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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문 Oct 02. 2021

입장 바꿔 생각해 봤더니.

'루디'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다.

부산의 한 건설산업 현장.

까마득한 높이에 지붕 위로 안전띠 하나로 의지한 채 외국인 노동자가 작업 중이다. 한국인이 꺼리는 3D업종 중에 지붕 패널 마감 작업은 고난도 직종이다. 이곳 건설현장에서 '루디'를 처음 만났다. 정식으로 고용허가를 받고 산업기술연수생으로 3년 전 한국으로 입국했다. 25살의 청년 '루디'는 인도네시아인이다. 그동안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직업으로 일을 하다가 여기까지 흘러왔다고 한다. 처음 한국에 들어올 때는 한국어도 서툴고 실수도 많았지만 조금씩 적응하며 나름대로 인정을 받고 기술도 배웠다. 보통은 한국에 들어올 때 자국에서 큰 비용을 들여 한국으로 들어오지만 경험상 지출한 비용보다 한국에서의 임금이 더 높기 때문에 체류기간을 최대로 늘리려고 애를 쓴다.


의사소통은 잘 안되었지만 루디는 현장 노하우가 상당하다. 현장 용어, 건설재료 이름들을 한국어로 익힌 지 오래고 특히 용접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다. 큰 장점은 겁이 없다. 높은 곳 위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단연코 최고이며 프로다. '루디'가 먼저 한국에 이주했고 1년 뒤 아내 '에바'가 한국에 입국했다. 두 부부 사이에 아들이 한 명 있는데 아들은 데리고 들어오지 못해서 매일 아들을 그리워하며 한국에서 지내고 있었다.



"루디"와 그의 아내 "에바"  /  회식은 항상 소고기 파티



'루디'는 고용허가를 받아 현장에서 합법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의 아내 '에바'는 불법체류 신분이다. 다른 재능이 없어서 회사 샘플 카탈로그 제작이나 단순한 일을 찾아 했고 회사 직원들 집을 청소해주고 생활비를 보태었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고향에서 연락해 데리고 들어온 인도네시아 외국인 근로자들은 15명이 넘었다. 회사에서는 그들에게 숙식을 해결해주기 위해 컨테이너 집을 제공했다. 그나마 형편이 좀 나았던 루디 부부는 회사 근처 원룸을 얻어 생활을 했다. 주말이면 '에바'가 인도네시아 전통 음식을 거창하게 만들고 그들 나름의 평화로운 주말을 보냈다.


인도네시아 외국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돼지가 부정한 동물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식용이 금기시되어있다. 현장 회식을 할 때면 소고기를 주로 먹기 때문에 식대가 많이 나온다. 이슬람 종교 국가인 인도네시안은 현장에서 작업을 하다가 일정 정해진 시각이 되면 어디론가 향해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닿게 숙여 기도를 올린다. 일을 중단하고 기도를 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이슬람 종교인은 작업현장에서 일하다가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한다.


동남아시아 업체 간 협약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중 외국인 근로자가 다소 많은 인도네시아로 출장을 가기로 했다. 현지인 루디와 함께 자카르타를 방문해서 건설박람회에 부스 한편을 소개받아 회사 제품 홍보 역할을 담당하기로 했다. 박람회 일정을 마치고 '루디' 고향을 방문하기로 했다. 루디는 한국에서 돈을 벌면 자신의 고향에 집을 증축하고 수리하는 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돈을 보낸다고 했다. 얼마큼 집이 지어졌을지도 궁금했다.


루디의 집은 자카르타에서 멀지 않은 수라바야에 위치해 있었다. 자카르타가 서울이면 수라바야는 부산쯤 되는 도시다. '에바'는 불법 신분이기 때문에 입출국이 자유롭지 못해서 이번 출장에 합류하지 못했다. 얼마나 아들이 보고 싶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건설 박람회 참여 / 수라바야 공항 대합실


자카르타에서 일정을 소화하고 드디어 '루디'에 고향으로 향했다. 봉고를 랜트해서 약 10시간을 쉬지 않고 달렸다. 수라바야 반둥은 대부분 섬으로 이어진 도시다. 자카르타에 이어 2번째로 큰 도시가 수라바야다. 비포장도로를 끝없이 달리다 보면 오토바이 부대가 떼를 지어 지나가고, 그곳에서 조금씩 벗어날 때쯤 한적한 시골이 나타난다. 큰 도로에서 다시 작은 도로를 꺾어 들어가니 작은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한국의 시골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풍경은 이국적인 동남아 색채가 강렬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미리 연락을 받은 루디 가족들이 한걸음에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우리를 환영해 주고 있었다.



루디의 고향 수라바야  / 루디 아들  "바싼"


자카르타는 무비자로 30일 동안 비자 없이 체류할 수 있는 곳이다. 한국보다 2시간의 시차가 난다. 건기와 우기가 나누어져 있는데 우기라고 해서 매일같이 비가 오는 건 아니고 장마성 비와 홍수, 천둥번개가 잦은 편이다. 기온이 더운 나라여서 처음 보는 과일 종류가 너무 많았다. 과일 야채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




명절에나 차릴법한 귀한 음식요리를 우리에게 대접했다.


오토바이와 큰 트럭이 다니는 길을 가로질러 골목을 들어서면 끝도 없이 이어진 집들이 보인다. 열대성 나무숲이 우기를 견디고 집을 삼킬 듯이 드리워져 있다. 골목 풍경은 우리나라 60,70년대와 비슷해 보인다. 루디의 가족들은 한달음에 우리를 알아보고 반겨 주었다.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사는 부락은 대략 50명 정도가 한 마을에 모여 살고 있었다. 주로 농업을 하고 가끔 바다에도 나가 고기를 잡는다고 했다. 변변한 직업들이 없어 형편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루디가 한국에서 일해 번 돈으로 루디의 가족과 친척들을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에게 집 하나 전체를 내어주셨다. 저녁엔 전기가 잘 안 들어와서 깜깜했지만 그들은 불편함을 모르고 지내는 듯했다. 화장실은 외부에 별도로 있어서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야 겨우 볼일을 볼 수가 있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우리가 신기했는지 주변을 떠나지 않고 계속 기웃거리며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몇 년 만에 고향을 방문한 루디는 가족들에게 환대를 받으며 그간 추억들을 이야기하느라 밤을 지새웠다.



아이들과 축구를 하며 즐거운 오후를 보낸다.  /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물과 친해 수영실력이 뛰어나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나와 상대방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어떤 생각을 결정하고 진행하는 순간 상대방도 내 생각의 본질에 따라 입장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내가 성공을 원하거든 상대방이 성공하기를 더 소망해야 한다. 성공하기 위해 노력한 용기, 과정들이 나와 같은지도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다. 나 자신만의 생각을 고집하고 행동할 때 상대방도 똑같은 고민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밑바닥에서 출발한 뉴욕 경험과 '루디'가 맨주먹으로 한국을 경험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거의 같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생각은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에 대한 편견이 없을 때 함께할 수 있다. 다름이 보일 때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르다. 루디를 볼 때 동질감이 들지만 훨씬 더 열악한 환경과 주변 상황들은 나와 비교가 안된다.


그래서 많이 느끼고 생각하게 됐다. 글을 쓰다 보니 그 시절, 함께 했던 이주 노동자에 대한 내 마음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과연 그들과 마음으로 소통하며 지냈었을까?









역지사지(易地思之)
당사자들 간 서로의 처지,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사진출처 : 인도네시아 출장 기록 사진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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