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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문 Sep 17. 2021

매일 30년째 "일기"를 쓰는 이유

나의 기록들이 말해주는 삶의 의미들.

무서운 습관. 중독. 불안감이 이유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다 보면 하루가 빠르게 한 해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불혹[不惑]의 나이를 지나,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의 세월을 살고 보니 어느덧 환갑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서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중년의 끝으로 치닫고 있는 나의 모습을 돌아볼 기회가 많다.

하고 싶은 일은 아직도 많은데 확률적으로 기회가 많이 주어지진 않는다.

바쁘게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덧 나이를 먹고, 늙어지면서 일어나는 신체변화에 더해 감정 변화까지 생긴다.

나보다 더 나이가 든 선배들과 어른들은 내 나이를 보면 아직 한참 때이고 젊다고 하는데 푸념으로만 치부하기엔 요즘 생각과 고민들이 많아진다.

우울증 갱년기다.


식당에 쭈그리고 앉았다 일어날 때 '어구구' 무릎뼈마디가 울려 음 소리가 절로 난다.

쌩쌩 타던 자전거도 가끔 중심을 잘 못 잡으면 넘어지곤 한다.

댄스음악보단 감성적인 7080 노래를 더 찾게 된다. 트로트 주파수도 살짝 귀를 간질인다.

꼰대 소리를 안 들으려고 유머 섞인 농담을 하지만 결국엔 아재 개그다.




며칠 전 개인병원에서 주치의가 심각한 어투로 건강검진 후에 한말이 문뜩 떠올랐다.

" 앞으로 50년밖에 더 못 사실 것 같습니다."

우스개 소리로 한 말이었지만 앞으로 살날이 100세 시대라고 하는 요즘의 50대에는 더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젊은 시절 30대에 경험한 소중한 기억들과 추억을 되돌아보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도 똑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렇게 살 자신은 없다. 완벽하지 않은 나이에 부딪히고 생생하게 겪었던 고통과 짐들의 시간이 흘러 막연한 두려움 속에 갇혀버린... 마치 타성에 젖은 듯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이제는 좀 여유를 부려봐도 좋은 나이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어쩌다 보니 50대가 되었네요" 주변 지인들과 만나면 간혹 대화 주제가 된다.

20대에서 30대를 향해갈 땐 나이를 먹는 거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50대에 들어선 지금 내 삶의 변화가 아주 크게 와닿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개인일정관리 프로그램PIMS (오랜지소프트사 )



본격적으로 매일 일기를 쓰기 시작한 이유는 "블루노트"를 쓰게 된 후부터다.

매일 일기를 쓰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루하루가 똑같은 일상을 살다 보면

일기를 쓸 주제가 얼마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오늘은 누굴 만났고 점심은 어떤 종류로 먹었으며 돈은 얼마를 썼는지를 꼼꼼히 기록해보니 다음날 무엇인가를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생겼다.

물론 경험했던 사실만을 기록하는 것은 아니다. 사건이나 이벤트가 있을 때도 특별한 감정이나

느낌을 솔직하게 쓸 때가 더 많다.

하루 중 기분 나빴던 일. 기분 좋았던 일, 우울하고 슬퍼질 때 쏟아내는 일상의 일들을 기록하는 이 습관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전반적인 맥락은 '반성'과 '다짐'이다.


"일을 더 열심히 돈을 많이 벌어야 해"

"운동을 열심히 해서 살을 더 빼야 해"

일기를 쓰면 오늘 일을 반성하게 되고 활력 된 에너지가 채워진다.

무엇보다도 자아를 되돌아보는 데도 도움이 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쓰다 보면

글을 쓰는 솜씨도 좋아진다.


아내는 글을 쓰는 재능이 타고났다. 아내가 쓴 글을 읽다 보면 순수함에서 나오는 일상의 이야기들이 감동으로 전해진다. 어렵고 고리타분한 전문용어가 아닌 주변의 소소한 일들로 주제를 삼는다. 읽기가 편하고 재미도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내의 글을 읽어준다고 생각한다.


처음 일기를 쓸 때는 문법을 지키는 것도 문맥을 맞추는 것도 필요가 없다. 누군가에게 보일 필요도 없고 상대에게 평가받을 일도 아니다. 아주 정성 들여 쓸 필요도 없다. 적당히 끄적거려도 하루 일기 감이 생긴다.


그래서 대충 막 쓴다. 욕도 쓴다.




허세를 부릴 만큼 시간도 많아지고 여유도 생긴 요즘에는 제대로 써보기로 다짐을 한다.

하루하루가 하는 것도 없이 그냥 쌩 하고 지나갔다는 후회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는 불안에 사로잡힐 때는 아무거나 기록하고 쓴다. 이건 중독인가.


가끔 작년 이맘때, 10년 전 이맘때가 궁금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지난 과거에 정리했던 일기를 빠르게 한 번씩 살펴본다. 그때그때 상황마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사실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 세월이 지나 다시 그때를 회상할 수 있다는 점이 참 좋다.


그래서 매일 일기를 쓴다.



금상첨화(錦上添花)

좋은 일에 또 좋은 일이 더해지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일기를 매일 쓰니 복잡했었던 마음에 평화도 찾아온다.









사진출처 :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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