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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선아 Nov 13. 2023

태몽 찾으러 왔어요

1. 태몽 때문이야


 “4교시는 체육이니까, 수업 종 울리면 축구 골대 앞에 모여 있어요.”

 “네.”

 3학년 1반 아이들은 신이 나서 운동장으로 나갔어요. 성운이는 힐끔 선생님을 봤지요. 성운이와 눈이 마주친 선생님이 활짝 웃었어요. 교실에 남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요. 

 ‘야호!’

 그제야 성운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나갔어요. 마음은 쌩하고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지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어갔죠.

 성운이는 소아 천식을 앓고 있어요. 절대로 뛰면 안 돼요. 엄마는 새 학년이 될 때마다 담임선생님께 전화해서 성운이가 뛰지 않도록 부탁해요. 운동장에서 하는 수업이 있을 때는 성운이 혼자 교실에 남아 책을 읽게 해달라고 해요. 그래서 몸을 크게 움직이는 활동이 있는 수업에는 미리 선생님이 말했어요.

 “성운이는 교실에 남아 있을까?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어도 좋아.”

 이뿐인가요? 급식으로 나온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도 먹지 못해요. 천식에 좋지 않으니까요. 의사 선생님은 가끔씩 한두 번 먹는 건 괜찮다고 하지만, 엄마는 ‘절대 금지’라고 했어요. 

 어쨌든 지금, 선생님이 그냥 웃기만 했잖아요? 체육 수업에 참여해도 좋다는 말일 거예요. 그동안 교실에 혼자 남아서 책을 읽을 때 얼마나 속상했는지 몰라요. 오늘은 친구들하고 같이 운동할 거예요. 조심히 달리면 괜찮겠죠? 성운이에게 소원이 있다면 다른 친구들처럼 맘껏 뛰어보는 거예요. 쉬는 시간에 잡기 놀이도 하고 축구도 하고 싶어요. 

 수업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축구 골대 앞에 모였어요. 물론 성운이도 당당하게 서 있었죠. 곧 선생님이 와서 말했어요.

 “오늘은 축구를 할 거예요. 성운이는 벤치에 앉아 있을까?”

 “네? 저도 축구할 건데요?”

 성운이가 실망하며 말했어요.

 “안 돼. 성운이는 뛰면 안 되니까 친구들 수업하는 걸 지켜보자.”

 “휴.”

 그럼 그렇지요. 성운이는 긴 한숨과 함께 어깨를 축 떨어뜨리며 벤치로 갔어요. 

 “살살이 공성운, 넌 앉아서 공 차는 거나 구경해.”

 민찬이가 성운이 뒤에 대고 소리치고는 혀를 쑥 내밀었어요. 성운이는 민찬이가 얄미웠지요. 

 민찬이는 2학년 때도 같은 반이었어요. ‘살살이’란 별명도 민찬이가 지어준 거예요. 천식 때문에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니는 걸 놀리는 거죠.

 민찬이와 아이들이 공을 굴리며 운동장을 뛰어다녀요. 그 모습을 보는 성운이 마음은 소금에 절인 배추 같아요.

 ‘나도 뛰고 싶다.’

 생각할수록 속상했어요. 왜 자기만 천식이 있어서 뛰지 못하는 건지 알 수 없었죠. 

 지루했던 체육 시간이 끝나고 점심시간이에요.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면서 밥을 많이 먹었어요. 벤치에 가만히 앉아만 있던 성운이는 배가 하나도 고프지 않았지요. 성운이는 시금치를 집어 먹으며 민찬이를 봤어요. 민찬이는 돈가스만 먹어요. 시금치는 짝꿍 윤서 식판에 몰래 놓고요. 그걸 보자 성운이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어요. 성운이는 건강해지려고 맛없는 시금치며 오이, 토마토도 먹는데, 편식대장 민찬이는 건강하니까요. 

 “나 동생 생겼다. 엄마가 어젯밤에 태몽으로 딸기 꿈을 꾸었대.”

 후식으로 나온 딸기 맛 구슬 아이스크림을 보고 민찬이가 말했어요.

 “정말? 내 태몽도 딸기인데. 그런데 넌 태몽이 뭐야?”

 윤서가 반가워하며 민찬이에게 물었어요.

 “호랑이.”

 “와, 너하고 어울린다.”

 그때 민찬이 맞은편에 앉은 은준이가 끼어들었어요.

 “내 태몽은 고래야.”

 그러자 갑자기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자기 태몽을 말하기 시작했어요. 수빈이는 돼지, 현중이는 수박, 가율이는 뱀이래요. 모두 자랑스러운 표정이었죠. 성운이는 속으로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어요. 성운이는 태몽이 없거든요.     

 성운이가 태몽이 없다는 걸 처음 알 게 된 건 유치원에 다닐 때였어요.

 선생님이 삼신할머니 그림책을 읽어주고 말했어요.

 “태몽은 아이가 엄마 아빠에게 찾아올 거라고 삼신할머니가 미리 알려주는 꿈이에요. 자기 태몽은 무엇인지 집에 가서 엄마 아빠께 물어보도록 해요.”

 성운이는 집에 가자마자 엄마한테 물었지요.

 “엄마, 내 태몽은 뭐야?”

 “태몽? 넌 태몽 없이 엄마한테 왔어.”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성운이는 실망했어요. 뭔가 특별한 태몽이길 기대했거든요. 다음 날, 성운이는 친구들이 자기 태몽에 관해 얘기하는 걸 듣고 더 크게 실망했어요. 모두 태몽이 있는 거예요. 성운이는 자기만 태몽을 주지 않은 삼신할머니가 엉터리 할머니 같았어요. 혹시 자기가 미워서 주지 않았나 싶기도 했어요.     

 그날 이후 성운이는 태몽 얘기만 나오면 속상하고 심술이 났어요. 지금도 그래요. 아이들은 축구를 실컷 하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태몽을 자랑하잖아요? 성운이는 축구도 하지 못했고 아이스크림도 못 먹고 태몽도 없는데 말이죠.

 “살살이 공성운, 네 태몽은 살살 기어 다니는 송충이냐?”

 갑자기 민찬이가 물었어요. 성운이는 기분이 팍 상했죠. 

 “아니야. 내 태몽은 치타야.”

 얼결에 나온 말이지만, 성운이는 치타 태몽이 마음에 들었어요. 멋졌죠. 성운이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치타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동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정말로? 태몽이 치타인데 넌 왜 못 달려? 혹시 아픈 치타였나?”

 민찬이 말에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어요. 성운이는 얼굴이 빨개졌어요. 민찬이가 얄미워 죽겠어요.

 “너 아이스크림 먹으면 안 되지? 내가 대신 먹어줄게.”

 자기 아이스크림을 모두 먹은 민찬이가 성운이 식판에 있는 구술 아이스크림을 보고 말했어요. 작년에도 급식에 아이스크림이 나오면 민찬이가 대신 먹었어요. 하지만 지금, 성운이는 그러라고 하기 싫어요.

 “안 돼. 내가 먹을 거야.”

 성운이는 구슬 아이스크림 통을 집어 얼른 바지 주머니에 넣었어요. 

 교실로 돌아온 성운이는 주머니에서 아이스크림 통을 꺼냈어요. 뚜껑을 열어보니 아이스크림이 녹아 있었어요. 

 ‘쳇, 아파서 아이스크림도 못 먹고 달리기도 못 하고 태몽도 없어.’

 성운이는 왜 자기만 천식을 앓는지 알 수 없었어요. 친구들하고 뭐가 달라서 자기만 아픈 걸까, 하고 아이스크림을 바라보며 생각했어요. 아이스크림이 거의 다 녹을 때쯤,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어요.

 ‘설마 태몽이 없어서?’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아이들과의 차이점은 태몽이 있고 없는 것, 그것뿐인 것 같았어요. 

 ‘그래. 태몽이 없어서 내가 아픈 거야.’

 한 번 그렇다고 생각하자, 성운이는 자기 생각이 천 번 만 번 옳은 것 같았어요. 태몽만 있으면 맘껏 뛰고 축구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요. 초콜릿, 아이스크림도 실컷 먹고요. 

 ‘이게 다 태몽 때문이야. 태몽이 없어서 아픈 거라고. 지금이라도 태몽을 가져야겠어. 하지만 어떻게?’

 성운이는 답답했어요. 하지만 곧 반짝하고 좋은 생각이 났어요.

 ‘태몽은 삼신할머니가 아이가 간다고 미리 알려주는 꿈이랬잖아? 그러니까 삼신할머니가 태몽을 갖고 있다가 엄마한테 주는 거야. 태몽을 가지려면 삼신할머니를 만나야 해.’ 

 그러면서 생일날마다 할머니하고 엄마가 삼신할머니께 드릴 밥상을 차리던 게 떠올랐어요. 할머니와 엄마는 밥과 미역국, 떡을 차리고 “우리 성운이가 무탈하게 자랄 수 있도록 살펴주세요.”하고 소원을 빌 듯이 빌었지요.

 ‘그래. 내 생일에 삼신할머니가 오는 거야. 그래서 상을 차리고 소원을 비는 거지. 돌아오는 내 생일에 삼신할머니를 만나서 태몽을 달라고 해야겠다.’

 성운이는 신이 났어요. 삼신할머니를 만나서 태몽을 달라고 하면 태몽을 주겠죠? 그러면 천식도 싹, 낫고 민찬이보다 더 잘 뛸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또 다른 생각이 삐쭉 올라왔어요.

 ‘하지만 삼신할머니가 정말 있을까?’

 삼신할머니는 그림책에서나 봤지 실제로 만났다는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당연히 있지. 삼신할머니가 오니까 엄마하고 할머니가 생일마다 삼신상을 차리지.’

 ‘그렇지만······.’

 ‘뭐가 그렇지만, 이야. 엄마가 미역국 끓이면서 삼신할머니 드린다고 했었잖아.’

 ‘그래도 미역국을 먹는 삼신할머니를 한 번도 못 봤는데?’

 ‘그건 늦잠을 자니까 그렇지. 새벽에 와서 먹고 가셨겠지.’

 ‘그럴까?’

 마음속에서 두 명의 성운이가 싸움을 시작했어요. 삼신할머니가 있을 거라고 믿는 성운이와 없을 거로 생각하는 성운이가요. 한동안 실랑이를 하던 성운이 마음이 해결책을 내놓았어요. 

 ‘ 곧 내 생일이잖아? 그때 삼신할머니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면 되겠다.’

 성운이는 생일날에 삼신할머니를 기다릴 거예요. 삼신할머니가 있다면 만날 수 있겠죠? 그러면 태몽을 달라고 하면 돼요. 삼신할머니가 없다면······. 그건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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