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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낭아 Jan 08. 2022

3. 천자 치우(治雨)-야철 마을의 형제들

“기운이 없어 더 못 걷겠어.”

“열매나 뿌리만 캐먹고 걸은 지 이틀이다. 더 이상 못 가.”

뒤쳐져 오던 비와 망량이 주저앉았다.

자오가 주위를 살펴보며 말했다.

“여기 토끼 똥이 있다. 토끼 굴을 찾아보자.”

네 명의 사내아이는 갑자기 기운이 솟아 토끼몰이를 시작하였다. 벼랑 아래로 몰린 토끼를 향해 창을 던졌지만 토끼가 지나간 자리에 꽂힐 뿐이었다.

“골짜기 구석으로 더 몰아.”

자오가 구석에 몰린 토끼를 향해 창을 조준했다. 그때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 와 토끼목에 박혔다. 뒤쪽 바위 너머에서 낯선 사내아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와 망량이 토끼를 가로 막았다.

“이건 우리가 잡으려고 한 토끼였다.”

“화살을 쏘아 맞힌 것은 우리니까 우리 토끼다.”

하고 저쪽의 사내아이가 바위에서 뛰어내려 토끼를 집어 들었다.

“우리가 발견하고 이 골짜기까지 몰았단 말이다.”

망량이 토끼를 붙잡으려하자 저쪽의 아이들이 창을 겨누었다.

“보아하니 너희들은 다른 마을 아이들인데, 여긴 우리 구역이다. 사냥터를 침범한 건 너희들이다.”

“사냥터에 임자가 어딨어?”

이쪽의 아이들도 창을 들어 공격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자오가 아이들을 제지하며 앞으로 나섰다.

“나는 자오라고 한다. 우리는 지국성 들판에 살았는데 범족의 습격을 받아 마을은 불에 타고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우리는 아버지를 찾아 가던 길이니 조용히 지나가게 해 다오.”

그러자 아우 비가 발끈하여 소리쳤다.

“자오 형, 이렇게 나약하게 나올 거야? 한판 붙어보기라도 해야지.”

“어머니 가르침을 잊었느냐? 제일 앞서 사람을 아끼라고 가르치셨다.” 

이어 저쪽을 보며 

“우리는 말썽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 

저쪽의 사내아이가 앞으로 나섰다.

“자오라고 하였느냐? 나는 신괴 라고 한다. 네가 마음에 든다. 터전을 잃고 헤매는 이웃을 못 본체 할 순 없지. 배달의 아홉 겨레는 모두 한 형제다. 불을 피워라. 토끼 가죽은 내가 벗겨주마.”

이렇게 하여 자오 형제와 이매 형제는 신괴의 형제들과 토끼를 구워 나누어 먹었다.

“저 산은 갈로산이다. 우리 마을은 저 산에서 광석을 캐어 쇠를 뽑아내며 산다. 함께 가자.”

신괴는 자오의 형제들을 촌장에게 데려갔다.

“지국성 들판의 마을이 습격 받고 유망이 쇠멍에를 벗었다는 말이냐?”

촌장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촌장은 발이 빠른 사람을 도성으로 보내 이쪽 상황을 전하게 했다.


자오 형제와 이매 형제는 갈로산 아래 마을에 의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가마에 넣을 땔나무를 해오는 일을 했다. 가마에 풀무질도 하고 쇠를 다루는 일도 배워나갔다. 두꺼워진 손바닥이 갈라지고 팔다리는 긁혀 성한 곳이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러갔다.

“요즘 들어 어찌 이리 쇠 생산량을 늘리라 채근인지 힘들어 못 하겠소.”

마을사람들의 원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이게 다 유망이 쳐들어 올 준비를 하기 때문이라오. 사와라 천자께서 군사력을 키우기 위해 많은 무기를 주문하시었소.”

“한 동안 조용하더니 유망이 다시 열두 개의 부족동맹을 주선 한 모양이오.”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을 들은 자오가 촌장에게 물었다.

“유망은 도대체 어떤 자입니까?”

“유망에 대해 말하자면 아주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야겠구나.”

촌장은 마을의 청년들을 모이게 하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환웅천자의 신하인 고시씨는 주곡의 직책을 맡아 씨 뿌리는 법과 불 피우는 법을 널리 가르쳤다. 고시씨의 자손인 소전의 아들 염제가 열산의 제후로 봉해졌다. 염제의 8세대 후손이 바로 유망이다. 유망은 열산을 중심으로 아홉 부족을 규합하여 배달국과 제후의 관계를 끊고 천자께 맞섰다. 13세 사와라 천자가 토벌대를 이끌고 유망의 머리에 쇠멍에를 씌워 폭력성을 눌러두었다. 그렇게 하여 유망의 폭력성을 봉인하여 반란을 잠재워 두었는데, 얼마 전에 유망이 쇠멍에를 벗는데 성공한 모양이다. 다시 반란의 전운이 감도는구나.”

촌장의 이야기에서 유망의 이름이 나오자 자오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어머니와 마을사람들을 도륙 낸 유망의 이름을 뼈에 새겼다.


가을이 되자 쇠를 뽑는 작업이 잠시 중지 되었다. 마을의 청년들은 몇 명 씩 모여 창과 활을 들고 사냥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비와 이매가 신괴의 무리에게 다가갔다.

“신괴 형, 무슨 일이야?”

“사냥시합이 열릴 거야. 마을 남자들 중 혼인하지 않은 청년들 네다섯 명이 한 모듬이 되어 사냥 시합을 할 거란다.”

“으뜸이 되면 상을 주나?”

“으뜸이 되면 ‘하늘 연 날’에 하늘에 올리는 제사에서 맨 앞줄에 서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된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이매가 중얼거리자 신괴가 다가와 귀띔 해 주었다.

“하늘제사 때에 맨 앞줄에 서면 마을 꼭지(혼인하지 않은 여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단다.”

신괴의 귀띔에 비는 신이 나서 자오에게 달려왔다.

“자오 형, 우리가 사냥시합에서 으뜸이 되자. 꼭지들에게 인기가 최고래.”

“비야, 너만 잘 하면 으뜸은 문제없을 거야.”

“맞아 맞아.”

망량이 놀리고 이매가 말을 받아 놀려주었다.

“자오 형, 가만히 듣고만 있기야?”

비는 제 편을 들지 않는 자오에게 입을 삐죽거렸다.

자오는 조용히 웃으며 멧돼지를 메고 마을로 들어오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달래가 선망의 눈빛으로 옆을 따라 걸을 테지? 자오의 상상 속에서 달래는 그만 팔짱을 끼고 눈을 부라리고 서있는 신괴의 몸에 부딪히고 만다. 

자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신괴의 여동생인 달래는 신괴가 어찌나 감싸고도는지 도통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사냥 시합 날, 자오 형제들은 커다란 멧돼지를 잡아 의기양양하여 마을로 돌아왔다. 하지만 으뜸은 새끼돼지를 안고 온 신괴의 무리가 차지했다.

“이런 게 어딨어? 제일 큰 돼지를 잡아 온 우리를 제치고 신괴네가 으뜸을 받다니......”

비와 망량이 분해서 따지고 들었다.

“아참, 그 말을 안했네. 하늘제사에 제물로 쓸 돼지라 상처 없이 잡아와야 한다는 것을.......”

하고 신괴는 얄밉게 웃으며 지나갔다.

“신괴 형, 이러기야?”

약이 오른 비가 따지려 들자 자오가 나서서 비와 망량을 달래주어야 했다.

“그만 두어라. 하늘제사에 이방인이 나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촌장의 아들이 제단 앞에 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늘제삿날은 마을 잔칫날이었다. 추수를 마친 10월 상달에 하늘에 감사의 제를 올리며 마을사람들끼리 친목을 다지는 행사였다. 제사를 마친 밤에 마을 사람들 모두가 불가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고 노래하였다.

흥겨운 잔치 분위기 속에서 자오의 눈은 달래에게 향해 있었다. 여자아이들 사이에 앉아 손뼉 치며 노래 부르는 달래의 모습은 새벽녘의 샛별처럼 홀로 빛났다. 달래의 눈이 자오와 마주쳤다. 수줍게 고개 숙인 달래는 자리에서 일어나 언덕 쪽으로 향했다. 자오는 때를 놓칠세라 슬그머니 일어나 달래의 뒤를 따라갔다.

언덕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불가에 둘러앉은 마을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불티를 타고 밤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는 것 같았다. 달래가 먼저 둘 사이의 서먹함을 깨뜨렸다.

“저기 북쪽에 국자처럼 생긴 일곱별이 우리 배달의 아홉 겨레를 지켜준단다.”

달래는 밤하늘을 짚어주며 별빛 같은 눈망울을 반짝였다. 달래가 이웃 마을 촌장의 아들과 혼담이 오간다는 신괴의 말이 자오의 귓가를 쟁쟁 울렸다.

“저 국자는 어디에서 미리내의 냇물을 퍼오는지 밤하늘에 별들이 모래알처럼 반짝이는구나.”

달래는 애타는 자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별 얘기만 했다. 별들을 손바닥에 담아 흔들면 달래 목소리 같은 소리가 날거라고 자오는 생각했다. 

“나를 보지 말고 하늘을 보렴.”

달래는 나란히 앉고부터는 자오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자오는 달래의 눈빛을 보아야 할지 밤하늘의 별빛을 보아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얼굴은 밤하늘로 돌리면서 시선은 달래의 얼굴에 달라붙기만 했다. 꿀처럼 들러붙는 시선을 겨우 떼어 자오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국자가 기우는가 싶더니 별 하나가 국자 밖으로 흘러내렸다. 별은 점점 밝아지면서 긴 꼬리를 태우며 내려왔다.

“별똥별이야! 소원을 빌어야 해.”

달래가 눈을 반짝이며 아이처럼 소리쳤다. 별똥별이 긴 꼬리를 드리워 밤하늘을 가로지르더니 건너편 산 너머로 떨어졌다.

“나 너에게 할 말이 있다.”

달래는 조금 무거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자오는 달래가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아 벌떡 일어났다.

“저 별을 너에게 가져다주마. 너의 말은 그때 듣겠다.”

“내게 아무것도 주지 말아 줘.”

달래의 목소리에 슬픔이 묻어났다.

“아니야, 난 저 별을 너에게 가져다주겠어. 그리고 촌장님께 너를 향한 내 마음을 말씀드리겠어.”


다음날 자오는 마을을 나섰다. 어느새 비와 이매와 망량이 따라붙었다. 아무도 모르게 나왔는데 어찌 눈치를 채고 따라붙었는지 자오는 한숨이 나왔다. 

“따라오지 마!”

자오는 비의 발치에 돌멩이를 던졌다.

“저 별을 너에게 주마.”

비가 자오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놀렸다.

“자오 오라버니 밖에 없다니까아~.”

망량이 달래 목소리를 흉내 내더니 비와 망량이 이마를 맞대고 키득키득 웃었다. 이매가 두 아우의 등짝을 후려치며 철없는 행동을 나무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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