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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트랄 Sep 07. 2024

내 귀에 새가 산다ㅡ1

연재 단편소설

1. 시끄러운 새


내 귓속에 새가 산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태어날 때부터였을 수도 있고, 가족과 세상에 대해 흐릿하게  기억하기 시작한 일곱 살 때부터였던 것 같기도 하다. 자라면서 나는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내 왼쪽 귀 속에서 무언가가 조그맣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그것이 새라는 건 최근 너무 시끄러워진 새 때문에 불편해져 병원 진료를 받으면서부터 알게 된 사실이다.


      *      *      *


 그 새는 최근 몇 달 전부터 하루에 한두 번씩 무슨 말을 종알종알 해대곤 했다. 처음에는 그냥 무시했으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신경이 쓰이고 귀찮아졌다.   게다가 새는 꼭 내가 자기 직전이나 아침에 일어난 직후, 또는 중요한 업무를 처리할 때마다 재잘거렸다. 그러다가 점점, 아무 때나 노래를 부르고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새가 내는 다양한 소리에 고막이 다 아파질 정도였고, 안 그래도 예민한 내 신경이 점점 버티기 힘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어느 날 밤, 나는 큰 결심을 하고 내 방 큰 거울 옆에 서서 새소리가 나는 왼쪽 귀 옆에 작은 손거울을 가져다 대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귓구멍 속을 헤집어 보았다. 작고 아담한 내 귓속의 아주 조그만 귓구멍. 그리고 그 속에 들어있을 더욱 조그만 새. 보일 리가 없었다. 한참을 끙끙거리며 실랑이하다 손에 쥐가 나기 시작할 때가 되어서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귀 속에 새라니. 아무래도 내가 정신적으로 조금 이상해진 게 아닐까? 예전에도 누군가 TV 뉴스 방송 도중 갑자기 스튜디오에 뛰어들어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며 소리를 지르다가 관계자들에 의해 쫓겨나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도 내 귀에서는 여전히 새소리가 들린다. 짹. 째재재잭. 끼익 끼~~.  세상의 어느 병원에서 과연 나 같은 증상을 고쳐줄 것인가?

 큰 병원은 안 된다. 잘못하다가 소문이 나버리면 난 3대 일간지의 기사거리가 되고 단박에 화제가 되어 TV 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 나 “인간시대”, “위기탈출 119” 등의 좋은 소재거리가 될 것이다. 또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 젊고 어린 병원 인턴들이나 레지던트들이 떼로 몰려와서 친절하게 치료해 주는 척 나를 실험용 몰모트 취급을 해 버릴 것이다. 그건 더 끔찍하다.   


   *     *      *


“이명·난청 전문의 윤두명”


 KTX를 타고 간 지방의 어느 소도시, 이비인후과 간판 아래에 붙어있던 의사의 간단한 프로필이었다.


 병원에는 사람이 없었다. 평일 오전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접수를 받는 간호사가 두 명이나 있어서 월급이나 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 외에도 안쪽 벽 색깔이 온통 주황색이어서 어린이 병원도 아닌데 왠지 의사 취향이 좀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이름이 불려지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흰머리가 곳곳에 나 있는 평범한 인상의 남자였다. 그는, 내가 말을 시작하기 전까지 의자에 앉은 채 그저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었다.

   먼저 증상을 물어보지 않지? 한 5분쯤 뜸을 들이다가, 나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저,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제 귀에 새가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요?” 의사는 아주 지극히 평범하게 대답했다. “그래서요?”

“놀라지 않으시네요? 이건 그렇게 대수로운 일이 아닌데…”


오히려 당황한 내 목소리가 높아졌다.  


 “귀 속에는 많은 이물질들이 들어가곤 하지요. 모래, 벌레, 이…  각종 장난감이나 심지어 유리조각도 들어가요. 환자분의 경우처럼 살아 있는 생물이 들어가는 경우도 왕왕 있어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건조한 어투로 말하면서, 는 일단 내 왼쪽 귀 속을 들여다보고, 작은 카메라가 달린 길고 가는 관을 귀에 삽입해 귀 안의 사진을 찍어 보여주었다.


 “이 화면을 보시죠.”


 정말로 새가 있었다! 귀 속에 들어갈 정도로 아주 작은 노란 새. 새끼손가락의 손톱만큼 작은 얼굴에 부리와 눈도 보였다. 끔찍했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할 만큼 친근감이 느껴졌다. 왜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저렇게 작은 새가 이 세상에 존재하나? 그보다, 왜 나는 소리를 지르지 않는 거지?


 “그런데… 이 새가 선생님을 불편하게 하나요? 보기에는 상당히 얌전해 보이는걸요.”


 의사의 말은 정말 의외였다. 새가 귀 속에 있는데 불편한 게 당연하지. 이 사람 꼭 새가 둥지 안에 있다거나 새장 속 나뭇가지에 조용히 앉아 있다는 듯 말하네?


 “최근에 너무 말이 많아졌어요. 전…  평화로운 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조용히 살고 싶어요. 귀가 너무 아파서요.”


 내 목소리가 갈라진 저음을 냈다.


 “이 아이…  억지로 꺼내면 죽습니다. 물론 선생님의 귀도 상당히 손상을 입어요. 사진 보시면 알겠지만, 이미 이 새는 귀의 한 부분이 되어 있어요. 수술도 힘듭니다. 새를 죽였다간 안에서 귀까지 함께 썩을 수도 있고…  잘못하다간 한쪽 귀의 청력을 영원히 잃을 수도 있습니다. ”


 뭐라고? 나는 절망했다. 그러면 이 시끄러운 새를 평생 달고 살아야 하나?


 “지금은 새가 조금 쉴 수 있게 때때로 숙면을 취하게 해주는 아로마 향기를 뿌려드리죠. 그런데 새가 자라나면서 새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질 겁니다. 그리고 귀를 막아서 점점 더 새소리 이외의 다른 소리를 듣기 힘들어질 겁니다.

  아, 물론 다른 한쪽 귀가 있으니 아예 안 들리지는 않겠지만 귀의 양쪽이 각각 다른 소리를 들어야 하니 조금 혼란이 올 수 있겠네요.”


점입가경이다. 어쩌라는 거지, 그럼?


“그럼 어떻게 하나요? 그 향수를 계속 뿌려서 새를 재우면 되나요?”


의사를 고개를 저었다. “이건 임시방편일 뿐이에요. 약을 하나 더 처방해 드릴게요. 만약 너무 크게 울부짖으면 이 약을 드세요.”


“이 약은 진통제나 소염제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귀에 넣는 약은 없나요?”

“위험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새를 죽일 수도 없어요.”

“그럼 불빛이나 소리 같은 걸로 유인해서 빼내면 안 되나요?”


내 질문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초등생들이나 할 질문이라니.   


“아뇨. 그렇다고 새가 날아가진 않으니까요.”


“그럼 아까 그 아로마 향을 뿌리면 조금 조용해지나요?”


나는 이미 모든 기운이 빠져서 힘없이 물었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새가 잠을 잘 때만 조용할 테니까요.”


 이제 정말로 화가 났다. 이놈의 새 때문에 내가 직장에서 연차를 내고 이 먼 지방까지 왔는데. 이 의사 혹시 돌팔이 아냐?


 “그럼 약을 왜 먹어요? 다 필요 없다는 거잖아요!”


 나는 참지 못해 소리를 질렀다.


 의사는 잠시 숨을 멈추고,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의 금색 안경테가 빛나고, 짙은 눈썹을 조금 찌푸리는 듯 느껴졌다.

 

 “새는…  귀 속에서 지저귀고, 그 소리를 당신이 이해하고 알아들을 때까지,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당신이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할 때까지 계속 노래를 부를 겁니다.”  


“무슨 헛소리예요!”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데스크에서 계산을 하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간호사가 내미는 의사의 처방전은 그대로 가지고 나왔다.

 진통제 한 알, 소염제 한 알, 그리고 따로 포장된 아로마 향수 머시기라는 물약 한 병. 이게 약이라고? 허참. 헛웃음만 나왔다.

 

*       *       *


 짙은 안갯속에서 노란 새가 보인다. 귓속의 새다.  얼핏 보면 병아리 같기도 하고, 크기는 다 자란 닭 같은데... 부리는 붉은색이다. 새가 노래를 부른다.


식탁 위에는 쌍칼이.. 휘익~ 휘익~

싱크대에는 맹독이. 우욱~~~ 우욱~~~

머리맡에는 모기가 , 화장실에는 바퀴가

세탁기 속엔 죽은 쥐가, 베란다 화분 위에는 송충이...

윙~ 윙~ 윙~~ 두두두 두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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