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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문 Oct 03. 2021

"핵인싸"로 살고 싶어요

'인싸'와 '아싸'는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워낙 골프를 좋아하다 보니 골프 동호회를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찾은 골프 동아리 밴드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혼자서 하는 운동이 아니다 보니 결국 여러 회원들이 가입되어 있는 곳을 찾게 되었고 "잘 부탁드립니다"와 "열렬히 환영합니다"의 시작으로 서로 탐색전을 펼칩니다. 일반적으로 동호회는 제각기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들이고 직업과 연령층도 다양합니다. 어디서든 마찬가지겠지만 늘 새로운 뉴페이스가 가입인사를 하게 되면 기존 회원들의 관심도가 엄청나게 올라갑니다. 누구나 겪는 과정이겠지만 처음 만나 인연을 갖는다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해 보입니다. 밴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여러 번 글도 쓰고 댓글로 응대를 해야 비로소 단체 카톡방에 선물처럼 초대를 받습니다.


다음 백과사전 인싸 검색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혼자만의 세상이 아니기에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과 인연으로 살아갑니다.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볼 때 겉모습만으로는 쉽게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술도 한잔 같이 먹어보고 술주정도 들어보고 노래방에 가서 애창곡 18번이 트롯인지 발라드인지, 어떤 취향 인지도 살펴야 합니다. 한번 걸판지게 놀아보면 그 사람 성격이며 인간성이 확 드러납니다. 그때 갑자기 내가 생각했던 모습이 아닌 행동을 하거나 돌발 상황이 펼쳐질 때, 절대 당황스러움을 들키지 않아야 합니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빨리 판단해서 인간관계를 맺으면 됩니다. 그거면 됩니다.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있겠지만 모임에서 식사 후 제일 먼저 자기 지갑을 열어 "내가 쏠게"가 외쳐지는 사람이 일단 "인싸"의 범주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럴 때 "아니, N분의 일로 더치페이합시다"라고 현실감 있게 외치는 사람은 그 방법이 합리적임을 인지하면서도 "아싸"가 될 가능성이 생깁니다. 편견이고 꼰대적 발상일 수 있지만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남자들의 세상에서는 그런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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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과 4인(A B C D) 골프 라운딩을 나가서 게임을 제안해보면 개인의 성향과 취향이 확실이 보입니다.


A : 오늘은 뽑기 게임 어때? 너랑은 실력차가 너무 나서 스트로크 하기 싫어.

B : 운빨로 하는 뽑기는 재미도 없고 집중도 안돼. 그냥 타당. 대신 배판 없고!.

C : 이왕 라운딩 하러 왔으니 조폭 게임으로 하자. 이판사판. 오늘 한번 죽어보자. 응.

D : 음.. 난 골프로 게임하는 거 싫어. 그냥 각자가 알아서 치자.

C : D야 왜 그래. 갑자기 소심해서는. 케디 피는 걷어야 할거 아냐.

D : 그니까.. 그냥 케디 피도 각자 내면 되지. 왜 꼭 내기를 해야 하는 거냐고..

A : 그래. D말이 맞아. 내기 게임하면 누군가는 돈을 더 잃고.. 기분도 상할 거고..

C : A야. 누가 돈 벌러 여기 왔어. 그냥 재미로 하는 거지. 아무것도 안 할 거면 그냥 혼자 치지..

A : 말이 너무 심한 거 같은데. D가 하기 싫다잖아. 강제로 하자고 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C : 흠. 이런 식이면 다음부터 난 부킹 하지 마. 아 재미없어.

D : A, B, C야 미안.. 나 그냥 집에 가고 싶어..


골프 라운딩을 시작하기도 전에 게임방식 선택하다가 티업도 밀려버리고 서로 상처 받는 말을 퍼부어서 그날 필드 라운딩을 망쳤습니다.


정기적으로 함께 운동을 하는 지인들과의 사심 없는 대화였지만 게임에 참여하기 싫은 D는 그 라운딩에서 "인싸"가 아닌 건 확실해 보였습니다. 거침없이 들이대고 불도저 같은 C는 마치 "핵인싸"가 된 듯합니다. 밴드 동아리에 총무도 맡고 있고 회원들에게 회비 걷어들이는 실력이 탁월합니다. 노래방 가서는 마이크를 절대 놓지 않습니다. 목청이 천둥 같은 C는 혼자서 솔로곡을, 다른 사람이 부를 때는 꼭 자신이랑 듀엣곡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나 봅니다. 제 귀에서 피가 날 때쯤 끝납니다. 회식자리에서는 가만히 엉덩이를 붙이고 있지 않습니다. 테이블마다 참견하느라 자리에 앉아있는 법이 없습니다. 제가 안 먹는 술까지 더블로 마셔버립니다. C의 엄청나고 우월한 유전자가 부럽긴 합니다. 도대체 저런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궁금 졌습니다.




"인싸"가 되기 위해 나름대로 각종 모임에 빠지는 법 없이 참석하려고도 했습니다. 취향이 맞든 안 맞든 상관없이 세상과 타협하는 방법을 빨리 터득하는 것이 이로울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술을 좋아하지 않아 잘 못 마셔서, 건강에 해로우니 담배를 끊어서,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다 보니 차라리 "아싸"로 사는 게 세상을 더 오래 살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은 "인싸"가 되고 싶은 갈망이 넘쳐서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제목을 먼저 써놓고 제목대로 글을 이어가다 보면 내용이 삼천포로 빠져 버립니다. 처음에는 멋들어진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제목도 거창하게 달고 내용도 짜임새 있게 누가 봐도 재미있고 잘 읽히는 글로써 흠잡음이 없는 글을 쓰고야 말겠다는 의욕이 샘솟습니다. 그런데 쓰다 보면 생각도 많아지고 그렇습니다. 문맥이나 문법도 지키고 싶지 않아 집니다. 객기 비슷한 기묘한 반발심도 생깁니다. 그냥 편하게 쓰라고 하는데 너무 편하게 쓰는 내 글을 보니 "흡사 선배들 앞에서 건방지게 짝다리 짚고 서 있는 모습"이 연상이 됩니다. 내 글인데 누가 뭐라든 무슨 상관이겠냐 싶어 앞뒤 안재고 막 씁니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지금 내 글을 읽고 코웃음을 칠 것만 같습니다. 작가가 되겠다면서 이래도 되는 건지 부끄러워집니다. 이렇게 정말 마음대로 글을 써서 올려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래 비밀이 많은 사람입니다. 작가가 되고 보니 글은 써야겠는데 내 생각을 글로 옮기고 마음속 깊은 곳에 차곡차곡 넣어 둔 고민이 누군가에게 읽히는 낯선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읽는 이가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도 됩니다. 그러나.


끝까지 정신을 차리고 "발행"을 눌러봅니다.






"핵 인싸" 되기 정말 어렵습니다.
작가 선배님들...
선배님께서도 저처럼  
이렇게 고민하는 시간이 있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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