '고레스 왕'에 비유했다. 비록 이방인이지만 하나님의 도구로 쓰여 이스라엘을 구원했듯이, 자신도 기독교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전사라는 서사다. 이는 극우 기독교 세력에게 그가 저지르는 어떤 부도덕함도 '영적 전쟁'을 위한 불가피한 과정으로 치부하게 만드는 면죄부를 주었다.
2.2. 사법부 점령과 '로 대 웨이드' 판결의 폐기
트럼프 행정부의 가장 큰 성과는 보수적 연방 대법관들을 대거 임명한 것이다. 이는 2022년 낙태권 보장 판결(Roe v. Wade) 폐기로 이어졌으며, 이는 미국 크리스토파시즘이 거둔 가장 상징적인 승리가 되었다. 종교적 신념이 헌법적 권리를 압도하는 신정정치적 경향이 사법부를 통해 제도화된 것이다.
2.3. 1월 6일 의사당 폭동과 '기독교 민족주의'
2021년 미 의사당 점거 폭동 현장에는 "Jesus Saves", "In God We Trust"라는 깃발이 성조기와 나란히 펄럭였다. 이는 종교적 열광이 정치적 선동과 결합했을 때 얼마나 파괴적인 폭력으로 분출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크리스토파시즘의 결정적 장면이었다.
3. 한국의 극우반공기독교:
'반공'이라는 이름의 신성한 전쟁
미국의 상황은 한국의 극우 기독교 세력에게 강력한 영감과 명분을 제공했다. 한국의 극우 기독교는 서구의 기독교 우파와는 다른 독특한 토양 위에서 성장했는데, 바로 '반공주의'라는 절대적 교리다.
3.1. 반공과 복음의 일체화
한국의 보수 기독교는 해방 이후 북한 정권에 의해 박해받고 내려온 월남 기독교인들의 정서를 근간으로 한다. 이들에게 북한은 단순한 주적이 아니라 '사탄의 세력'이며, 반공은 신앙적 의무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좌파' 혹은 '진보' 세력은 종교적으로 척결해야 할 악으로 규정된다.
3.2. 광장의 정치와 성조기·이스라엘기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극우 집회에서 성조기와 이스라엘기가 태극기와 함께 등장하는 것은 한국형 크리스토파시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는 미국(기독교 문명의 수호자) - 이스라엘(성서적 성지) - 한국(반공의 보루)을 잇는 영적 동맹 체계를 시각화한 것이다. 이들에게 트럼프는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줄 '신의 대리인'으로 추앙받았다.
3.3. 혐오의 조직화: 성소수자와 이슬람
미국 크리스토파시즘이 낙태권에 집착한다면, 한국의 극우 기독교는 '차별금지법 반대'를 제1의 전선으로 삼는다.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타 종교(특히 이슬람)를 배척하는 것을 신앙적 정체성으로 삼으며, 이를 위해 정치 세력과 적극적으로 결탁한다. 이는 파시즘의 특징인 '타자의 악마화'를 통해 내부 결속을 다지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4. 한미 극우 동맹의 연대 방식
한국의 극우 기독교 세력은 미국 우파 싱크탱크 및 정치 세력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미국의 자금과 이론적 토대가 한국의 극우 유튜버와 대형 교회 목사들을 통해 유포된다.
□ 가짜 뉴스의 유통: "바이든은 사회주의자", "부정선거론" 등 트럼프 지지 세력이 만든 가짜 뉴스는 한국어로 번역되어 한국 극우 기독교 카톡방과 유튜브를 점령했다.
□ 정치적 동원: 대형 교회의 조직력은 선거철마다 특정 후보에 대한 '몰표'로 나타나며, 정치권은 이들의 표를 얻기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유예하는 등 종교 권력에 굴복하는 양상을 보인다.
5. 민주주의의 방어기제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
크리스토파시즘의 발호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알리는 가장 선명한 경고음이다. 이들은 민주적 절차를 통해 권력을 획득한 뒤, 그 권력을 이용해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원주의를 파괴하려 한다. 신성(神聖)을 정치적 도구로 삼는 순간, 타협과 토론이라는 정치의 본령은 사라지고 증오와 배제만이 남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광화문 기독교'로 대변되는 극우 세력을 단순히 일부 일탈한 종교 집단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미국의 트럼피즘과 궤를 같이하며 국제적인 극우 네트워크의 일원으로 기능하고 있다.
결국 대안은 '정치적 시민권의 회복'과 '종교의 공공성 재정립'에 있다. 종교가 사적 신념의 영역을 넘어 타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정치적 억압 기제로 작동할 때, 민주 국가는 단호하게 헌법적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 도로테 죌레가 경고했듯, 우리가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파시즘을 묵인할 때 민주주의는 가장 성스러운 얼굴을 한 괴물에게 잡아먹히고 말 것이다.
도로테 죌레(Dorothee Sölle)
독일의 신학자 도로테 죌레(Dorothee Sölle, 1929–2003)는 20세기 후반 기독교 신학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인물로, '크리스토파시즘'이라는 용어를 정립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녀는 상아탑에 갇힌 신학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의 현장과 정치적 실천 속에 살아있는 '정치신학'과 '해방신학'의 선구자였다.
그녀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는 아래 4가지다.
1. 크리스토파시즘(Christofascism)의 비판
죌레는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성장하며, 기독교가 어떻게 독재 권력의 시녀가 될 수 있는지를 목격했다. 그녀는 기독교가 비판적 성찰 없이 권위주의와 결합할 때 나타나는 현상을 '크리스토파시즘'이라 명명했다.
□ 비판 지점: 신에 대한 순종을 '권력에 대한 복종'으로 치부하는 태도, 타자를 배제하는 배타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 대안: 그녀는 신앙이 현상의 유지(Status Quo)가 아니라 사회적 불의에 저항하는 동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 고난과 연대의 신학: "고통에 대한 무감각은 죄다"
그녀의 저서 『고난(Suffering)』은 현대 신학의 고전으로 꼽힌다. 죌레는 신이 하늘 위에서 인간의 고통을 관조하는 존재가 아니라, 고통받는 자들 곁에서 함께 아파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 신론의 변화: 전능한 신(고통을 방관하는 신)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인간과 함께 '무력해지는' 신을 제시하며,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연대할 때 비로소 신을 경험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3. 신비주의와 저항 (Mysticism and Resistance)
죌레는 신비주의를 '세상과 단절된 명상'으로 보지 않았다. 그녀에게 신비주의란 "신과 하나가 됨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키는 에너지를 얻는 것"이었다.
□ 실천적 신비주의: 신비주의적 체험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정의를 위한 저항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었다. 이는 '기도하는 손'과 '저항하는 주먹'이 하나임을 뜻한다.
4. 에코페미니즘과 반핵 운동
말년의 죌레는 가부장적 신학을 비판하며 생태 위기와 평화 문제에 집중했다.
□ 가부장제 비판: 하나님을 '지배하는 남성 왕'으로 묘사하는 전통적 언어가 억압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 평화 운동: 냉전 시기 독일 내 핵무기 배치 반대 운동에 적극 참여하며,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것은 신에 대한 반역"임을 선포했다.
도로테 죌레의 대표 저서
°『정치신학』: 신앙의 사사화(Privacy)를 경계하고 신앙의 공공성을 강조함.
°『고난』: 고통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연대의 필요성을 역설함.
°『신비주의와 저항』: 내면의 신앙이 어떻게 사회 변화의 동력이 되는지 분석함.
[요약] "행동하지 않는 신앙은 죽은 것이다"
도로테 죌레는 "신학은 신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뜻이 이 땅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임을 몸소 실천했다. 그녀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종교가 권력과 결합하려 할 때마다 강력한 경고의 목소리로 울려 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