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눈먼 시계공: 설계자 없는 누적적 진화 (1986)
1984년 로버트 액슬로드가 '착한 전략'의 수학적 승리를 입증했을 때, 도킨스는 전율했다. 하지만 그는 생물학자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했다. "수학적으로 유리한 전략이 있다면, 자연은 도대체 어떻게 그토록 정교한 기능을 수행하는 '생존 기계'를 실제로 조립해내는가?"라는 질문이었다. 1986년 발표된 《눈먼 시계공》은 이 질문에 대한 공학적 해답이자, 이기적 유전자가 어떻게 이타적 협력이라는 고난도 소프트웨어를 탑재할 수 있었는지 설명하는 기술적 토대가 된다.
도킨스는 18세기 신학자 윌리엄 페일리의 '시계공 비유'를 소환하며 포문을 연다. 페일리는 길에서 정교한 시계를 발견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지적인 시계공'을 떠올리듯, 시계보다 정교한 생명체 뒤에는 '지적인 설계자(신)'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킨스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자연에는 설계자가 있지만, 그는 미래를 내다보지도, 목적을 갖지도 않은 '눈먼 시계공'이라는 것이다. 그 눈먼 시계공의 정체는 바로 '누적적 자연선택'이다.
도킨스는 이 책의 백미인 '누적적 선택'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제시한다. 원숭이가 타자기를 무작위로 쳐서 셰익스피어의 문장 "METHINKS IT IS LIKE A WEASEL(내가 보기엔 족제비 같군)"을 완성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단일 단계 선택). 28개의 글자(공백 포함)를 맞히기 위해서는 약 27^28분의 1이라는, 우주 전체의 시간으로도 불가능한 확률을 뚫어야 한다. 하지만 규칙을 바꾸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원숭이가 친 글자들 중 정답 문장과 조금이라도 닮은 부분을 컴퓨터가 '보존'하고, 그 상태에서 다시 변이를 일으키는 과정을 반복하면(누적적 선택), 단 수십 세대 만에 완벽한 문장이 완성된다. 도킨스는 이를 통해 "의도 없는 이기적 부품들이 어떻게 정교한 전체를 구성하는가"를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도킨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직접 짠 컴퓨터 프로그램 '바이오모프'를 선보였다. 단순한 나뭇가지 모양의 선에서 시작된 이 알고리즘은 '누적적 선택'이라는 단 하나의 규칙만으로 단 몇 세대 만에 곤충, 꽃, 비행기, 그리고 복잡한 생물학적 형태를 만들어냈다.
액슬로드가 컴퓨터 속에서 '협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규칙을 낚아 올렸다면, 도킨스는 그 규칙이 어떻게 구체적인 '생명의 몸을 입고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지' 시각적으로 증명해낸 셈이다. 둘 다 무작위의 바다에서 '누적적 선택'이라는 그물을 던져 질서를 건져 올렸다는 점에서 지적 쌍둥이라 할 만하다.
- 액슬로드: 이기적 전략들이 모여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함.
-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들이 모여 '공학적 하드웨어'를 구축하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함.
회의론자들은 "눈처럼 정교한 기관이 한꺼번에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5%만 완성된 눈이 무슨 소용인가?"라고 비판했다(환원 불가능한 복잡성). 도킨스는 이를 '눈먼 시계공'의 숙련도로 반박한다. 빛의 유무만 가리는 원시적인 눈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생존에 유리하며, 그 작은 이득이 누적적 선택의 필터를 통과할 때 비로소 렌즈와 망막을 갖춘 시각 시스템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협력 이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완벽한 이타성은 한 번에 탄생하지 않는다. 아주 미세한 '호의'가 유전자의 이익에 기여하고, 그것이 누적적으로 선택될 때 비로소 우리는 '도덕'이나 '사회성'이라 부르는 정교한 소프트웨어를 갖게 되는 것이다.
도킨스에게 《눈먼 시계공》을 집필한 3년은 협력 이론을 자신의 논리 체계로 완전히 흡수하기 위한 '지적 숙성기'였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복잡한 눈이나 날개 같은 '하드웨어'가 설계자 없이도 만들어질 수 있음을 완벽히 입증했다. 하드웨어가 스스로 조립될 수 있다면, 그 몸을 움직이는 '협력 전략(소프트웨어)' 역시 설계자 없이 탄생할 수 있다는 논리는 이제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결국 《눈먼 시계공》은 이기적 부품들이 정교한 기계를 만드는 공정을 보여주는 엔지니어링 보고서였고, 이 단단한 기술적 토대가 있었기에 1989년 《이기적 유전자》 개정판에서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한다"는 파격적인 운영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선언할 수 있었다. 도킨스는 "우리는 설계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설계하는 시스템의 산물"임을 확고히 하며, 마침내 1989년의 대반전을 향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