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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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이 이야기는 우리 신화와 설화를 소재로 한 『신화 신들의 뒷담화』, 『용의 나라 고려』, 『조선 신선전』의 다음 이야기 입니다.
일제강점기, 우리 인간계는 태양제국에 점령되어 있고, 태양제국 신토(神土)의 신들은 우리의 천계 신시(神市)에 침입할 입구를 찾기 위해 우리 정계를 파괴합니다.
제국중학교에 다니는 해온은 제국인 아이들의 횡포에 시달리다가 ‘신선학교 여름학당’ 입학통지서를 받습니다. 기차를 타고 신의주에 도착하여 신기한 방법으로 들어간 곳은 정령들이 다니는 신선학당, 선생님들은 무려 신선들이네요.
인간계의 아이들을 입학시켜 도술을 가르쳐서 우리 정령계를 지키려는 것이 선사들의 계획이 어떻게 진행 될까요?
목차
1. 침입자
2. 입학 허가서
3. 신선학교 입학식
4. 첫수업
5. 용마 기마술 수업
6. 신물 창고
7. 신선들의 구슬치기
8. 금지된 계곡
9. 잊혀진 신들의 난민촌
10. 축지술 수업과 종강
11. 암울한 현실과 오지 않는 입학 허가서
12. 의아한 동행, 다시 만난 친구들
13. 신서의 인장 만들기 수업
14. 신선들의 바둑 대결
15. 부적 대결 수업
16. 정월 대보름 불꽃놀이
17. 학년말 도술 시험
18. 귀신 붙은 장기알
19. 출생의 비밀
20. 열병
21. 다시 돌아 온 학당
22. 용마 격구
23. 솔거 화선
24. 선녀탕 침입자
25. 수상한 사냥클럽
26. 해온의 환시술
27. 덫
28. 방황
29. 강절의 정체
30. 종합격구 훈련
31. 기습
32. 후퇴
33. 강절의 최후
34. 용광검
35. 반격
36. 진심
37. 투리의 행방
38. 구슬의 유혹
29.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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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2. 입학 허가서
제국중학교 2학년생인 해온은 오늘도 무거운 발걸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밤잠을 아껴 공부를 했고, 앞날이 보장 되어 있다는 ‘제국중학교’에 합격하자 할아버지는 동네잔치를 벌이며 자랑했었다. 막상 그 명망 높은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해온은 학교생활이 도무지 즐겁지 않았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막대기를 든 학생주임이 복장과 두발, 손톱을 검사하였다.
“교복을 다리지 않았구나. 손톱 밑이 새카맣구나. 머리카락이 많이 자랐구나.”
교문 옆에는 늘 이렇게 걸린 아이들이 ‘엎드려뻗쳐’ 자세를 하고 있었다. 모두 점령지의 아이들이었는데 집안일을 도와 일을 하다보면 손톱 밑에 풀물이 들게 마련이었다. 제국의 교사들은 이를 게으름과 불결이라는 이름을 붙여 비난했다.
이 첫 관문을 통과하면 교실 입구에서 기다리는 제국의 아이들이 있었다.
“조센징들은 내 가랑이 사이로 들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이 자랑스러운 제국중학교는 식민지의 무지한 아이들을 일깨워 주기 위해 우리 태양제국에서 세워준 학교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그 고마움을 알아야 한다.”
야마리는 아침마다 이 일을 즐겼다. 그의 곁에는 유마타와 이영훈이 그림자처럼 붙어있어 강력한 세력구조를 과시했다. 그들의 희생자는 늘 석춘이었다. 석춘은 덩치는 컸지만 야마리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 해 가랑이 사이로 기어들어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해온은 석춘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멀찍이 서성이다가 종소리가 나면 교실로 들어갔다. 그러면 제국의 교사는 자신보다 늦게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벌을 내렸다. 이렇게 시작한 하루는 엉망이 되고 만다.
월요일 아침에는 운동장에서 전교생 조회를 했다. 학교장이 단상에 오르면 해도 높이 떠올랐다.
“저 붉은 태양을 보아라. 바로 태양제국의 광명이 조선의 구석까지 비추어 주고 있다.”
해온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해는 황금빛인데 왜 자꾸 붉은 태양이라고 하는지. 교장은 마이크가 울리도록 목청을 높였다.
“서구의 선각자 윌리엄 캠던이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해가 제일 먼저 뜨는 우리 태양제국은 일찍이 서구문명에 눈을 떴다. 그래서 부국강병을 이루었다. 이런 우리의 선진문명을 아직 깨어나지 않은 ‘아침의 나라’에 전해주기 위해 우리가 온 것이다. 너희 게으른 민족을 개화시켜 주기 온 것이다.”
학생들의 대부분이 제국인 인데도 ‘너희’라고 하는 것은 학교 담장 밖의 주민들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이렇게 붉다고 우기는 태양아래에서 교장의 목청이 불타오르고 아이들의 정수리도 달아올랐다. 해온은 소학교 시절부터 들어 온 말이라 열등감조차 익숙해져 있었다. 그저 빨리 정수리에서 들끓는 태양을 피하고만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또한 순탄하지 않았다. 제국에서 건너 온 이주민들 때문에 남촌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청계천 주변에 토막을 짓고 살았다. 야마리와 유마토가 남촌으로 향하면 이영훈과 옆 반의 이윤형은 북촌으로 향했다. 신흥부호들이 사는 북촌으로 가려면 청계천을 건너야 한다. 학교에서는 야마리 뒤에 서서 고개만 끄덕이던 이영훈은 하굣길에서 조선인 아이들을 괴롭혔다. 제일 먼저 석춘에게 가방을 던진다. 그러면 석춘은 한 번 노려보지도 못 하고 가방을 받아들고 갔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청계천이 나오면 해온은 그리 반가웠다. 친제국자들은 함부로 들어오지 못 하는 거리였다. 해온이 석춘의 팔을 잡아끌고 청계천 길로 들어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석춘은 북촌까지 가방심부름을 해야 한다. 이영훈과 이윤형은 아쉬운 표정으로 석춘에게서 가방을 돌려받고 수표교로 올라섰다.
“저 자식들 크게 한 번 봐버리자.”
만석이 이영훈과 이윤형의 뒷모습에다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만석지기가 되라며 할아버지가 이름 지어 주었다는 만석은 덩치가 좋았다.
“녀석의 아버지가 중추원 관료라 건드렸다간 마을 전체가 날아 갈 수 있어. 천변이나 동대문 밖으로 쫓겨나 사는 것도 억울한데 거기서마저 쫓겨나면 어쩌겠니? 며칠 후면 방학이니 그 때 한 방 날려주자.”
해온의 제안에 모두들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 학교 다녀왔습니다.”
해온은 할아버지 방에 들어 가 무릎을 꿇었다. 할아버지는 조용히 먹을 갈며 물었다.
“그래, 오늘은 무얼 배웠느냐?”
“체육시간에 의자놀이를 했습니다. 의자를 빙빙 돌면서 노래 부르다 호각소리가 나면 의자에 앉는 놀이였는데 의자 하나가 모자랐습니다. 제가 의자에 앉으려는데 이영훈이 저를 밀어냈습니다. 자기 앞에 있는 의자는 야마리에게 내어주고 제 앞의 의자를 차지했습니다. 다음 판에는 석춘이 앉으려는 의자를 야마리가 걷어차 석춘은 맨땅에 주저앉았습니다. 야마리는 쓰러진 의자를 세워 앉았습니다. 그리고 석춘을 벌레 보듯이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래서 하굣길에 석춘은 이영훈과 이윤형에게 좀 더 시달려야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구나.”
하더니 어딘가로 보낼 서찰을 써내려갔다.
드디어 방학날이 되었다. 한 달 간은 제국의 교사와 아이들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7월 17일에서 8월 15일 까지가 방학이다. 해온은 이 두 날짜가 몹시도 좋았다.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드는 날짜였다. 들뜬 해온의 기분을 깨뜨리려 야마리가 다가왔다.
“한 달간 너희들이랑 못 놀아서 아쉽다. 너희는 방학 때 농사일이나 하겠지만, 우리는 ‘제국군 여름군사학교’에 간다. 군영에서 야영하며 성스러운 전쟁을 준비 할 것이다. 우리 제국은 동양을 하나의 지붕으로 덮어야 하는 사명을 가졌거든.”
야마리가 신이 나서 떠들자 이영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했다.
“이 아이는 조선인이지만, 제국의 은혜를 받아 여름군사학교에 입학이 허락 되었단다. 너희는 꿈도 못 꿀 영광이지.”
야마리는 마치 성은이라도 베푸는 듯 이영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한바탕 자랑이 끝나고 야마리와 유마토가 남촌 쪽으로 내려가자 이영훈과 이윤형은 긴장해 있던 어깨에서 힘을 뺐다. 그리고 경멸스런 눈으로 석춘을 보더니 가방을 던졌다. 석춘은 갑자기 날아 든 두 개의 가방을 놓치고 말았다.
“야, 똑바로 못 해?”
이영훈이 눈을 부라리며 다가서자 해온이 가방을 집어 들었다.
“내가 가방 들어 줄게.”
하며 가방에 묻은 흙을 털어 고이 안았다.
이영훈이 만족한 표정으로 앞장서 걸었다. 이영훈과 이윤형은 여름군사학교에 대한 기대로 잔뜩 부풀어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해온은 귀가 따가워 견디기 힘들었지만, 부러워하며 경청하는 티를 냈다. 그 사이 뒤에서는 만석이 자루를 들고 합류했다. 해온이 이영훈의 가방을 뒤쪽으로 향하게 하니 만석이 자루 속에 든 것을 가방에 쏟아 부었다. 청계천이 나오자 둘은 아쉬운 듯 가방을 받아들었다. 조금 무거워진 듯 한 가방을 받아 들더니
“아쉬워서 어쩌냐? 우리가 여름군사학교 다녀오는 동안 너희들은 똥 푸고 농사나 짓겠구나.”
“우리야 농사일 도우며 개울에서 멱감으며 더위를 나겠지만, 남의 나라 군대에 끌려갈 연습을 하는 너희 앞날이나 근심해라.”
해온이 근사한 인사를 남기며 청계천 토막촌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모퉁이에 숨어 지켜보았다. 이영훈은 수표교 중간쯤에서 가방을 내던지며 소리쳤다.
“배 뱀이다!”
이영훈은 팔을 휘감은 물뱀을 털어내며 몸부림을 쳤다. 이윤형도 제 다리를 휘감는 뱀을 털어내며 냇물로 뛰어들었다. 토막촌의 아이들이 모두 나와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거기서 요강 씻었는데 멱감으려고?”
해온이 승리감에 들떠 휘파람을 불며 집에 가니 할아버지는 해온의 앞에 서류 한 장을 내놓았다.
‘神興巫官學堂 여름학기 입학 허가서’
이름 명해온
위의 사람에게 신흥무관학당 여름학기 입학을 허락함
입학식 - 단기 4,274년 견우직녀달 열아흐레날 유시
해온은 눈만 껌뻑껌뻑 거렸다. 학교에서 제국어로만 수업을 해온 터라 한글을 익히지 못 했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한글을 가르치지 못 한 것을 자책하며 읽어 주었다. 해온은 신이 났다. 야마리와 이영훈이 들어간다는 여름학교를 저도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입학 허가서를 들고 부르르 떨었다.
“이틀 후에 출발 할 것이다. 갈 길이 머니 단단히 채비 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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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용마 기마술 수업
저녁참이 끝나자 신갈이 전달사항을 일러주었다.
“테울선사의 첫 수업은 오늘 밤에 할 거야. 나는 먼저 가서 준비를 해야 하니까 이따가 보름달이 뜨면 호령을 따라 오도록 해.”
“오~ 드디어 용마 기마술을 배우는 건가?”
아이들은 말로만 듣던 용마 기마술을 배운다는 생각에 한껏 부풀었다. 숙소로 돌아가지도 않고 마당을 서성이며 보름달이 뜨기를 기다렸다.
호령은 그런 아이들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왼쪽 땅의 요정인 호령도 용마를 타지 못해 낙제를 했는데, 오른쪽 땅의 아이들이 용마를 타겠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니.
“호령아, 너는 용마를 타봤니? 왜 달밤에 수업을 해?”
어쩐 일인지 투리가 관심을 보이며 호령에게 물었다. 옆에 있던 옥대는 호령을 못 믿겠다는 눈빛으로 째려봤다.
“보름달이 뜨는 밤에 용마가 물에서 나와서 놀거든. 그리고 용마는 아무나 탈 수 있는 게 아냐. 그래도 보름달이 떴으니 수업에는 들어가야겠지.”
하고 앞장을 섰다.
“봐, 저 녀석 말은 믿을 것이 못 돼.”
옥대가 팔짱을 끼고 버티는 것을 과묵이 잔등을 두드려 데려갔다.
보름달이 어찌나 밝은지 어둠이 봄눈처럼 녹아내렸다. 달빛을 받은 나뭇잎들은 바람이 불때마다 달빛을 털어내느라 반짝거렸다.
바깥마당을 나서니 억새밭이었다. 여름의 억새풀들은 펜촉을 들고 바람이 불때마다 밤하늘에 무언가 끄적거리는 것 같았다.
호령은 아까부터 바위산 쪽으로 걷고 있었다.
“테울선사의 마장은 동쪽인데 어찌 남쪽으로 가는 거야?”
낭정이 물으니 호령이 휙 돌아보았다.
“신갈이 아니라 못 믿겠다는 거냐?”
하고 바위 사이로 들어가 버렸다.
“내가 잘못 한 거니?”
낭정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호령이 신갈에게 예민해서 그래.”
하고 호임이 낭정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래? 그렇게 말해 주니 위안이 된다.”
바위 사이를 지나니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왔다. 멀리 곧게 흐르는 강물이 벼랑 아래에서 꺾어져 내려가고 있었다. 온통 비바람에 시달린 바위투성이 끝에 신갈이 서 있었다.
“어서 와. 여기서 용마기마술 첫 수업을 할거야.”
해온이 보기에 도무지 말이 달릴 만한 곳이 아니었다. 게다가 강물에서 용마가 나온다고 해도 벼랑 위까지 올라올 수나 있으려나?
달빛 속에서 무언가 반짝이더니 테울선사가 나타났다.
“예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다. 마침 보름이라 용마를 만날 기회를 갖게 된 것은 너희들에게 큰 행운이다.”
테울선사의 깃털부채가 달빛을 받아 금색 은색으로 반짝였다. 아이들이 황홀한 듯 부채를 바라보았다.
“이 부채가 신기하냐? 봉황의 깃털이란다. 오래 전에 봉황을 만난 적이 있지. 일 년에 한 번 털갈이 할 때 깃털 하나씩을 받아 백년에 걸쳐 만든 부채란다.”
“지금은 봉황이 없나요? 봤다는 사람이 없어서요.”
호기심 많은 옥대가 냉큼 질문을 하자 다른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에 동의했다.
“천년 자란 대나무 열매만 먹고 천년 묵은 오동나무에만 앉으니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인간의 기록에는 없지. 지금은 지상계가 너무 탁해 져 운행 할 수 없어 풍혈에서 휴면 중이다. 내가 이 부채를 만들던 신라 때에는 봉황깃털 무늬를 기와에 새기는 것이 유행이었지.”
(봉황이 고대 중국에서 신성시 했던 상상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봉황은 동방 군자의 나라에서 나와서 사해의 밖을 날아 곤륜산을 지나 지주(砥柱)의 물을 마시고 약수(弱水)에 깃을 씻고 저녁에 풍혈(風穴)에 자는데” 라는 구절이 있다)
테울선사가 부채를 살랑살랑 흔드니 금실 은실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귀가 간지러워 아이들은 눈을 감고 고개를 기울였다.
“자, 여기 바닥에 바위구멍이 있다. 이 구멍에서 말이 달려 나올 것이다. 말의 목을 붙잡아 등에 올라타면 자신의 말이 생기는 것이다.”
테울선사의 말에 몽환에서 깬 아이들은 더욱 어리둥절할 뿐이다.
“제가 먼저 해보겠습니다.”
먼저 호령이 나가 바위구멍 옆에 섰다.
테울선사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부채를 들고 강 쪽에서 바람을 당겼다.
낭랑하게 금실 소리를 내던 부채에서 폭발음이 나더니 공기가 한 순간 강한 진동을 했다. 바람이 훅 일더니 강물이 몸을 일으켜 물 위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발아래 벼랑에 부딪치는가 싶더니 바닥의 구멍에서 하얀 물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물기둥은 달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는 말의 모습으로 변하여 내달리기 시작했다.
호령이 달려 가 말의 목을 붙잡더니 가볍게 등에 올랐다. 그랬더니 물거품이 진짜 말로 변하더니 하얀 날개를 펼쳤다. 아이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 용마라더니 날개가 있어.”
호령은 멋지게 말을 돌려 돌아왔다.
“해냈구나. 장하다.”
테울선사의 칭찬에 호령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정규반에서 낙제한 호령이 드디어 용마를 얻은 것이었다.
신갈이 호령에게 가죽 끈을 건네주었다.
“축하해.”
신갈의 축하에 호령은 머쓱해 하며 가죽 끈을 용마의 목에 감았다.
테울선사는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소리쳤다.
“이렇게 하는 것이다. 자, 다음.”
낭정이 어느새 바위구멍 옆에 섰다.
테울선사가 부채를 휘둘러 바람을 일으키고 낭정은 가볍게 물기둥에 올라탔다. 심지어 돌아오는 동안 말 등에 올라서는 것이 아닌가? 날개를 활짝 펼친 말 위에 선 낭정은 신화 속의 전사처럼 보였다.
호령이 아무도 모르게 콧방귀를 뀌었다.
“좀 하네?”
호령의 견제성 축하에 낭정도 눈꼬리를 치켜들며 답례했다. 신갈에게서 가죽 끈을 받더니 주머니에서 빨간 색 댕기를 꺼내 함께 묶어 놓았다. 누가 봐도 낭정의 용마였다.
“별거 아니네, 내가 해 보겠어.”
해온은 여자아이인 낭정도 성공하자 만만하게 여기며 나섰다. 하지만 물기둥이 너무 빨라 놓치고 말았다. 바닥에 하얗게 물거품이 깔렸다가 사라졌다.
“괜찮다. 다시 해보자.”
테울선사가 해온을 격려해 주니 호임도 응원해 주었다.
“해온아, 힘내 할 수 있어.”
테울선사가 부채를 휘두르고 두 번째 물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지금이야!”
테울선사의 외침에 해온이 달려가 말의 목을 끌어안았다. 아이들의 응원이 터져 나왔다.
“올라 타!”
해온은 말 등에 오르려 다리를 차올렸지만 말의 속도를 이기지 못 하고 미끄러졌다. 이내 물거품 말은 스러지고 해온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과묵이 다가가 손을 내밀었지만 해온은 과묵의 손을 외면하고 일어섰다. 그리고 오랫동안 옷을 털어냈다.
다음은 옥대가 나섰다. 손바닥에 침을 탁 뱉고는 물기둥을 기다렸다. 물거품 말의 목을 끌어안고 등에 발을 걸치기는 했지만 등이 푹 꺼지면서 그만 물거품에 갇히고 말았다. 마치 말의 뱃속에 든 태아처럼 말이다. 아이들은 내내 이것을 가지고 옥대를 놀려댔다.
그 뒤로 감청과 과묵, 낭아, 호임도 줄줄이 실패했다.
뒤에서 등을 긁어대던 투리가 윗옷을 벗어던지더니 앞으로 나섰다.
“저기 봐! 투리의 등에 날개가 있어.”
하고 옥대가 소리쳤다.
과연 투리의 등에 손바닥 만 한 날개가 돋아있었다.
테울선사는 눈빛을 반짝이더니 부채를 힘차게 휘저었다. 아주 강력한 물기둥이 솟구쳤고 투리는 물기둥을 끌어안고 단번에 등에 올라탔다. 물거품 말이 겅중겅중 뛰면서 투리를 떨쳐내려고 했지만 목을 단단히 끌어안고 버티었다. 그랬더니 물거품이 털로 변하면서 살아있는 말로 변했다. 아이들의 환호소리가 터져 나왔다.
“투리가 해냈어!”
“그런데 말의 옆구리에 날개가 없어.”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투리의 귀를 찔렀다. 투리는 손을 뒤로 뻗어 제 등에 돋아 난 날개를 뽑았다. 숨이 끊어지게 아팠지만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날개를 말의 등에다 붙였다. 날개 뿌리가 말 등에 박히더니 말이 날개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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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신선들의 구슬치기
그날은 ‘해의 날’이었다. 쉬는 날이라 그런지 신기하게도 새들이 창가에 와서 떠들지 않았다. 감청이 새들에게 미리 부탁을 해놓은 것이었다. 아이들은 늦잠을 자며 마음껏 게으름을 피웠다.
해온은 오늘 운선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침울해졌다. 신갈과 운선은 어제 집에 가서 오늘 오후에 올 거라 한다.
선사들도 쉬는 날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찬모부인은 남새밭을 가꾸고, 다선신록은 찻잎을 땄다. 아이들 눈에는 노동으로 보였는데도 찬모부인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버들선사와 검단선사와 테울선사는 바깥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구슬치기를 했다. 구슬을 원 안에 넣는 놀이인데, 아이들에게는 근처에도 못 오게 하면서 하얀 수염 날리며 구슬을 튕겼다.
남자아이들은 마당가에서 턱을 고이고 앉아 선사들의 구슬치기를 구경해야 했다.
“너무 치사하지 않냐? 어른들이.......”
“그러게.”
아이들의 불만은 아랑곳 않고 선사들은 구슬치기에 정신이 없었다.
먼저 테울선사와 버들선사가 원 안으로 구슬을 던져 넣었다.
이어 검단선사가 중지와 엄지로 구슬을 감아쥐고 튕겼다. 구슬에 역회전을 걸어 상대의 구슬 두 개를 한꺼번에 쳐내고도 원 안에서 뱅글뱅글 돌았다.
그러자 테울선사는 부채로 바람을 일으켜 두번 째 구슬에 강한 회전을 걸었다. 구슬은 팽이처럼 돌면서 땅을 파고 들어갔다.
“그거 좋은 방법이오. ”
버들선사도 작은 구덩이 안으로 구슬을 굴려 넣었다.
이렇게 되면 검단선사도 구슬을 쳐내기가 힘들다. 하지만 검단선사는 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현란한 솜씨로 북채를 돌리던 손가락이었다. 단전에서 뿜어져 나온 기가 손가락 끝에서 구슬을 회전시키더니 폭발하듯 튕겨냈다. 구슬은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강한 진동을 일으켜 다른 구슬을 밖으로 밀어 올렸다.
“선사들은 구슬치기도 기를 쓰며 하는구나.”
하고 과묵이 중얼거렸다.
튕겨 나온 구슬 하나가 아이들의 발밑으로 굴러왔다. 푸른빛의 영롱한 구슬 안에 눈물이 맺혀 있는 것 같았다.
말릴 새도 없이 해온이 벌떡 일어나 구슬을 집었다. 구슬 안에서 고양이 눈동자가 반짝이는가 싶더니 해온의 몸이 구슬 안으로 빨려들어 갈 것 같았다. 해온은 손에 붙은 구슬을 털어내려 했지만 이내 감전 된 것처럼 뻣뻣해 지더니 뒤로 나가 떨어졌다.
“해온아 괜찮아?”
옥대가 다가가자 검단선사가 소리쳤다.
“손대지 마!”
테울선사가 바람처럼 달려와 해온을 안아들고 옥와루로 달렸다.
신록이 기혈을 뚫어 응급처치를 했다. 해온의 숨이 돌아오자 신록은 선사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애들 보는데서 구슬치기 하지 말랬죠? 요괴들에게서 압수한 정(精)으로 구슬치기를 하다니, 도대체 그 많은 나이를 어디로들 먹은 거예요?”
선녀 같던 신록의 꾸지람에 테울선사는 헛기침을 하며 먼 산을 쳐다보았고, 뒤따라 간 아이들은 뒷걸음으로 계단을 내려 가야했다.
신록은 해온의 맥을 다시 짚었다.
“요괴의 나쁜 기운이 응축 된 구슬을 만졌는데도 이만하길 다행이에요. 이 아이의 맑은 기운이 요기를 잘 막아냈군요.”
신록이 침향을 피우자 검단선사가 지팡이를 휘둘러 누각의 분합문들을 모두 닫았다. 테울선사는 미안함에 연방 부채질을 했다. 깃털부채에서 불어나온 바람에 문이 덜컹거리며 한지가 찢어졌다. 다선신록이 째려보자 얼른 부채를 등 뒤로 감추었다.
침향이 스며들어 몸 안에 요기를 밀어내느라 해온은 식은땀을 흘렸다. 해온의 의식은 물속에 잠겨있었다. 버둥거릴수록 그물이 몸을 옥죄어 왔다. 해온이 몸을 비틀며 신음소리를 냈다. 신록이 해온의 이마를 쓰다듬자 해온의 호흡이 안정되며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버들선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이 아이가 만진 구슬을 찾을 수가 없소.”
선사들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요괴의 정(精)이 이 아이를 통해 도망 간 것 같소. 서둘러 설반선사께 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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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귀신 붙은 장기알
제국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해온은 키가 어찌나 자랐는지 짧아진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야 했다. 3월이지만 꽃샘바람이 얼음칼을 휘둘러댔다.
이런 아침에 운동장 조회를 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군사학교에 다녀온 반장들이 앞에 서서 칼같이 줄을 세웠다. 줄을 다 맞춘 반장들은 군인처럼 뒤로 돌아 교단을 향해 섰다. 교단 앞에는 야마리가 서 있었다.
“전체 차렷!”
쩌렁쩌렁 울리는 야마리의 구령에 전교생은 어느새 군인이 되어있었다. 이윽고 교사들이 나오고 학교장이 나왔는데 허리에 칼을 차고 있었다. 학교장이 단상에 오르자 야마리가 뒤로 돌았다.
“차렷! 경례!”
구령을 하고 단상을 향하여 군인처럼 경례를 붙이더니 다시 뒤돌아 “열중 쉬엇!” 구령을 외쳤다. 전교생은 바싹 얼어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였다. 조회가 끝나고 반별로 군대처럼 행군하여 교실로 들어와야 했다.
“히야~ 야마리 멋지지 않니? 우리 반의 야마리가 우리 학교 대대장이 되다니.”
이영훈은 야마리와 또 한 반이 된 것에 몹시 영광스러워했다. 새 교복을 맞춰 입은 야마리가 교실에 들어오자 아이들이 선망의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대대장 새 가방이 참 멋지다.”
이영훈이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하자 아이들이 가방을 구경하기 위해 야마리 주위에 모여 있었다.
대대장이라는 호칭에 흡족한 야마리가 우쭐하여 대꾸했다.
“이 가방은 말이야, 다케시마 섬에서 잡은 바다사자 가죽으로 만든 가방이야. 한정판인데 이제는 이 가방을 더 이상 구할 수 없어. 왜냐하면 ‘리앙쿠르 대왕’을 마지막으로 다케시마 바다사자 조업은 끝났거든.”
“리앙...... 대왕이 뭐니?”
석춘이 물었다. 전 같으면 석춘과 상대도 하지 않았을 야마리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서양인들이 이름 붙인 다케시마 바다사자인데, 우리 제국의 수산업자들이 바다사자 조업을 할 때 여간 말썽을 일으킨 놈이 아니었어. 그물을 피해 다니면서 다른 바다사자가 걸려든 그물을 찢기로 유명한 놈이었지. 결국 수산업자는 포수들을 동원하여 놈을 쏴 죽여야 했지. 그놈은 박제가 되어 산베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
해온은 아이들을 헤집고 들어가서 저도 모르게 가방을 낚아챘다.
“그 바다사자는 독섬강치였다. 너희가 강치 4만 마리를 포획하여 독섬에 강치가 멸종되었다.”
해온이 가방을 껴안으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야마리가 가방을 빼앗고 해온의 뺨을 때렸다.
“네까짓 게 내 가방을 안고 울어?”
해온은 야마리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자 유마토와 이영훈이 해온의 팔을 잡아 뒤로 꺾었다. 해온의 명치로 야마리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맞은 것은 해온이었는데 징계를 받은 쪽도 해온이었다. 대대장의 멱살을 잡았다는 이유로 정학 처분을 받았다.
정학 처분을 받았지만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에 해온은 해방감을 느꼈다. 그동안 못 읽었던 책을 읽으며 집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지금쯤 운선은 학당에서 정규수업을 잘 받고 있겠지? 해온은 운선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다. 공책을 펼쳐놓고 운선에게 하고 싶은 말을 끄적거려 보았다.
첫사랑
밤바람이 풀 섶을 거닐다가
이슬방울 하나 두고 갑니다
이슬이 깨어질까
풀잎은 두 손 고여 받아 듭니다
또로옥 굴러갈까
숨도 크게 못 쉽니다.
몇 번을 고쳐 쓴 것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운선의 집 주소도 모르거니와 왼쪽 땅으로 우편물이 배달되지도 않을 터였다. 그런데 신흥학당 입학통지서는 어떻게 집으로 배달되었는지 궁금했다.
해온은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섰다. 동대문 안으로 들어가 시장통을 어슬렁거렸다. 시장에서 엿을 사 먹는 노인이 어쩐지 낯이 익었다. 작년에 기차에서 만난 버들선사의 노인 분장이 떠올랐다.
“버들 선사님!”
해온의 부름에 노인이 엿을 물고 돌아섰다.
“이잉? 해온이냐? 학교 땡땡이 친 거냐?”
노인으로 변한 버들선사가 주름진 입술로 웃으며 종이봉지를 내밀었다. 해온은 봉지에서 엿가락 하나를 꺼내어 핥았다. 엿장수가 인심이 좋은지 엿은 굵고 길쭉했다.
“호박엿이네요. 간만에 맛보는 단맛이에요. 선사님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으응, 독립군 몇을 까마귀로 변신시켜 국경을 넘겨주고....... 예전엔 호랑이나 표범으로 변신시켰었는데 하필 해수구제사업 이랍시고 대대적인 사냥을 벌여서 곤혹을 치렀지. 음....... 그리고 선계의 부적 몇 장이 유출되어 회수하러 나왔다.”
“아~ 예 호랑이 표범으로 변신....... 부적 유출.......”
해온은 버들선사의 변신술을 본 적이 있었지만, 독립군을 까마귀로 변신시켜 국경을 넘겨준다는 말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저희 집에 가셔서 함께 점심참을 드시지요.”
“날 더러 인간의 음식을 먹으라고? 아서라.”
하며 인간이 만든 엿을 물고 돌아섰다. 그리고 생각난 듯 다시 돌아 엿봉지를 해온의 손에 쥐어주었다.
“할머니 갖다 드려라.”
하고는 바람처럼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누가 누구더러 할머니라고 하는지, 버들선사는 어찌 인간계에만 나오면 꼬부랑 노인이 되는지. 해온은 천천히 엿을 녹여먹으며 집으로 향했다. 주머니 속 편지가 사라진 것도 알지 못했다.
청계천 둑을 따라 개나리가 활짝 피어있었다. 간밤에 떨어진 별무더기 같았다. 그 아름다운 풍경 옆에서 아이들이 봄볕을 쬐고 있었다. 꽃보다 예쁘게 피어나야 할 아이들 이건만, 점령지의 아이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 얼굴에 하얀 버짐이 피어있었다.
해온은 아이들에게 엿 한 가락씩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피어났다. 빼앗기기만 했던 아이들은 누군가가 무엇을 나눠 준다는 것에 감동을 받은 모양이었다. 엿을 받아 든 아이들은 ‘해온이 형이 엿을 나눠 준다’며 멀리 있는 아이들을 불렀다. 수십 개를 나눠 주었는데도 봉지 안에서는 엿이 계속 나오는 것이었다. 동대문을 나설 때까지 엿을 나누어 주고 집에 돌아왔는데도 봉지 안에는 엿 두 가락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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