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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낭아 Jan 14. 2022

6. 천자 치우-치우검(治雨劍)

일찍이 신시의 복숭아밭에서는 이묵이 왕모를 홀리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신시의 도감관 왕모는 복숭아밭에 나타난 이묵을 경계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천제의 아우님께서 이 벽지까지 나들이를 오셨군요.”

“삼천 년에 한 번 열리는 황금천도는 형님께만 진상된다지요? 나머지 그저 그런 복숭아는 일반 천신들에게 나눠주고 자기만 좋은 것을 먹는다니, 천제의 아우로서 천신들 보기 민망하구려.”

이묵은 거침없이 말하고 행동했지만, 왕모는 그 모습이 담백하게 느껴졌다.

“우리 천신들은 천제의 은혜에 감사할 따름이지요. 이것 또한 그저 그런 복숭아가 아니라 신들의 불사약이랍니다.”

“그래요? 자신의 소임에 자부심이 넘치는군요. 자기 일을 사랑하는 여신에게서 복숭아 향 보다 깊은 향기가 납니다.”

이묵은 왕모의 향기에 취한 듯 눈을 감았다.

“한낱 나무지기에게 과한 칭찬을 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칭찬 값으로 차를 대접하겠습니다.”

그날 왕모는 수백 년 치의 웃음을 웃고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황금천도가 사라졌고 왕모는 서쪽으로 유배되었다.


신시의 동문 문루에 올라 선 이묵은 술에 취한 듯 웃었다. 천제께만 진상되는 황금천도를 먹으니 천제가 된 것 같았다. 신시의 동문 문지기 동수대왕이 창을 들고 나타났다.

“어이~ 도둑놈! 이리 내려와 오라를 좀 받지?” 

“네가 올라오너라. 이곳에서 보는 경치가 제법이구나.”

이묵은 난간 위를 걸으면서 건들거렸다.

“황금천도를 먹은 몸이라 그 창으로 나를 죽일 수 없으니 어쩌나? 여기서 떨어져도 죽지 않을 테고.”

“천제의 체포명령서가 발부되었으니 매 순간 영원히 도망 다녀야 할 텐데........ 그리고 여기 봉인명령서가 있으니 창에 꿰어 봉인하면 그만이거든.”

하며 동수대왕이 창을 던졌지만 이묵이 살짝 몸을 돌려 피하였다.

“네놈 또한 능글맞기가 능구렁이 같구나. 이 너른 신시에서 이 한 몸 디딜 곳이 없다는 것이 슬프구나.”

이묵은 문루 아래로 뛰어내렸다. 이묵의 몸이 푸른 용으로 변하여 구름 위로 날아올랐다. 

"도둑놈이 잘 나가는 꼴은 못 보지."

동수대왕은 칼에다 봉인명령서를 끼워 던졌다. 

칼은 빛처럼 빠른 속도로 날아가 청룡의 등을 관통하였다. 청룡은 칼 속으로 빨려 들어가 봉인되었다. 그리고 칼은 별똥별에 박혀 지상으로 떨어졌다.



자오가 땅에 박힌 칼의 손잡이를 다시 붙잡자 칼 속에 갇혀있던 이묵이 강하게 저항했다. 자오의 단전에 뭉친 불덩이가 온몸을 휘돌아 손끝으로 몰렸다. 뜨거운 열기가 닿자 칼에서 푸른 기운이 풀풀 새어 나왔다. 불덩이와 푸른 기운이 하얀 칼날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더니 속도가 빨라졌다. 삼색환에서 번개가 뻗어 나오더니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기 시작했다. 

왼쪽 측면을 깨고 들어오던 반란군이 천자를 향해 창을 던졌다. 창은 안갯속 어딘가로 후드득 떨어졌다. 갑자기 덮쳐 온 안갯속에서 천자의 위치를 놓친 것이었다. 어디선가 돌멩이가 날아들었다. 뒤통수를 맞은 반란군 병사가 칼을 마구 휘둘렀다. 적병인 줄 알고 다른 병사들도 칼을 휘둘렀다. 반란군은 안갯속에서 피아를 구별하지 못하여 저희들끼리 치고 베었다. 유망과 동맹군은 겨우 절반의 군사만 남겨 돌아갔다.


막사 안에 뉘어진 사와라 천자는 자오 형제를 불렀다. 자오 형제의 손목에 채워진 구리 팔찌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총명부인이 약속을 지켰구나. 이리 아들들을 훌륭히 키워냈으니 나의 짐을 나누어지겠다는 약속을 지켜주었구나. 나는 안심하고 떠날 수가 있게 되었도다.”

사와라 천자는 하늘로 돌아갔다. 

주위의 신하와 장수들이 자오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자오 태자를 뵈옵니다.”

생부와 만나자마자 이별을 한 자오 형제는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천자가 귀천했다는 사실이 막사 밖으로 새 나가지 않게 하세요.”

자오는 군사들을 정비하고 유망을 칠 계획을 세웠다. 

“먼저 탁록을 쳐 동맹 부족들부터 토벌해 나갑시다.”

자오는 배달의 본대를 이끌고 탁록의 들판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죽은 줄 알았던 천자의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보자 반란군은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났다.

자오가 명을 내렸다.

“유망의 아홉 동맹 부족들에게 사자를 보내시오. 반란의 죄를 묻지 않고 아홉 부족들의 족장에게 제후의 봉작을 내리겠다는 약정서요.”

거북 껍데기 안쪽에 녹도문을 새긴 약정서를 들고 사자들이 출발하였다. 

열 하나의 동맹 부족장에게서 항복을 받았다. 이제 유망은 고립무원의 지경이었다. 배달의 본대는 그대로 공상성으로 진격하여 유망의 도읍지를 토벌하였다. 유망이 끌려왔다. 자오의 얼굴을 본 유망은 털썩 주저앉았다. 

“아니 너는? 내 쇠멍에를 벗겨 준 아이가 아니더냐? 그 불길 속에서 살아남아 천자의 대를 이었다니, 시신을 확인하지 않은 나 자신을 책망할 수밖에.”


유망의 반란을 진압한 자오는 제신들의 추대를 받아 14대 천자로 등극하였다.

“치우 천자를 뵈옵니다.”

제신들은 ‘치우천자(治雨天子)’이라는 칭호를 올렸다. 안개를 다스리는 천자의 능력을 드러내는 칭호였다.

천자로 등극한 치우는 명을 내렸다.

화하족 열두 부족의 족장은 동지까지 아사달에 입조하라.

화하족의 열 두 족장들은 동쪽으로 출발하여 치우천자 앞에 입조하였는데, 도착순서는 쥐부족·소부족·범족· 토끼부족·용족·뱀족·말부족· 양부족·원숭이족· 닭부족· 개부족· 돼지부족 순 이었다. 

치우천자는 배달의 각 읍차들과 화하족의 열두 부족장들을 도열시켜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그리고 반란을 감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명을 내렸다.

“해오름달부터 매달 한 부족씩 순서대로 입조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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