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광문 Oct 11. 2021

가을이 겨울보다 쓸쓸한 이유

#4. 매일 이유 있는 시리즈

가을바람은 좋습니다. 뜨거웠던 여름을 견디고 에어컨을 튼 것 같은 시원한 바람을 원 없이 제공해줍니다. 누군가는 봄이 더 화려하다고 하지만 청명한 가을 하늘과 형형색색의 단풍은 봄 보다 더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가을이 되면 생각도 깊어지고 글도 많이 쓰고 싶어 집니다.


일교차가 심해진 요즘, 이른 새벽 대기냉각으로 안개가 자욱할 때가 많습니다. 논밭에는 때 이른 첫서리도 내렸습니다. 어제오늘 가을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있습니다. 이 비가 그치면 곧 차가운 기온이 찾아와 겨울이 성큼 다가올 것만 같습니다.


농가에서는 농사일이 끝나 추수를 하고, 일 년의 업적을 기리듯 단체에서는 각종 행사와 축제를 엽니다. 코로나19 상황이 아니었으면 불꽃축제도 볼 수 있었는데 아쉽습니다. 가을을 '천고마비의 계절'로 표현하고 있듯이 풍성한 충족감이 넘치는 계절입니다. '가을에는 죽은 송장도 꿈지럭거린다' 속담은 그만큼 바쁘고 정신없는 계절을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반면, 가을은 외롭기도 합니다. 왠지 모르게 쓸쓸해지고 옛 생각도 많이 나면서 옛 추억이 떠오르곤 합니다. 지금 이 가을에도 그때 그 가을이 다시 그립습니다. 아른거리는 기억을 소환하고 예전에 즐겨 듣던 음악을 다시 찾아 듣다 보면 왠지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김광석-

비가 내리면
나를 둘러싸는
시간의 숨결이 떨쳐질까
비가 내리면
내가 간직하는 서글픈
상념이 잊힐까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 가수 김광석 -


저는 겨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직업이 건축가이다 보니 모두가 움츠려 드는 겨울은 업종 비수기입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건설공정을 멈추고 언 눈이 녹기만을 기다려야 합니다. 가을이 주는 풍요로움은 너무 짧아 곧 다가올 추운 겨울을 서둘러서 대비해야만 합니다. 바람이 시원해지다 차가워지면 짧은 가을이 이내 아쉽고 마음 한구석이 공허해집니다. 동절기에는 영하 5도 이상 내려가면 공사가 중지됩니다. 동파 방지를 위해 보온시설은 필수적으로 해야 하고 물이 필요한 습식공사는 품질이 떨어진다는 것을 감안하여 품질관리계획을 해야 합니다.


건축현장은 일 년 중 일을 할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습니다. 계절이 바뀌어 초여름이 다가오면 장마와 태풍에 맞서 싸워야 하며 한 여름을 겪는 인부들은 폭염과 사투를 벌여야 합니다. 짧은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면 누구나 두려워하는 눈폭탄을 피해야 하고 동파 문제로 힘들어합니다. 이렇게 초자연 현상에 굴복하며 건축공정이 지연되고 현장에 숨어있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설계를 수정하고 공정이 지연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건축을 하기 위해 봄, 가을 유리한 계절에 공정 속도를 무리하게 진행시키다 보면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개미와 같이 '여름 내내 열심히 땀 흘려 일하고 겨울을 따뜻하게 보낸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파이팅해봅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고후 5:17)
작가의 이전글 "핵인싸"로 살고 싶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