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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트랄 Sep 10. 2024

내 귀에 새가 산다ㅡ2

연재 단편소설

이놈의 새를 어떻게든 없애 버려야겠다. 너 죽고 나 살자.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해 모든 블로그와 페이스북과 인터넷 까페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새” 혹은 “귀”, “귀에 사는 새”, “귓속에 사는 새”, “내 귀에 새”, “시끄러운 귓속 새” 등등을 검색어로 입력했다. ‘새의 종류’, ‘귓병’ 등의 연관검색어 아래 ‘이명’ 또는 난청‘에 관한 광고가 눈에 띄었다.


…이명이란 실제로 외부에 소리자극이 없는데 귀에서 뇌까지 소리전달이 되는 과정 중 어느 부분에 이상이 생겨서 간헐적, 지속적으로 소리가 들리는 현상입니다. 이명에는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귀뚜라미, 여치나 매미처럼 벌레 우는 소리부터 생활 소음에 해당하는 세탁기소리, 종소리, 기차, 파도, 바람, 초침, 폭포, 맥박, 북, 증기, 제트기, 빗방울, 쇳소리, 삐 하는 소리까지…


 헉. 이렇게 많은 종류의 소리가 귀에서 들린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명에 수반되는 증상으로는 난청, 어지럼증, 불면증, 두통, 위장장애. 불안, 관절통, 우울증, 귀 막힘, 신경쇠약, 노이로제, 구토 등이 있습니다. 그 원인으로는 체력이 약하고 원기가 부족하며 근심과 심리적 압박이나 정신적 충격이 있을 때, 긴장할 때, 각종 귀 질환이 있을 때…


 그래. 내 증상과 너무 비슷하네. 특히 불면증과 두통은 정말 그렇다. 그런가? 나도 정말 귀 속에 새가 사는 게 아니라 이명이 있는 게 아닐까? 엊그제 병원에 갔을 때 본 그 새는 너무 작았어. 혹시 귀지나 때 같은 게 마치 새처럼 보인 게 아닐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예전의 그 이비인후과 원장이 의심스러워지면서, 다시금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이번에는 한의원을 찾아가야겠다. 한의원은 이비인후과가 아니기 때문에 혹시 내 귀 속에 정말로 새가 살더라도 귀 속을 첨단 장비를 이용해 들여다보지는 않겠지. 검진을 한다고 해도 너무 깊숙이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을 거야. 아니. 귀 속을 보자고 하면 그냥 이명이니까 치료해 달라고 하면 되지. 침, 뜸, 부항, 한약…  뭐 이런 요법을 쓰면 좀 나아지지 않겠어? 라고 나는 내내 생각하며, 주변에 물어물어 잘한다는 한의원을 찾았다. 그냥 요즘 두통이 심하고 원기가 허해서 약 한 첩 지어먹으려 한다고 둘러대면서…


             *           *           *


 드디어 인천에 있는 꽤 유명하다는 한의원에 가게 된 건 전화로 예약을 한 지 꼭 한 달만이었다. 토요일 오전, 그 한의원 병원 앞에는 길거리까지 사람들이 나와서 줄을 서 있었다. 대부분은 나이가 좀 드신 어르신들이었고, 키 성장을 위해 엄마 아빠와 손목을 잡고 온 아이들도 보였다. 아이들은 대부분 삐요삐요 소리를 내면서 핸드폰 게임을 하거나, 한 손엔 사탕을, 또 한 손엔 엄마나 아빠가 억지로 손에 쥐여 준 학습지를 풀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 가량 대기하다가 진료실에 들어갔다. 한의원 원장은 귀는 보지도 않고 내 손목을 짚어 보더니 말했다.


 “흠…  기가 허하시군요. 그러니 새가 짹짹댈 밖에요. 스트레스 많으시고 과로도 많으시고…  화병이 좀 있지요? 나가셔서 귀 근처에 침 몇 대 맞으시고요. 다음 주에 한약 받으러 오세요. 일주일에 한 번씩 침 맞으시고 한 달 한약 드시면 많이 나아질 겁니다.”

 

 몇 시간을 기다려 진료실에 들어가든 의사 면접은 항상 오 분도 채 안 된다. 한의원은 왜 어디나 하는 말이 다 비슷할까?


  진료실 밖에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앉아있었고, 전문 침술사가 흰 천으로 싼 침통을 들고 돌아다니면서 침을 한 대씩 놔 주고 있었다. 어쨌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되어 왼쪽 귀 뒤쪽 가운데 부분에 일단 침을 한 대 맞았다. 아야. 따끔했다. 이어서 그 아래쪽도 한 대. 이런 식으로 왼쪽 귀 뒤에는 다섯 개의 긴 바늘이 꽂혀 고슴도치 꼴이 되었다. 거울을 꺼내 얼굴을 보았다. 좀 보기 흉하지만 할 수 없지.


 한의원에서 집까지 전철을 타고 오면서 나는 겨울 햇살이 조용히 내려앉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계양에서 운서까지 가는 공항철도는 마치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것 같다. 하늘에 더 가까운 기차는 긴 영종대교를 건너고, 바다가 보이고 드문드문 예쁜 주택들도 간간이 보인다. 길게 드리운 섬의 지평선이 은빛 구름과 맞닿은 풍경이 참 좋았다.

  사람들은 대부분 커다란 여행 가방을 몇 개씩 자기 무릎 앞에 두고 있었다. 터반이나 히잡을 두른 중동 인들과 코가 크고 머리카락과 눈 색이 에메랄드빛인 사람들도 자기네들끼리 뭔가 이국적인 언어로 대화를 하고 있다.

 추운 날씨였지만 전철 안은 안락했다. 내가 앉은 알루미늄 전철 의자가 그렇게 푹신하게 느껴진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특히 새가 갑자기 조용해져서 너무 행복하고 평화로웠고, 내 귀에 진짜로 새가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난 어린 시절 봄날 할머니 댁 마당 앞 평상에서 그랬듯, 전철 안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눈꺼풀이 노란 햇살을 살짝 가렸다.


2. 노란 새, ‘리나’

 

 그 새, ‘리나’는 죽었다. 리나는 노란 새였다. 날개 죽지 부분과 머리 가운데 부분은 예쁘게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부리 위 콧구멍처럼 생긴 부분이 분홍빛을 띄었으므로 암컷일 거라고 했다. 내가 직접 리나를 할머니 집 마당 안뜰에 고이 묻어 주었다. 우리는 크리스챤이 아니므로 십자가 따위는 그 위에 세우지 않았지만. 할머니 집에 피어있던 보랏빛 주홍빛 철쭉들 사이로 조용히 돋아난 하얀 색 철쭉 아래 흙을 파서 작은 수목장으로 장례를 치러 주었다. 그때 나는 일곱 살이었다.

  엄마 아빠와 나는 거의 매주, 시골에 계신 할머니 댁에 내려갔다. 엄마 말에 따르면 내가 태어나자마자 아빠가 그렇게 자주 시댁에 데리고 갔다고 했다. 엄마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할머니 집에 가는 게 좋았다. 일단 할머니 할아버지 집은 우리 집보다 훨씬 크고 방도 많았고 마당에 정원까지 있었으며, 커다란 개부터 갓 낳은 새끼 강아지까지 개 대여섯 마리가 대문 앞에서 왈왈 낑낑대곤 했다. 집 옆에는 쓰러져가는 건물이 하나 있었다. 예전에는 할아버지가 레스토랑 겸 까페로 운영했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대문짝이 다 빠져 있고 가끔 야밤에 취객이 몰래 들어와 실례를 하곤 해서 가까이 가면 오줌 냄새가 났다. 할아버지는 그 건물 안에다 큰 고양이 우리를 몇 개 설치하고 열댓 마리나 되는 고양이를 기르셨다.


  할머니 집에 가기 전에 나는 항상 커다란 금빛 원형 새장 안에 리나의 좁쌀 모이를 잔뜩 담아서 챙겨갔다. 새장을 무릎에 안고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두 시간 가량을 계속 흔들리며 가면서도 왠지 리나가 신나서 짹짹거린다고 느꼈다. 그러는 사이 차 안 바닥은 새똥과 물과 흘린 새모이로 지저분해졌지만… 할아버지는 우리가 도착해서 들고 들어온 새장을 보자마자 엄마 아빠에게 꽥 소리를 지르셨다.

 

 “너희는 새털이 얼마나 사람 몸에 안 좋은 줄 아냐? 얼른 치워라! 애 호흡기 질환 생긴다.”


 개와 고양이를 수십 마리나 키우시는 할아버지가 왜 내가 대형마트에서 입양해 온 리나는 그렇게 싫어하셨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할머니 집에 가면서 리나를 혼자 둘 수 없어 데리고 갔던 건데… 할아버지도 예전에 카나리아를 키우셨다면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할아버지는 인간과 동물이 같은 곳에서 먹고 자는 것이 싫으셨던 것 같다. 우리는 거꾸로 할아버지가 개 우리와 고양이 우리를 그렇게 지저분한 곳에 두는 것이 바로 ‘동물 학대’라고 볼멘소리를 하곤 했다.


         *          *          *


 리나는 원래 성격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입양해 올 당시엔 손가락에도 올라오고 어깨에도 올려놓고 다니기도 했지만 며칠 지나자 새장 밖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새장 밖에 꺼내서 놀아 주려고 해도 손을 쪼는 등 까칠하게 굴었다. 나는 손등을 보호하기 위해 목장갑을 끼고 리나와 한창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그래도 동네 친구들이 놀러오면 난 어김없이 리나를 소개했고, 날씨가 좋으면 새장 째 놀이터에 들고 가서 동네방네 리나를 구경시켰다. 윙컷을 해 주어서 리나가 하늘로 날아가 버릴 염려는 없었지만, 그래도 집 밖에서 새를 꺼내는 건 항상 조심스러웠다.

 가을이 되자 리나는 털갈이를 하는 지 한번 푸드덕 거릴 때마다 엄청난 양의 노란 털을 온 거실에 흩뿌렸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생각한 엄마와 아빠는 할아버지 말대로 리나를 베란다로 옮겨 버리셨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나는 곧 리나가 우리 집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렸다. 일주일 뒤 갑자기 ‘어? 짹짹 소리가 들리지 않네?’ 하는 생각이 들어 베렌다로 급히 나갔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새장 바닥엔 초록과 하얀 색이 반반 섞인 새똥과 좁쌀 껍질 같은 먹이 부스러기, 곰팡이가 핀 사과 껍질, 그리고 노란색 새털들이  뒤엉켜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조용히, 그리고 뻣뻣하게 눈을 감고 누워 잠을 자고 있는 노란 새가 보였다…


 리나는 왜 죽었을까? 모이가 부족했던 걸까? 물을 자주 안 갈아줘서? 썩은 사과 조각을 먹고 배가 아팠을까? 베란다가 너무 추웠나? 이유가 무엇이든, 리나에게 너무나 미안했고, 리나가 불쌍했다ᆢ 


3. 말을 거는 새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내 귀에서 처음 새 소리가 난 건 리나가 죽은 지 한 달 쯤 된 후 부터였다. 그 즈음 엄마와 아빠는 자주 다투셨다. 어린 나는 방에서 나와 보지도 못하고 그저 문 뒤에서 숨죽이며 엄마와 아빠의 대화를 엿들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뭣 때문에 두 분이 그렇게 싸우셨는지도 생각이 잘 안 난다. 엄마에 대한 아빠의 불만은 내가 보기엔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엄마가 깜박 잊고 아빠의 와이셔츠를 다려놓지 않았다든가, 양복바지 줄을 잘 못 잡았다던가, 냉장고에 먹다 남은 수박을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았다든가, 먹을 걸 제대로 챙겨놓지 않고 출근을 했다든가…

 엄마는 아빠가 집에서 청소기 한번 돌려주지 않고, 쓰레기 한번 버려주지 않으면서 엄마를 무시하고 잔소리를 한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맞벌이 부부인 엄마 아빠는 두 분 다 항상 바쁘셨고, 우리 집엔 아침저녁으로 내 밥을 차려 주러 오시는 이모할머니가 계셨다. 오후에 집에 오면 항상 심심했다. 그래서 가끔 스케치북에 리나를 그렸다. 새장 속 바닥에 조용히 누워 있는 리나. 눈은 ‘x’자 두 개로 그렸다.

 저녁 아홉 시가 조금 넘으면 엄마가 퇴근해서 집에 오셨고, 내가 자려고 누워 있으면 엄마는 내 이마에 뽀뽀를 해 주셨다. 안자고 기다리면 엄마는 내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주실 때도 있었다. 더 늦게 열한 시나 열두 시가 되면 아빠가 오셨다. 아빠가 오셨다는 건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소리로 알 수 있었다. 아빠는 엄마에게 “살림을 정말 못 한다”며 비난하셨고, 이에 엄마는 질세라 크게 소리를 지르셨다.


“내가 친정, 시댁 도움 하나도 못 받고 회사 일에, 육아에, 가사노동까지  하는데! 당신은 저녁 열 시 전에 들어온 적이나 있어?”


“그럼 내가 놀아? 나도 매일 밤새고 힘든 데 들어오면 반갑게 맞아주기는커녕 도끼눈이나 뜨고! 당신은 분리수거 해본 적도 없지?”


“오늘 아침에 나 머리 감는데, 애가 밖에서 문 두드리고 징징대는데! 당신은 소파에서 여유롭게 신문 보고 있더라? 급하게 젖은 머리에 수건 두르고 나와서 당신 모습 보는 데 얼마나 기가 찼는 줄 알아? 얼마나 애가 아빠를 남처럼 생각하면 나한테만 와서 매달리겠어?”


“그럼 회사 그만 둬! 애나 키우면 되잖아!”

“뭐? 내가 왜?”


 하지만 엄마의 분노는 별로 효과가 없었다. 아빠는 견고한 철옹성과 같이 ‘집안일과 아이 키우는 일은 무조건 여자가 해야 한다’라는 21세기 남편 같지 않은 18세기적 사고방식으로 엄마를 대했고, 그런 아빠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건 바로 할머니였기 때문이다.

 엄마 말에 따르면, 아빠는 처음 결혼했을 때는 참 친절하고 배려심이 많은 좋은 남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어른들 앞에서 손잡는 거 아니다”, “내 앞에서 내 아들이 설거지 하는 꼴 못 본다.” 등 전형적인 시어머니 잔소리를 하셨고, 아빠는 할머니의 말씀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점점 보수적인 남편이 되어갔다고 다.


 하지만 할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손주인 나에게는 항상 먹을 것 잘 챙겨 주시고 너무나 자상한 좋은 분이셨다. 내가 초등학생이 된 후 할머니 댁에 자주 가지 못하자,  할머니가 가끔 안부 전화 좀 하라고 하셔서, 용돈도 좀 더 탈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종종 전화드렸다.

  할머니는 “학교는 잘 다니냐”, “공부는 잘 하냐”, “친구들은 많으냐” 등을 물어보셨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한 마디를 더 물어보셨다.


“그래, 너희 엄마랑 아빠랑 혹시 또 싸우냐?”

“네, 맨날 아빠가 엄마한테 반찬가지고 뭐라 해요… ”

“음. 그건 엄마가 잘못했고… ”


 할머니의 “그건 엄마가 잘못했고… ” 다음에는 그 어떤 말도 이어지지 못했다. 그 다음 말은 할머니가 하시지도 않았고, 나는 더 이상 말을 못하고 “네, 알겠어요.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끊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내가 엄마 아빠에 대해 어떤 말을 하든지 할머니는 항상 “그건 엄마가 잘못했고…” 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나는 할머니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           *           *


 그 즈음, 꿈에 리나가 나타났다. 리나는 새장 안에서 스스로 작은 문을 위로 밀어 열고 내게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리나는 침대 머리맡으로 오더니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짹 째재재잭…  나는 그 새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자꾸 “응?” “뭐라고?” 하며 되묻자 리나는 거실로 푸드덕. 날아가더니 바닥에 떨어진 종이조각 하나를 물고 다시 나타났다.

 모서리가 꾸깃꾸깃한 종이조각, 그건 내가 예전에 유치원 다닐 때 끄적끄적 낙서를 하다가 꾸겨서 휴지통에 버린 연습장 종이였다.


“ㅇ  ㅜ   ㅎ  ㅡ  ㅣ”


 결국 아빠와 엄마는 이혼했다. 나는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가끔씩 귀 속에서 리나가 짹짹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에 가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리나는 중요한 순간에도, 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순간에도 계속 짹짹거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중요한 면접을 보면서 나는 언젠가부터 귀 속에서 무언가 짹짹거리는 그것이 ‘리나’였다는 사실 조차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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