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스트랄 Sep 26. 2024

레위인의 변론ㅡ4

SF 단편소설

4. 최고의 변호사 '치라'

  ᆢ나는 우리 레위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변호사, '치라'를 섭외했다. 무려 30대 초반에 지구 최고의 '하발'로스쿨을 최고의 성적으로 졸업한 그녀는 변호사 개업 후 약 10년 동안 5천 건 이상을 수임했으며, 그녀가 직접 변론하는 사건은 지금까지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젊었을 때의 그녀는 무엇보다 샤프한 외모에,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은회색 바지정장을 갖추어 입고 법정을 뛰어다니다시피 하며 배심원들을 향해 날카로운 변론을 펼쳤다. 고대적 지구의 배우 '다니엘 헤니'를 닮은 저음의 매력적인 여성, 그 당시 별명이 '은갈치' 또는 '헤어테일'로 통했다. 하지만 지금은ᆢ


   *      *     *


 "ᆢ왜 그러셨어요? '사사진'을 사랑하지 않았나요?"


  심드렁한 말투. 배가 나오고 양볼에 불독살이 오른, 앞머리 이마 부분이 하얗게 세고 탈모 증상이 보이는 60대의 할머니에 불과하다. 검정 뿔테 안경 패션은 여전하다. 2~3년 전부터 돈독이 올라 돈 많은 집 자제들이 저지른 강력사건을 변호하다가 갑자기 명성이 쇠락한 덕택에 수임료를 50%나 싸게 해 준 건. 뭐. 나쁘지 않다.


"죄목이 '살안방조' 지만 검사 측이 여론몰이 하면  '살 안 교사'도 될 수 있어요. 게다가 가장 중요한 문제는, 부서진 안드로이드 본체를 직접 분해한 거죠. 끔찍하지 않았나요? 아무리 기계라도 생체형이라 인간과 그닥 다르지 않았을 텐데?'사체유기'까지 죄목이 올라갑니다."


그녀는 오랜만에 맡은 사건이 짐짓 흥미로웠는지 표정에 생기가 도는 듯하다. 비아냥대는 말투가 맘에 안 들지만 일단 참기로 한다. 로스쿨 선배가 추천해 주지만 않았어도.


"아시다시피, 저도 레위인입니다. 절차나 양형 가능성은 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치라님 소개받은 거고요."


 치라가 고개를 까딱한다, 별들이 가득한 광활한 우주 공간을 홀로그램으로 보여주던 둥그런 공간벽들이 내게 가까이 다가온다. ᆢ고 느끼는 순간, 영상이 사람의 얼굴 형태로 바뀐다. 아름다운 금발의 백인 남성ᆢ 안드로이드. 사사진.


"진!!!!"


진짜가 아님을 알고 있지만, 나도 모르게 소리친다. 아아. 나는 사사진을 좋아했다. 그것도 많이.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치라는 그제야 누그러진 말투로 돌아왔다.


"그 안드로이드를 좋아한 건 맞군요. 그걸 확인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자. 이제 재판에 유리한 증거 하나가 수집되었군요.


"난 사사진을 정말 좋아했어요. 그 애가 그날, 법과대 홈커밍데이, 그렇게 부정을 저지르지만 않았어도ᆢ"


나는 그 기억을 떠올리기가 싫다.



 


작가의 이전글 용서의 필요충분조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