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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문 Sep 22. 2021

울릉도 덕준님 안녕하시죠?

4대째 울릉도를 지키는 토박이 '이덕준 님' 감사했습니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화산섬 울릉도가 다시 그리워졌다.


울릉도 파견 현장 근무지로 발령이 났다는 지시를 받고 꽤나 설레었다. 제주도는 많이 가봤어도 울릉도는 세상 태어나 처음 가보는 곳이다. 제주도처럼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어서 3시간 꼬박 배 멀미를 감수해야 한다.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천해의 비경 매력에 빠지고 싶다면, 익숙한 제주도가 이젠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울릉도를 찾아 떠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울릉도로 향하는 길은 마다할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일을 하러 가는 곳이라 해도 작정하고 가지 않은 한 어려운 걸음이었다. 그러나 자주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고, 울릉도에 세우는 박물관 일은 희소한 일이므로 그 가치에 의미를 두고 울릉도 현장업무에 기꺼이 투입되어 갔다.




석포 안용복장군 기념관 신축공사 착공현장 터파기 사진 /  건물 완공사진



1997년 12월 31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발해 1300호’, 발해 해상항로 학술 뗏목탐사대가 역사적인 출항을 했다. 장철수 대장, 이덕영 선장, 이용호 대원, 임헌규 대원 등 4명은 물푸레나무로 만든 길이 15m, 너비 5m의 뗏목에 몸을 싣고 1300년 전 발해인이 해상 교역을 했던 발자취를 찾아 블라디보스토크 항을 출발했다. 그들은 결국 24일간의 겨울 동해바다 뗏목에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였다.  

[출처] 발해 1300호 / 이덕영 선장 / 작성자 


석포 안용복 장군 기념관 현장 바로 옆 가옥에 '발해 1300호' 이덕영 선장 집이 있다. 울릉군 북면 석포길 아래

'운이 좋으면 죽도 너머 멀리 독도가 1년에 한두 번은 보인다'는 절벽 위의 외딴집, 동생 이덕준 님이 홀로 집을 지키고 있다. 그들의 삶을 외지인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그의 하루 일과는 농사가 전부다. 울릉도 청정지역에서만 채집할 수 있는 명이나물, 부지깽이, 곤드레, 산마늘을 재배한다. 너무 귀해서 육지사람들이 불법으로 수확해 가면 벌금도 매긴다. 채널A 뉴스 인터뷰에서 울릉도 주민 이덕준 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요즘 들어 울릉도의 신공항 건설, 일주도로 공사 등 태고의 신비를 지닌 화산섬 울릉도가 난개발로 신음하고 있어 걱정이 많다고 했다.


[이덕준 / 울릉도 주민] -채널A 뉴스 인터뷰 내용
"그때 생각하면 많이 좋아졌지. 그 당시에는 생각조차 못했고, 길이 난다고 하는 건."
"자연스러운 아름다운 돌이 보기 좋게 있었고. 몽돌 해변도 많이 없어지니… 한마디로 말해서 안타깝다는 그런 말 밖에는 못하겠어."


덕준 님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 울릉도는 어느덧 그리움으로 변해 있었다. 일주도로 건설사업은 울릉도 주민들에겐 숙원사업이기도 하였으나 막상 개발하고 보니 자연지형도 많이 바뀌었고 붕괴 가능성도 제기된 상태이다.


이덕준님 가옥신축에 참여한 목수 할아버지


석포리 마을 터줏대감 덕준 님은 절벽 위 가옥을 짓기로 결심을 했다. 목포에서 목조주택 장인을 모셔와 나무를 재단하고 못질을 했다. 안용복기념관이 후면에 배치되고 전면에 죽도를 배경으로는 절벽이다. 설계도면도 없었다.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고 기초를 설계했다. 건축 전문가인 내가 봐도 힘든 작업이다. 안용복기념관 현장관리업무를 하면서 그의 다부진 의지와 비전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는 막걸리 한잔을 콧잔등에 붉게 꽃이 핀 듯 보일 때까지 거하게 들이켜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톱질을 했다.


석포리 이덕준님 가옥 증축


딱히 정해진 작업시간도 없다. 하루는 기둥을 세우고 또 하루는 서까래를 달았다. 설계도면도 없이 뚝딱뚝딱 지어낸 가옥은 보잘것없지만 전면에 펼쳐진 죽도의 비경과 멀리 차분히 비치는 바다의 조합이 어떤 화려한 별장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졌다.


태어나서 평생을 울릉도 섬에서 사신 분들의 공통점은 순수함이다. 울릉도에서 1년 넘게 현장관리를 하다 보니 주민등록지도 울릉도 천부리로 이적을 해야만 했다. 주말이면 현장업무를 간단히 보고 내수전 일출봉에서 관음도까지 걷고 또 걸었다. 육지에서 들어와 몇 개월째 섬에서 지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처음 며칠은 돈도 벌고 관광도 하니 일석이조 아닌가 하고 좋아했었지만 비가 오면 홍수가 나고 눈이 오면 고립되는 변덕스러운 날씨다 보니 적응하 것이 만만치 않았다.


그럴 때마다 늘 덕준 님이 친구가 되어주셨다. 물탱크에 물이 말라 샤워조차도 편하게 못하는 천부 산골짜기에서 외롭지 않을 벗이 생겼다. 경치 좋은 절벽 위에 목조로 집을 짓고 싶다고 해서 기꺼이 도움을 드렸다. 태풍이 오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거뜬히 버틸 수 있도록 구조적으로 해석도 해 드리고 기초도 바로 세워 드렸다.





수개월 안용복기념관 건립공사가 완료되어 준공을 받았다. 숙소로 있었던 현장사무실과 관리창고는 천부리 주민들께 헌납하기로 하고 철거는 하지 않았다. 회사로 복귀하기 전 며칠은 그동안 작정했던 관광을 하기로 했다. 나리분지를 거쳐 성인봉까지 트레킹을 했다. 꼭 한 번은 다시 오겠다 다짐을 하고 덕준 님과 밤을 새워 술잔을 기울였다. 



울릉도 이덕준선생님 안녕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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