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킴 연출의 판소리극 심청

심청전 연구 6.

by 오늘의 나

이 판소리는 작년에 회사 통근 시 지하철의 디지털 포스터로 여러 번 접한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내가 하는 일에 집중하느라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소리극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면서, '굉장한 걸' 놓쳤다는 후회가 들었다.


먼저 연출가 요나 킴에 대해 알아보자.


김 연출은 2017년 유럽의 오페라 전문지 '오펀벨트'가 '올해의 연출가'로 선정한 세계적인 연출가다. 지난 20여 년간 유럽에서 활동하며 30여 편의 오페라를 연출하고 6편의 현대 오페라 대본을 썼다. 지난해에는 국립오페라단의 '탄호이저'로 한국 관객을 만났다. (발췌 - 하단기사)

https://www.arte.co.kr/music/news/8043


판소리 심청은 세상 모든 딸들의 진혼가

https://www.youtube.com/watch?v=A1H11dqNZlk



작품의 근간이 된 것은 강산제와 동초제 판소리. 모든 대목은 ‘있는 그대로’ 썼지만, 대본은 완전히 새로운 ‘심청’이 됐다. 국립극장과 전주세계소리축제가 공동 제작, 요나 김이 대본과 연출을 맡은 판소리 시어터 ‘심청’(8월 13~14일 전주, 9월 3~6일 서울) 이야기다. (발췌 - 하단기사)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552457

- 고전의 텍스트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재배치하고 새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오페라의 현대적 연출과 유사

- 요나킴이 눈대목만 골랐음


"심청은 단순히 아버지를 위해 희생하는 효녀가 아니라,
억압받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모든 약자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심청의 이야기를 단순한 판소리가 아니라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을 위한 진혼곡으로 만들고 싶었다"

요나 김은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장면을 단순한 효심의 상징이 아닌, "사회가 가장 약한 존재를 희생시켜 양심의 불편함을 덮어버리는 '구조적 폭력'"으로 해석했다. (발췌 - 하단기사)

https://www.yna.co.kr/view/AKR20250911033200371


상세한 극묘사에 대한 정보는 아래 기사에서 얻을 수 있다.

https://v.daum.net/v/20250905163447370


딸을 제물로 바치는 그리스 비극을 비롯해 딸의 희생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이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전 서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발췌 - 하단기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4102323150001449


요나 킴의 위 답변이 기존 GPT와의 대담에서 얻은 답변과 다른 듯하여 GPT에 다시 물었다.


그리스 비극에도 딸의 희생으로 공동체의 위기를 넘기려는 서사가 분명히 있어.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피게네이아

아버지: 아가멤논

출전: 이피게네이아 아울리스에서 (에우리피데스)


트로이 전쟁을 떠나려는 그리스 함대가 바람이 불지 않아 출항을 못 하자,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아가멤논이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려는 이야기야.

→ 공동체(전쟁)
→ 아버지의 권위
→ 신의 질서
→ 딸의 희생

이 구조가 심청전과 닮았지.


왜 이런 이야기가 동서양에 다 있을까?

고전 사회에서:

가족은 개인보다 위에 있었다

공동체 생존이 최우선이었다

부모 권위는 거의 절대적이었다


그래서 딸은 종종

순종의 상징

희생의 매개체

도덕적 시험대

로 등장해.


하지만 중요한 차이도 있어

� 심청전

희생 → 보상 → 부활 → 해피엔딩

효가 미덕으로 완성됨


� 그리스 비극

희생 → 파멸 → 죄책감 → 복수의 연쇄

인간의 오만과 비극성 강조


그리스 비극은
“희생이 과연 정당한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쪽이야.


그래서 요나킴 말은 타당해

딸의 희생 서사는
특정 문화가 아니라
가부장적·제의적 사회 구조에서 반복되는 원형 서사야.



말하자면 예전 GPT 답변도 옳고 요나킴의 말도 타당했다.


아니, 뭐 이런 통쾌하고 정확한 언니가 있나? 요나 김 긴 인터뷰를 봐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ml_iNBtUtUE


연출가가 더 궁금했다. 아래는 이 소리극 바로 전에 있었던 연출가와 평론가의 긴 대담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I0TH4U0vVI8&t=79s]

이런 언니와의 커피 한 잔이면, 최근의 부모 돌봄 스트레스가 싹 날아갈 것만 같다.


우리가 다 함께 특히 취약하거나 착한 딸자식을 '효도'라는 틀에 넣고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고, 그 여러 레이어를 간파해 냈을 때에야 주도적이며 독립적인 (아픈 부모도 정신은 독립적이어야 한다), 죄책감 없는 건강한 가족관계를 다시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토크를 가능케 하는 것이 이야기의 힘인 것이다.


심청전이 없었다면, 우리는 무엇에 기대어 이런 토크를, 이런 공연을, 이런 멋진 언니와의 만남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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