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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낭아 Jan 06. 2022

2. 천자 치우(治雨)-출생의 비밀

공상성에서는 오늘도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더 세게 내려치란 말이다.”

유망이 고통을 참으며 소리 쳤지만 돌도끼만 깨어질 뿐 머리에 씌어 진 쇠멍에는 깨어지지 않았고, 두드릴수록 유망의 고통만 커질 뿐이었다. 

점쟁이 황철이 급히 들어와 고하였다.

“유망 족장이시여, 드디어 총명부인의 집을 알아냈습니다.”

“그래? 호우랑을 부르라.”

유망은 통증으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명을 내렸다.

잠시 후 호랑이 털을 어깨에 둘러 쓴 거구의 장수 호우랑이 유망 앞에 나타났다. 유망은 장수에게 명을 내렸다.

“당장 총명이라는 계집의 집으로 달려가 그 자식 놈들을 끌고 오라.”

점쟁이 황철이 만류했다.

“폭력을 명하면 쇠멍에가 조여들어 전하의 고통이 커질 것입니다.”

“상관없다. 이까짓 대갈통 부숴버리면 그만이다.”

유망은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았다.

호우랑이 수하들을 이끌고 총명부인의 집에 들이닥쳤다. 울타리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려 하자 발끝에 불꽃이 튀며 뒤로 튕겨났다.

호우랑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강력한 금줄이 쳐져 있어 집안으로 진입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멍청한 놈이 장수라니........”

유망이 창을 들어 호우랑의 어깨를 후려쳤더니 쇠멍에가 머리를 조여들었다. 유망은 머리를 움켜잡고 절규하였다.

“폭력성을 잃은 족장이 무슨 수로 군사를 부린단 말인가? 동맹을 맺은 부족들도 다 떨어져 나가고 빈껍데기만 남았구나.”

그러자 점쟁이 황철이 조심스레 다가가 속살거렸다.

“유망 족장이시여, 다른 방법을 쓰심이 좋을 듯합니다.”

황철의 계략을 들은 유망은 만족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지국성 들판의 언덕 위에 마른 억새풀로 지붕을 이은 띠옥 한 채가 소담하게 서 있었다. 싸릿대를 엮어 만든 바자울이 집을 감싸고 있다. 

언덕 아래 마을에서는 열다섯 해 동안 총명부인의 집에 식량을 가져다주었다. 이는 사와라 천자가 마을에 재물을 맡기고 부탁한 일이었다. 그런데 침략자들이 들이닥친 후부터 마을에서 올라오는 식량 보급이 끊기었다. 식량이 떨어지자 총명부인은 마을로 직접 내려가야 했다.

“누가 오더라도 사립문을 절대로 열면 안 된다. 집 밖에는 한 발짝도 나오지 마라.”

총명부인은 쌍둥이 아들에게 당부하고 집을 나섰다. 

쌍둥이 동생 비는 울타리 안에서 돌멩이를 던지며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 산짐승이 앞발만 내저어도 부서질 것 같은 울타리건만 사립문을 열지 말라는 어머니의 당부가 아이는 영 내키지 않았다. 비가 던진 돌멩이가 집 근처를 지나던 노인을 때린 듯했다. 노인이 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비는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다가 사립문을 열어 울타리 밖으로 나가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다치셨나요?”

비가 쓰러진 노인을 살폈다. 다행히 피가 나는 곳은 없었다.

“저기가 저희 집이니 들어가서 좀 누우시지요. 상처를 돌보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일으키려 하니 노인은 손사래를 쳤다.

“이정도가지고 그런 폐를 끼칠 수야 없지. 다만 이 불쌍한 노인의 이마가 불덩이처럼 뜨겁구나. 너의 시원한 손으로 한 번만 짚어 주면 나을 것 같구나.”

“그거야 어렵지 않지요.”

비는 손을 들어 노인의 이마를 짚어주었다. 치지직 타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일더니 노인의 머리에 씌어져 있던 쇠멍에가 벗겨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노인의 얼굴에 주름살이 사라지더니 건장한 몸으로 변하였다.

“네 덕분에 이 지긋지긋한 쇠멍에를 벗었구나.”

벌떡 일어난 노인은 낡은 장포를 벗어던졌다. 속에는 화려한 족장의 장포가 입혀져 있었다.

“유망 족장이시여, 감축 드리옵니다.”

숨어있던 점쟁이 황철이 다가와 인사를 하였다. 그들 뒤로 무기를 든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가 놀라 도망치려는데 유망이 비의 뒷목을 움켜잡았다.

“쇠멍에를 벗으니 폭력을 쓸 수가 있구나. 그동안은 저 놈의 쇠멍에가 머리를 조여서 토끼 한 마리 죽일 수가 없었지. 봉인해제 된 폭력성의 단맛을 네놈의 목을 꺾는 것으로부터 맛보아야겠다.”

비가 발버둥 치며 유망의 손목을 잡아 뜯었다. 비의 손목에 감겨있던 구리팔찌가 유망의 손등에 닿자 불꽃이 일었다. 유망은 온몸을 관통하는 통증에 놀라 비를 놓아야 했다. 그 사이 쌍둥이 형 자오가 비를 데리고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사립문을 닫았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어머니가 사립문을 열지 말라고 하셨잖아.”

“미안해, 내가 던진 돌에 할아버지가 맞아서.......”

유망이 다가 와 사립문에 손을 대자 불꽃이 일었다. 유망은 통증에 놀라 얼굴을 찌푸렸다. 점쟁이 황철이 조심스레 귀띔을 했다. 

“금줄입니다. 저놈들의 손목과 울타리에 금줄이 쳐져 있어 손을 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하장수가 돌도끼를 들고 나섰다.

“그깟 금줄이 무어라고.”

돌도끼로 사립문을 내려치니 돌도끼가 부러졌다. 울타리를 뛰어넘으려 했지만,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쳐 튕겨났다. 창을 던지고 화살을 쏘았지만, 울타리 안으로는 돌멩이 하나 들어가지 못 하였다.

점쟁이 황철이 나섰다.

“우리가 들어가지 못 하니, 놈들이 나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유망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명을 내렸다.

“사립문 앞에 땔나무를 쌓으라.”

사립문 앞에 장작을 쌓고 불을 붙였다. 황철이 품속에서 대나무 통을 꺼냈다.

“말린 초오잎을 가루 내어 불에 태우면 독이 되지요.”

대통 속에 든 가루를 불속에 부었더니 불꽃이 시퍼렇게 타올랐다. 울타리 안으로 연기가 새어들기 시작했다. 

자오 형제는 기침을 했다. 연기를 피해 집 뒤쪽으로 돌아가니 낭떠러지였다. 연기를 타고 새어든 열기가 띠옥의 지붕에 옮겨 붙었다. 띠옥이 활활 타오르자 형제는 나무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나무에도 불이 옮겨 붙었다. 불이 붙은 나무가 쓰러지며 형제는 낭떠러니 아래로 떨어졌다. 낭떠러지 아래로 긴 비명이 들려왔다.

유망은 취한 듯 웃으며 돌아섰다.


한편, 언덕아래 마을에 호랑이 가죽을 둘러 쓴 군사들이 들이닥쳤다. 마을에서 밭일을 도와주던 총명부인이 앞에 나섰다.

“유망이 보냈느냐? 너희들은 우리들 몸에 손 하나 대지 못 한다. 폭력을 쓰면 유망의 고통이 커지는 것을 모르느냐?”

“이거 말인가?”

장수가 돌창 끝에 걸린 쇠멍에를 바닥에 던졌다. 쇠멍에가 처량한 소리를 울리며 바닥에 뒹굴었다.

“유망 족장님의 봉인이 풀렸다. 네 자식놈 손을 좀 빌렸지. 이제 유망 족장님은 마음껏 살생을 명할 수가 있단 말이다.”

장수는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돌도끼를 휘둘렀다.


쌍둥이 형제가 정신을 차린 곳은 강기슭이었다.

“정신이 드니?”

마을에 사는 이매와 망량이 근심스러운 눈으로 자오와 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난폭한 협곡의 물에 떠내려 왔는데도 살아있다니 신기하다.”

“어쩌다가 계곡에 빠졌어?”

이매와 망량의 물음에 자오는 대답 대신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머릿속이 욱신거렸다.

“물고기 구워 먹자. 오늘은 수확이 좋다.”

망량은 나무꼬챙이에 줄줄이 끼운 물고기를 모닥불에 넣으며 자랑했다. 자오는 절벽을 올려다보았다. 절벽에 가로막혀있어 마을에 무슨 일이 생겨도 알 수 없는 곳이었다.

“마을이 위험하다.”

자오가 일어서 절벽 위로 올라갔다. 이매와 망량은 영문도 모르고 비를 부축하여 뒤따랐다. 절벽에 올라서니 마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머니!”

비가 소리를 지르며 마을을 향해 달렸다. 마을은 불타고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 이매와 망량은 부모의 시신을 찾아내고는 주저앉았다. 자오도 쓰러진 기둥 아래에서 총명부인을 찾아냈다.

“어머니!”

“나를 일으켜다오.”

자오는 어머니를 안아 일으켜 기둥에 기대어 앉게 했다.

“너희를 보고 떠날 수 있어 다행이다. 그동안 너희들은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었었지. 이제라도 얘기를 해 줄 수 있어 다행이구나.”

자오의 어머니는 잔기침을 몇 번 하더니 신화같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배달국의 서쪽 지방현에 범족이 있었다. 범족의 족장 유망은 배달국의 그늘을 벗어나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싶었다. 유망은 화하의 땅 아홉 부족을 규합하고 배달국의 사와라 천자에게 반기를 들었다. 

이에 배달국의 13대 천자 사와라가 군대를 이끌고 유망의 반란을 진압하러 나섰다. 유망을 사로잡았지만, 동맹 부족들의 반격이 심하였다.

“반란전쟁이 길어질수록 백성들이 희생되는구나. 배달의 아홉 대장장이가 두드려 만든 쇠멍에를 가져오라.”

사와라 천자는 유망의 폭력성을 누르기 위해 머리에 쇠멍에를 씌웠다. 유망이 공격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쇠멍에가 머리를 조여 고통스럽게 하였다. 유망은 이를 갈며 무릎을 꿇었다.

사와라 천자가 궁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국성 들판에서 밝은 빛이 서려 있는 것을 보았다. 천자가 빛을 따라 당도하니 백주부인의 집이었다.

“이 집에 오색의 빛이 드리운 연유가 있는가?”

백주부인이 예를 표하며 대답하였다.

“오래 전에 '오늘'이라는 아이가 부모도 없이 홀로 살고 있었지요. 오늘이의 부모가 계신 곳을 알려주었더니, 원천강에 부모를 찾으러 갔다 오면서 여의주를 얻어와 제게 하나를 주었습니다. 그 여의주가 몸속으로 스며들더니 열 달 후에 어여쁜 딸아이를 낳았지요. 바로 이 아이입니다.” 

하니 딸 총명아기씨가 다가 와 예를 올렸다.

“폐하, 근심이 드리운 어안이십니다.” 

“유망이 난폭하여 언젠가는 쇠멍에를 벗을 터이니 그것이 근심이구나.”

“그 근심을 나누어 질수 있게 해 주십시오.”

“나는 곧 하늘로 돌아가야 한다. 너에게 큰 짐을 지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그동안 유망의 반란에 시달려 왔습니다. 인간을 우선으로 하는 배달국의 맥을 지켜내는 일에 이 한 몸 아끼겠습니까?”

그날 밤, 사와라 천자는 총명아기씨의 방에 들었다. 총명아기씨의 방에는 태양빛이 가득 찼고 하늘에는 오색빛깔 무지개가 휘장을 드리웠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신화>>  참고)


“그렇게 태어 난 아이들이 너희 형제란다.”

간신히 이야기를 마친 자오의 어머니는 천자를 다시 본 듯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너희 아버지를 찾아 가거라.”

총명부인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마지막 내뱉은 숨을 거두어들이지 못하였다.

“어머니!”

비가 절규하며 어머니 가슴으로 무너졌다. 자오는 어머니의 무릎에 이마를 대고 소리 없이 울어야 했다. 자오와 비는 한참 동안 어머니 주검 앞에 엎드려 있다가 일어섰다. 

자오와 비 형제와 이매와 망량 형제, 네 명의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마을사람들의 시신을 모아 땅에 묻었다.

“우리는 다른 날에 태어났지만, 우리의 부모는 한날한시에 돌아가셨다. 그러니 우리는 한 형제다.”

자오 형제와 이매 형제는 함께 살고 함께 죽기를 맹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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