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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트랄 Sep 11. 2024

레위인의 변론ㅡ2

SF단편소설

2. 나, 사사진, 안드로이드


처음 사사와 함께 우주선을 타고 그녀의 고향인 지구로 갔을 때가 기억난다. 그녀는 내 금빛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귀여운 것. 넌 지금부터 내 첩이니까 이름은 내 이름을 따라 '사사진'으로 해야 해ᆢ. '사사의 것'이라는 뜻이지."


  나는 그날부터 그녀의 것이 되었다. 정확한 나의 신분은 그녀의 '첩'이다. 그녀는 인간 남성과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이지만 나는 절대 그녀의 '남편'이 될 수 없다. 내가 안드로이드이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프로그램 되어있는 기상 시간인 여섯 시에 일어나 사사를 위해 아침밥을 지었다. 나는 안드로이드니까 몇시에 일어나든-사실 잠을 안자도-상관없지만, 그녀의 아침잠을 달그락 거리는 소리로 깨우지 않기 위해 정한 시간이다. 오늘 아침은 그녀가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인 간장에 재운 쇠고기와 야채를 함께 넣어 볶은 불고기와 콩 잡곡밥이다. 맛과 색과 영양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그녀의 기준을 잘 맞추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그녀가 설정한 가장 부드러운 남성의 목소리와 톤으로 그녀를 깨운다. 사사는 오늘도 일어나기 싫은지 미간을 찌뿌리고, 발길질로 이불을 몇번 찬다. 눈을 비비고, 나를 보더니 항상 하는 첫 마디를 던진다.


"옷이 그게 뭐니? 좀 멋있게 입으란 말야! 네 주인 욕 먹이지 말고..."


  사사는 나에게 무슨 옷을 어떻게 입으라고 구체적으로 주문한 적이 없다. 옷을 사준 적도 없다. 내가 그녀의 취향을 분석하여 직접 내 옷을 사 입을 수도 없다. 법적으로 안드로이드는 일ㅡ단순한 작업 등ㅡ을 할 수 있어도 버는 돈은 모조리 주인의 통장으로 들어간다.  나는 내가 낮에 일하는 편의점 점원 업무와 간간히 들어오는 안드로이드 모델 일에서 얼마의 수익이 나는 지도 전혀 모른다. 그래서 할 수없이 사사와 '혼인계약'을 맺기 전에 입었던 옷을 매일 바꾸어 장착한다.

  하지만 사사의 이러한 부당한 불평에도 나는 한 마디도 대꾸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주력 1020년에 제정된 안드로이드 행실법은,


 제 2조 제 1 : 안드로이드는 자신의 생명을 빼앗기는 일을 제외한 주인의 요구에 최대한 부응하여야 한다.


제 3조 제 2항 : 주인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하거나 주인에게 불경한 말투를 사용해서는 안 됀다.


라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안드로이드 행실법(줄여서 '안행법'이라고 쓴다) 위반 시에는 혼인계약 파탄의 책임을 물어 재판에서 불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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