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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트랄 Sep 02. 2024

죽으니까 사람이다

부제 : 어느 안드로이드가 남긴 비밀 유서

  유해리. 그게 그 아이의 이름이었다. 해리는 인간과에 속하는 생물이었다. 즉 탄생과 죽음이 있는 그런 존재였다. 나는 ‘죽음’이라는 걸 모른다. ‘탄생’이라는 개념도 모른다.


     *         *         *


  나는 서기 5073년. ‘수림’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기계다. 신생아 형태로 만들어져서, 각종 호르몬 주사를 시기별로 맞아서 마치 생명체처럼 천천히 나이를 먹게 되는 그런 ‘생체형 안드로이드(Vital Android)’종에 속한다. 인간들은 평균 수명이 백오십 년쯤 되지만 VA는 최소 몇 천년 동안은 살 수 있다, 나는 겨우 칠십 년을 산 여성형 VA다. 그리고 내일 오전 아홉 시 정각에 나는 내가 VA로서 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대가로 우주 치안 센터에서 부과한 최고형인 ‘소멸형’을 받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내가 ‘해리’를 만난 ‘덕분’이다.

 

 소멸형을 받는데 덕분이라니. 나는 VA로서 지을 수 없는 표정인 ‘썩소’를 지어 본다. 지금 내가 수감되어 있는 감옥의 교도관들이 이런 나를 본다면 아마 많이 의아해할 것이다. 내가 이런 표정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마 해리 덕분이겠지. 이런 상황에서 인간들은 대부분 이런 표정을 짓기 때문에, 나도 똑같이 그 표정을 지을 수 있도록 내 얼굴 피부 조직의 위치를 바꿔본다.


                             *          *          *


  아주 오래전, 바나나에는 씨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바나나를 땅에 묻어서 썩혀서 나무로 키워 바나나를 재배하는 것이 너무나 시간이 걸리고 힘들어, 바나나 나무에 또 다른 바나나 가지를 접붙이는 방법으로만 수억 그루의 바나나 나무들을 재배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바나나는 씨가 아예 없어지게 되었다.


  인간들도 마찬가지로, 여성과 남성은 서로 쾌락을 위한 행위에만 집중하기 위해, 또는 본인들의 신체적‧정서적 건강에 대한 우려, 또는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아이를 낳지 않게 되었고, 계속되는 전 지구적 환경 문제까지 겹쳐 여성의 자궁은 세대를 거치며 점차 퇴화하여 생리가 없어지고, 마찬가지로 남성의 정관도 퇴화하여 정자 개수가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우주국은 본격적으로 ‘인류보존 및 발전 프로젝트’라는 걸 시작했다. 여성의 경우는 난자를, 남성은 건강한 정자를 채취하여 각각 난자, 정자은행에 보관한 뒤 부모가 될 인간들이 성인이 되면 그들의 동의를 받고 ‘시험관 아기’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양산된 아기들은 전문 교육기관에 보내져서 출생 시부터 성향과 능력 등을 점검하여 최적의 맞춤형 교육을 받았다. 이렇게 기계적인 방법으로 아이를 ‘출생’ 시키다 보니 오히려 자연적으로 출생한 몇몇 아이들이 자라면서 양산형 인간들에 비해 모든 면에서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고, 결국 정부는 프로젝트 시행 백여 년 만에 자연 상태에서의 임신 및 출산을 아예 법으로 금지하였다.


   그런데 인간계에서는 항상 법을 어기는 경우가 생긴다.  이렇게 태어난 아기들은 우주 치안국 경찰들에게 발각되면 바로 사살된다. 혹시라도 있을 유전적 결함을 가진 아기가 성장하여 인류에 해를 끼칠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      *      *


  삼십 년 전 그날도 나는 내가 맡은 환경 프로젝트인 우산 고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닳거나 구멍이 난 신발이나 가방, 고장이 나 못 쓰는 펜 등을 수거하여 새것처럼 고쳐서 다시 판다. 정부 지원이 되는 사업이라 돈도 쏠쏠히 들어온다. 사흘 전 폭풍우가 쏟아졌기 때문에 유난히 고장 난 우산이 많이 들어온 날이었다. 천 개가 넘게 쌓인 우산을 하나하나 분류하고 있었는데, 그중 군청색 우산 아래서 뭔가 희미한 고양이 소리 같은 게 나기 시작했다. 얼른 쫓으려고 하다가 우산을 들춰보니 그 아래 작은 인간 아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자아이였고, 이름은 ‘유해리’라고 배냇저고리에 수놓아져 있었다.


  자연 발생 아기다. 나는 순간, 뇌에서 알 수 없는 전파 자극이 몰려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많은 두뇌 세포가 말하고 있었다. ‘잘만 하면 우주국의 감시를 피해 이 아기와 함께 살 수 있다’라고.


                            *          *          *


  VA의 등장은 그러니까.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인간복제가 가능해진 그 순간부터였다. 인간들이 자신들의 난자와 정자로 ‘만들어진’ 아기가 그토록 완벽한 환경에서 자람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서 어쩌지 못하는 치명적인 질병에 걸리거나 뜻하지 않은 사고로 사망할 경우를 대비하여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복제품을 만들어 ‘인간 보험’에 가입해 두는 것이 언젠가부터 유행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VA의 필요는 어디까지나 ‘원본’ 아이의 사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부모가 모두 죽기 전까지 아이가 사망하지 않는다면 그저 그 아이가 사는 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원본’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하지조차 못하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기껏해야 150년을 사는 ‘원본’이 죽고 나서도 천년, 이천 년, 삼천 년이 흘러갈 동안…


 VA는 원칙적으로 가족을 가질 수 없다. 수컷 당나귀와 암컷 말을 교배하여 탄생시킨 노새처럼 생식력을 가질 수 없는 데다가, 법률상 원본과 대체되지 않은 VA는 그 누구와도 동거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나이를 먹어가도 함께 말동무라도 할 배우자도 없으며, 누군가가 소멸시켜 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소멸할 능력도, 그럴 권리조차 없다. 하지만 나는 해리와 함께 있는 것이 나의 사회적 정서표현 능력을 위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므로 나는 해리를 숨겨가며 길렀다. 여차하면 둘러댈 많은 말들을 두뇌 회로에 집적시키면서‥ 그렇게 그날부터 해리는 나와 같은 VA로 자랐다.


                             *          *          *


  햇살이 밝은 어느 날, 내 ‘재생품 가게’로 중국 남자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내게 살이 네 개나 부러진 노란 우산을 들이밀었다. 곧 캐나다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전에 그 우산을 꼭 고쳐서 가지고 가고 싶다고 했다. 내가 우산을 고치는 동안, 그는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꺼냈다.

 

  캐나다에 사는 ‘워우칭’씨는 자식인 ‘워우밍’을 중국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는 ‘밍’이 학교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던 날을 아주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밍이 탄 배가 가라앉고, 사백 명이 족히 넘을 탑승객들 중 백여 명이 숨졌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는 밍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이는 받지 않았다.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스무 시간 남짓 걸려 그 바닷가로 달려갔다. 밍은 그곳에 그대로 서 있었다. 수학여행을 가던 그날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가방을 메고, 똑같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리고 똑같은 미소를 짓고 이렇게 말했다.


“다녀왔어. 정말 즐거웠어.”


밍의 옷은 아주 바짝 말라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살이 네 개나 부러진 노란 우산이 진흙에 처박혀 있었다. ‘워우밍’이라고 파인 글자가 선명한.


                        *          *          *


  사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아주 많이 안다. 그리고 내 존재 자체가 그러한 목적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해리는 그런 목적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우유, 기저귀, 공주 드레스, 신발, 인형, 색칠공부…, 나는 해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사주고 먹이고 입히면서 그녀를 키웠다. 그렇게 해리가 다섯 살이 되던 해, 그 애는 동그란 순진한 눈을 하고서 나에게 마침내 이렇게 물었다.

 

“엄마… 가짜지?”


  나는 순간 푸하하하하! 프로그램된 대로 웃어버렸다. 해리가 드디어 나의 존재를 인식한 것이다! 그래! 가짜다! 난 가짜 엄마! 가짜 인간인 거야! 그러나 해리에겐 넌 진짜야! 넌 진짜 진짜지만 가짜 노릇을 해야 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대신 최대한 할 수 있는 한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응. 잘 알고 있네. 그리고 너도 가짜야.”


  그때 절망적으로 일그러진 해리의 표정을 나는 평생 잊을 수가 없다. 내일이면 소멸될 테지만 내가 만약 천 년을 더 산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때 그 말만큼은 절대로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내 전두엽 안에서 굵은 활자체에 느낌표까지 달린 문자가 넘실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 이후로 해리를 최대한 빨리, 반드시 나에게서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는 심장박동의 경고를 알아차렸다. 해리가 죽거나 내가 소멸되거나, 아니면 둘 다 그렇게 될 확률이 90%로 급격히 올라갔기 때문이다.

 

                       *          *          *


  해리가 가짜인 나의 존재를 정확하게 간파한 지 일주일쯤 지나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를 교통사고로 잃은 네덜란드인 부부가 신발과 가방을 가지고 내 가게에 찾아왔다. 그들은 내게, 그 아이의 장례식에 쓸 물건들이라고 했다. 그들은 가난했기 때문에 아이의 복제 VA를 미처 만들어 두지 못했고, 그래서 더 상심이 커 보였다. 나는 신발을 꿰매고 가방끈을 고쳐주며 해리에 대해 슬쩍 언급했다. ‘원본’이 실종된 ‘복제품’이라고. ‘원본’의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셔서 잠시 여기 있는 VA라고. 필요하시면 싼 값에 사시라고 제안했다. 그들은 여전히 슬픔에 젖은 얼굴이었지만,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러자 내 기억회로에 남아있는 해리와 함께 있었던 일들의 기억 정보들이 바이러스처럼, 연이어 뜨는 광고 배너처럼 시야 전반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유를 토하면서도 뒤집기를 하거나, 화장지를 계속 뽑아대거나, 놀이터 정글짐의 최고봉에 올라가서 소리를 지르거나… 그때마다 나는 계속 머릿속에서 ‘엑스’ 표식을 눌러 없애버리곤 했다.

 해리를 데려간 네덜란드인 부부는 내가 VA인데도 불구하고 나를 배려하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해리의 성장을 자랑하고 싶었던 건지 그 후에도 일 년에 한 번씩은 해리의 사진을 보내왔고, 나는 내 예상보다도 훨씬 멋지고 능력 있는 모습으로 자라던 해리를 보며 기억 정보를 계속 업데이트시키곤 했다.  

 억겁 같은 삼십 년이 흐르고, 해리를 보내던 당시 내 나이와 비슷한 사십 대였던 그 네덜란드인 부부도 차례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인은 각각 심장마비와 뇌졸중. 인간들에게 흔한 질병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인가 해리의 사진도 내게 배달되지 않았다. 마지막 업데이트는 해리가 로스쿨을 졸업했던 제 작년에 했다. 해리는 아마도, 하고 싶어 했던 판사나 검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부디 VA의 권리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그런 법조인이 되기를 바란다.


                             *          *          *


“당신을 영아유기 및 아동학대, 인신매매 혐의로 체포합니다.”


우주 치안센터 경찰 세 명이 나를 포위하고 말했다. 그들은 내가 어린 신생아였던 해리를 훔쳐서 키우고 인간인 해리에게 VA라고 거짓말을 하여 자아를 분열시켰으며, 심지어 네덜란드인 양부모에게 돈을 받고 팔아넘긴 혐의가 있음을 고지시켰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해리’ 본인의 입으로부터 나온 정보라고 덧붙였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더 남겼다.


“당신은 VA이므로 묵비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제대로 된 재판조차 받지 못하고 VA로서 받게 되는 최고형인 ‘소멸’ 형이 주어졌다. 내일 아홉 시면 나는 이 세상에서 소멸되는 것이다. 인간으로 치면 나는 칠십 세의 완연한 노년의 모습이겠지만 해리를 만났던 그날부터 젊음을 유지하는 생체 호르몬 주사를 지속적으로 맞았기 때문에 외모에는 별로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소멸 전날이라는 정보의 인식이 나 같은 VA의 얼굴도 변형시킬 수 있는 걸까? 안면에 주름이 생기면서 일그러짐을 느꼈다. 나는 갑자기 도끼로 목이 날아갔던 영국의 메리 여왕과 기요틴으로 단번에 생명이 끊긴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뜨와네트가 처형 전날에 느꼈을 기분이 궁금해졌다. 다행히 나는 그들보다 사정이 훨씬 나은 편이다. 요즘은 인간이든 VA든 고통을 거의 느끼지 못하도록 단 한 방의 마취 가스로 끝내기 때문이다.

                      *          *          *


  ‘소멸실’로 들어가는 길, 저 멀리 창밖으로 이제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해리의 얼굴이 보인다. 판사의 가운을 입고 건물 밖을 지나가고 있다. 나는 그래도 아주 오랜만에, 잠깐이라도 그녀의 모습을 본 것이 반갑다. 아니‥, 반갑다고 느끼도록 프로그램된 건가? 감각이면 몰라도 내가 무슨 감정을 느낄 리가 없잖아? 그런데… 내 얼굴에서 알 수 없는 액체가 떨어진다. 이럴 땐 눈물을 흘리도록 프로그램된 건가? 그런데, 나를 흘깃 보고 지나가던 해리가 소멸실 밖 유리창에서 나를 지켜보는 것이 느껴진다. 아니, 느껴진다고? 뭘 느껴…?


  해리가 나를 보며 손을 흔든다. 반갑다는 걸까? 얼굴엔 다섯 살 아이 때 본, 그 미소가 서려 있다. 나를 직접 고소, 고발하여 이렇게 소멸실로 이끌어 놓고? 그렇다. VA도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나는 해리를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아이와 같이 지내고 싶었다. 그 아이에게 거짓말을 한 것도, 그 아이를 네덜란드인 부부에게 보낸 것도, 모두 그 아이를 위해서 했던 최선의 일이었다. 하지만 VA 따위에겐 그 어떤 감정도, 변명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저 ‘소멸’될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일 뿐…


                            *          *          *


“끝났나요?”

“네. ‘소멸’ 시켰습니다.”


“저 유서와 함께 잘 태우세요. 그 네덜란드 부부처럼…, 그녀가 최후의 ‘사람’이었음을 누구도 알지 못하게…, 그리고 우리가 모두 VA라는 사실도 말이죠. 끝까지 잘 묻어 두세요.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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