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만드는 삶

by 박민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설명 가능한 상태로 만들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유를 찾고, 의미를 만들고, 원인을 연결한다.


사람은 자기 삶을 이해하지 못할 때 통제감을 잃는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인지적 통제감(Cognitive control)이라 부르는데, 이 감각이 사라지면 불안이 폭발한다. 그래서 우리는 설명을 통해 “내 삶은 비틀렸지만, 최소한 이해 가능한 구조 속에 있다.”라고 느끼려 한다. 해석 자체가 한 줄기 안정이다.


인간은 단순히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살아가는 이유를 갖고 싶어 한다. 이를 서사적 정체성(Narrative Identity)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자기를 이야기 형태로 묶어야만 존재의 일관성을 느낀다. 그래서 사람은 때때로 억지로라도 과거를 재구성하고, 고통을 의미 있는 사건으로 재해석하고, 상처의 원인을 찾으려 한다. 설명이란 결국 “이런 내가 이렇게 살아온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었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방식이다. 설명이 없는 삶은 정체성도 없다.


감정은 모호하다. 막연한 슬픔, 애매한 불안, 이유 없는 공허함과 같은 감정들은 설명하기 전까지 형태가 없다. 그런데 마음은 “형태 없는 감정”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은 감정 뒤에 이유를 붙여서라도 감정의 모양을 완성시키려 한다.


“내가 이렇게 불안한 건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이렇게 공허한 건 삶이 어그러졌기 때문.”

“내가 이렇게 슬픈 건 잃어버린 무언가가 있어서.”


설명은 감정을 이해 가능한 도형으로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그 도형이 주는 구조 속에서 안정을 느낀다.


삶은 수많은 우연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우연의 연속은 인간의 정신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래서 인간은 무의식을 통해 우연을 연결하여 “필연처럼 보이게 만드는 틀”을 만든다. 이건 방어가 아니다. 생존이다. 설명 없는 삶은 흩어진 파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파편을 줄거리로 바꾸어 혼란을 견딘다.


인간은 의미를 찾으려는 존재가 아니라, 의미 없음을 견디지 못하는 존재이다. 우리가 삶을 설명하려는 이유는 뜨겁게 의미를 추구해서가 아니다. 의미 없음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설명을 만들어 의미처럼 붙잡는 것이다. 설명은 우리를 속이지만, 그 속임 덕분에 우리는 버틴다. 삶은 설명되어야만 비로소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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