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스트랄 Sep 02. 2024

레위인의 변론ㅡ1

SF 단편소설

1.나는 죄가 없다



“사사. 당신의 죄를 인정합니까?”

“…”

  저 깊은 심연의 우주 속ᆢ황금빛으로 빛나는, 표면 온도가 465도에 달하는 금성, 일명 비너스가 아가리를 열고 당장이라도 나를 받아들일 것만 같다.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왜 내가 저 불구덩이에 떨어져야 한단 말인가? 인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안드로이드 하나쯤 희생해도 되는 것 아닌가?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부서진 안드로이드의 본체를 해체해서 그 조각들을 각각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과 행성이 아닌 명왕성에까지 인공위성에 실어서 내려보낸 것뿐이다. 그것도 오로지 내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다. 내 첩, 내 안드로이드가 화성의 불량배들에 의해 생명을 잃고 산산이 부수어졌으니, 가만히 있을 주인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내 첩은 우주력 1045년 현재, 모든 남성형 안드로이드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졌었다. 내가 그의 주인이므로, 그의 이름은 내 이름을 따서 ‘사사진’이라고 불렀다. 3년 전, 왕성으로 도망친 그 아이를 쫓아가서 다시 데려오느라 대체 얼마의 시간과 재산을 썼는데…


                        *          *          *


  “증인을 신청합니다. 산드라 이바노브나입니다.”


산드라. 우주 최고의 안드로이드 제작자이자 생명과학의 권위자. 3년 전 유리돔 정원 대저택에서 나를 그렇게나 환대해 주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거무스름해진 얼굴빛과 입가의 불독 주름이 두드려져 보인다. 나와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그녀지만 열 살은 더 늙어 보였다.  


  “본인이 누구인지 직접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부서지고 분해되어 전 우주에 흩어진 안드로이드 ‘사사진’의 원래 주인이며 그의 창조자, 즉 ‘엄마’입니다. ”


‘엄마’라는 말을 하면서 그녀가 울컥하는 것이 느껴졌다. 제길. 그래서 뭐? 내 전 재산 중 절반이 날아간 나보다. 그리고 이렇게 피고인이 되어 최소 몇 만년을 금성의 뜨거운 감옥 속에 넣어져 지져질 나보다 더 억울해? 어쨌건 산드라는 나한테서 돈을 받고 '물건'을 판 거잖아. 그게 죽든 부서지든

애초에 그녀가 손해 볼 일은 없었어. 

산드라는 법정 앞에서 오직 진실만을 말하겠다는 선서를 하고 자리에 앉는다. 그녀가 피고석에 앉은 나를 죽일 듯 노려본다.


  “증인은 저기 피고석에 앉아있는 인간 여성, ‘사사’와 어떤 관계입니까?”


  “사사는 제 며느리입니다.(She is my daughter-in law)”


그녀가 말하는 동시에,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과 해왕성의 모든 언어로 발언이 번역되어 전 우주에 퍼진다. 물론 지구어가 우주 대표어이고, 각 행성에서 대표로 초청받아 법정에 온 배심원들은 모두 지구 어를 거의 이해할 수 있지만,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몇몇 중요한 발언들은 배심원 각자의 모국어로 모두 전해진다. 보다 정확한 배심원들의 평결을 위해서이다.


  법정이 술렁거린다. 며느리라니. 저게 대체 언제 적 쓰던 말이야? 몇 천년 전 지구라고? 아직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몇몇 사람들을 위해 우주 법정 서기관이 허공에 손가락으로 “도터-인-러(법적인 딸)‘라고 크게 쓴다. 손가락 끝에 묻힌 특수물질이 바로 굳어져 글자가 되고, 이 글자들은 법정에 참관한 모든 사람들의 뇌리로 들어가 박힌다.


”그게 무슨 뜻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분해된 ‘사사진’은 내 아들이라는 뜻이죠. 저 여자는 내 아들을 나에게서 빼앗아 그녀의 첩으로 삼고, 죽음에 이르게 한 최악의 며느리예요. 사사진은 나의 모든 영혼과 시간과 노력을 바쳐서 만들어 낸 우주 최고의 안드로이드. 아름답고 현명하며 지적이고 탁월한 능력을 지닌. 흠잡을 데 없는 맑은 영혼을 지닌 생명체였죠.”


  영혼이라고? 생명체라고? 인간과 거의 흡사하긴 하지만 안드로이드가 무슨. 풋. 나는 살짝 콧방귀를 뀐다.

  

산드라가 눈물을 훔친다.


“그리고 피고석에 앉아있는 저 여자. 양심이라고는 우주먼지만큼도 없이 가진 거라고는 돈밖에 없는 저년은 내 아들을 헐값에 사 갖고 가서는 저렇게 비참한 상태로 만들었어요.”


“인신공격은 하지 마시고, 사실만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3년 전 내 아들이 목숨을 걸고 도망쳐서 내가 있는 해왕성까지 돌아왔을 때는 분명 저년이 내 아들의 제대로 된 주인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야 했어요. 사사와 싸우고 아들이 날 찾아왔을 때가 우주력 1042년이었죠. 빛나던 그 애의 눈에서 활력이 사라지고 그저 멍하니 뿌연 얼음 가스로 가득 찬 해왕성의 춥디 추운 대기를 바라보고 있었던 게 기억나요. 이 엄마를 속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도 별말도 안 했어요. 아마 입력된 ‘안드로이드 행실규칙’에 어긋나기 때문이었겠죠ᆢ 사사는 내 아들이 없어진 걸 알고 주인이랍시고 주선을 타고 여기로 쫓아와서는 사시진에게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아 결국 데리고 돌아갔죠.  난 그래도 며느리라고, 내 아들의 주인이라고 사사를 정말 잘 대해 주고, 사사진에게 죽어도 네 주인 곁에서 죽어야 한다고 하면서 마지못해 그 애를 사사에게 돌려보냈어요."


산드라는 잠시 숨을 고른다.


 "그런데ᆢ 저년이ᆢ, 돌아가는 길에ᆢ 내 아들을, 지 손으로 직접ᆢ 직접ᆢ 사지로 몰아서 죽이고ᆢ, 그러고도 모자라 신체를 훼손하고 분해해서ᆢ이 어미가 시체를 찾지도 못하게ᆢ"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던 그녀는 겨우 한 마디를 남긴다.


"판사님. 부디 엄중한 판결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산드라가 증인석에서 곧 실신할 것 같다. 그녀가 겨우 말을 마친 뒤 정리들의 부축을 받으며 내려온다. 조금의 죄책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ᆢ


                          *           *           *


“자신의 신원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화성에 사는 257살 미란다라고 합니다. 재작년에 사서 아들 삼은 안드로이드 하나와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사사와 사사진이 당신의 자택에서 묵은 적이 있습니까?”


“네. 사사의 우주선이 근처 블랙홀의 자기장에 영향을 받아 화성으로 불시착했고, 제가 레이더로 포착하여 그들이 소멸되기 전에 친절을 베풀었죠. 물론 이런 결과가 되리라고 상상도 못 했지만요.”


“그날의 일을 자세히 말해주세요.”


“사사가 우주 폭풍을 일으키면서 화성에 내려오자마자 거의 천년 만에 외계인을 본 화성녀들이 몰려들었어요. 그것들은 일명 ‘칠공주’라고 불리는 할마시들이에요. 판사님도 잘 알다시피, 요즘 화성은 금성이나 수성에 비해 관광지로서의 인기도 한참 떨어졌고... 이 화성녀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그 옛날 지구에 ‘찜질방’ 인가 뭐 그런 데서 하는 것처럼 머리에 수건이나 동여매고 자기네 비위에 안 맞는 동네 남자들에게 시비를 걸어서 분화구에 발바닥을 지지게 하면서 괴롭히거나 계란을 삶아라, 요리를 해라 시키면서 먹고 노는 것 밖에 없었는데, 갑자기 엄청 재미있는 일이 생겨버린 거죠. 사사네가 내 도움을 받아 공중 해자를 건너 내 성안에 들어오자마자, 철문이 닫히는 걸 보면서  그것들이 다짜고짜 저의 집으로 돌진했어요. 다행히 문은 닫았지만. 비행 블레이드를 타고 활공을 하면서 몰려와서는 젊은 외계인하고 한번 놀아보자며 강화유리로 된 천장과 벽 밖에서 시멘트 돌조각들을 퍼부어대면서 위협했어요. 금방이라도 창문대문이 박살 날 것 같았죠.”


“그들과 충분한 대화를 해 보셨나요?”


“당연하죠. 대체 왜 이러느냐. 외계인을 함부로 대하면 화성 주정부 경찰이 당장 달려와서 너희를 명왕성에 있는 우주연방 감옥에 집어넣을 거다… 대체 듣질 않았어요. 그들은 이 시골행성에서 이백 년 넘게 지루함을 견디면서 살아온 할머니들이에요. 평생에 올까 말까 한 신기한 일이 생겼는데, 그냥 가겠어요? 외계인, 특히 백 살이 안된 젊은 외계인은 대체 어떻게 생겼냐며… 그녀와 즐겁게 ‘놀고자’한다고 했죠. 판사님도 아시죠? 그 '놀고자' 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정말 위험한 순간이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저는 독실한 우주신(universal God) 교 신자입니다. 신이 말씀하셨어요. '네 집에 든 자가 곧 나인 줄 네가 어찌 모르느냐'라고요. 손님은 곧 신과 같이 대접해야 하는 거죠.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건 너무 당연한 것이기도 하고요. 아시다시피 전 낡은 남성형 안드로이드 하나에 의지해서 겨우 살아가는 노인네에 불과해요. 싸울 힘도, 장비도 없어요. 그리고 사사에게는 최신형 안드로이드가 있었고요. 그래서 그들에게 타협을 제안했죠. 사람에게 이러면 안 된다. 내 안드로이드와 사사의 안드로이드가 있으니까 둘 다 내주겠다. 사람만큼은 못하겠지만 당신들 좋은 대로 맘껏 즐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를 받아준 미란다에게 피해를 입힐 순 없었다. 낡은 안드로이드 ‘미란다논’은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재산이다. 나는 얼른 미란다의 집 별채로 사사진을 데리고 갔다. 정원 구석에 이어진 작은 개구멍처럼 생긴 비상탈출용 해치를 열고, 내 손으로 나의 사랑하는 사사진을 그들에게 ᆢ밀어 보냈다. 사사진은 그렇게, 냉동인간처럼 하얗게 굳어서. 이미 반 시체가 된 상태로 공간으로 떠밀려 갔고, 피에 굶주린 모기떼처럼 미란다의 유리돔 저택을 붕붕 날아다니던 그 일곱 할마시들이 그 애를 곧바로 낚아채갔다. 하지만ᆢ어쩔 수 없었다. 내가 죽을 순 없으니 말이다.


"사사는 그녀의 목숨을 구해준 저에게 피해를 입힐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그렇게 한 겁니다. 만약 사사진이라도 내어 주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 불량배들에게 겁탈당했을 거예요.  잔인무도하고 무식한 야만족들이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아요? 집도 거의 부서지기 일보직전이었어요.  판사님, 사사의  잘못이 없진 않지만 선처를 꼭 부탁드립니다."


미란다의 증언이 끝났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될까?



                      


 

작가의 이전글 죽으니까 사람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