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바보의 기원

책에 곱게 미친, 어느 애서가의 독백

by 예온 YeOn

누군가가 취미에 관해 물어오면 나는 별 고민 없이 ‘독서’라고 말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내가 모범생이었거나 박학다식할 것이라고 오해하는데, 나는 오히려 책을 맹신하는 ‘바보’에 가깝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글로 배우는 여자’라고 놀리곤 했다. 짝사랑하는 남자가 생겼을 때는 남녀의 심리에 대해 기술한 책을 찾아 읽고,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는 여행 에세이를 찾아 읽었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작법 관련 책들도 여러 권 사기도 했다. 정보가 필요하다면, 책부터 찾아 읽는 사람에게 ‘책 바보’는 멋진 별명이다.

이 유난한 책 사랑의 기원(起源)은 길바닥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갓 들어갔을 때는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는 일이 드물었다. 보통 방문판매원으로부터 전집을 구매하곤 했었는데, 가격이 꽤 비쌌다는 게 함정이었다. 특히 계몽사에서 출간한 디즈니 명작 동화 전집은 당시 내 또래 아이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와 함께 시장을 가다가 길바닥에 나뒹구는 동화책 한 권을 발견했다. 유심히 보니 디즈니 명작 동화 전집 중 한 권이었다. 아니, 이런 누추한 곳에 왜 귀하신 존재가? 나는 널브러진 동화책 앞에 주저앉아 구겨지고 흙투성이인 책장을 조심스럽게 넘겼다. 그 순간, 나는 내 주위로 다른 시공간이 펼쳐지는 것을 느꼈다. 그곳이 시장통 한가운데인 것도, 내가 엄마와 장을 보러 나왔다는 것도 잊은 채 꿈에도 그리던 동화책과의 독대에 푹 빠져있었다. 책이라는 하나의 세계와 인간이 만나 일으키는 일종의 스파크, 그 짜릿함을 맛보았던 것이다. 그렇게 책을 향한 소유욕에 눈을 떴다. 잘 따라오는 줄 알았던 아이가 없어진 걸 깨달은 엄마는 내 이름을 부르며 헐레벌떡 가던 길을 돌아오고 있었다. 그사이 나는 이 책을 그냥 가져가도 될지 고민하고 있었다. 결국, 내 손을 빠르게 낚아채 간 엄마 때문에 그 책의 주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 사건은 엄마를 통해 조금씩 부풀려지면서 나를 ‘책을 사랑하는 아이’로 둔갑시켰다. 사람들이 나를 공부 좋아하는 아이로 오해하고, 부모님이 무리해서 전집을 사주신 것도 아마 그 일 때문이었던 것 같다.

봉인되어 있던 책 욕심이 깨어나자 어디서든 책이 보이면 꼭 한 번씩 펼쳐봐야 직성이 풀렸다. 만화책이든 소설책이든 잡지든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책을 많이 읽어서 무엇을 이루었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는 있다. 구체적으로 이룬 것이 없다고. 나는 교양이나 지식을 쌓을 목적으로 책을 읽지 않았다. 처음에는 책이 좋아서 읽었고, 나중에는 연약한 마음을 의지하기 위해 책을 읽었다.

책은 상처가 날 때마다 바르는 연고와도 같았다. 마음이 깨지고 부서졌을 때는 특히 독서가 약이었다. 책의 치유력을 가장 통감했던 시기는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 시절은 어둡고 습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세세한 상황들은 떠오르지 않아도 여전히 축축하고 불쾌한 감정이 남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늘지고 스산했던 한 시절이었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만 해도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입학시험을 치러야 했다. 나는 원하는 고등학교에 합격하고 싶어서,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성적이 좋지 않아 정원 미달인(그다지 평판이 좋지 않았던) 학교에 들어가게 될까 봐 중학교 마지막 1년을 하얗게 불태우며 공부했었다. 내 인생을 통틀어 학구열이 가장 높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마침내 지망했던 고등학교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그 성취의 맛은 어찌나 달콤했던지. 청춘의 한 페이지를 아름답게 장식할 고등학교 생활이 무척 기대되었다.

고등학교 입학 후 모든 게 순조로운 듯했다. 반 배정을 받고, 새 친구들도 금세 사귀었다. 하지만, 미숙한 감정들과 섣부른 오해들이 끼어들면서 함께 어울리던 무리에서 조금씩 밀려난 나는 단짝 하나 없는 외톨이 신세가 되었다. 친구들이 나를 노골적으로 괴롭히거나 따돌린 건 아니었다. 그저 그들에게서 일종의 적의 같은 것을 느꼈을 뿐이었다. 나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에는 ‘불쑥 찾아온 불청객’을 바라보는 불편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불쾌한 감정을 애써 숨기기 위해 최대한 예의를 갖추겠다는 차가운 의도가 엿보였다. 이쯤 했으면 알아서 꺼져달라는 무언의 압박이었을까? 또래에 대한 소속감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기에,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아이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쉬는 시간에 반 친구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수다를 떨거나 매점으로 달려갈 때, 나는 자리에 앉아 책을 읽었다. 독서에 집중하는 동안에는 내가 사랑받지 못하는 외톨이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보호막이 나를 감싸듯 안온한 기분이 들었다.

학교 도서관은 내가 자주 찾는 곳이었다. 일반 교실이 줄지어 이어진 복도 끝자락에 자리한 도서관은 간소하긴 해도 도서 대여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나는 도서관의 존재가 반가웠다. 쉬는 시간에 혼자 책상에 앉아 있지 않고, 갈 곳이 생겼다는 사실이 기뻤다. 색인함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책의 제목을 찾아내는 일은 나만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책을 빌려 교실로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든든했다. 나는 그렇게 학창 시절 중 가장 어두컴컴했던 한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그때의 경험으로 나는 깨달았다. 내 앞에 어떤 괴팍한 현실이 펼쳐져도 책만 있으면 그 현실을 정면 돌파할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영혼이 지치고, 감성이 고갈되었다고 느낄 때 부족한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책을 펼친다. 이 멋진 친구는 내가 잠시 소원해도 토라지거나 등을 돌리지 않고 무심하게 나를 받아준다. 우리의 우정은 얄팍해질 틈이 없다.

책을 애정하는 만큼 근심도 늘어 간다. 날이 갈수록 시력이 떨어지면서 노안의 문턱에 이르게 되자, 책 읽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될까 봐 벌써 불안하다. 요새는 오디오북도 활성화되어 있다지만, 역시 책은 활자를 눈으로 훑고 책장을 손끝으로 넘겨야 제맛이라 절대 귀에 그 즐거움을 양보하고 싶지는 않다. 눈에 좋다는 영양제든 다초점렌즈든 대비를 할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또 다른 걱정이 있다면, 종이책의 운명이다. 날이 갈수록 독서 인구가 감소하고, 책방의 수요도 줄어들고 있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선득하다. 내 주위에도 책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부쩍 줄었다. 읽을 사람이 없어서, 돈이 안 되니까 아무도 종이책을 만들지 않으면 어쩌지? 그 와중에 MZ세대 사이에서 독서를 개성 있고 멋진 행위로 여겨 ‘텍스트 힙’이라는 트렌드가 생겨났다고 하는데, 그런 방식이라도 사그라들던 독서 열풍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책 읽기’가 특별하고 근사한 행위라는 관념이 깔린 것 같아서 괜스레 마음이 불편하다. 그것이 독서의 동기 유발제로는 훌륭할지는 몰라도, 독서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는 책 읽기가 일상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틈새 시간조차 휴대전화에 빼앗기는 상황 속에서, 과시하고 싶은 심리에 기대서라도 독서 인구가 늘어나길 바라는 것이 나의 숨은 속내이기도 하다. 나는 계속 읽어야 하니까, 책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종이책이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아직도 책이 사람을 구하고, 세상을 구한다고 믿는 책 바보의 기원(祈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