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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선아 Nov 16. 2023

태몽 찾으러 왔어요 2

2. 태몽 주세요     




 손꼽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생일날이에요. 성운이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갔어요. 집에는 사촌 누나가 와 있었어요. 누나는 큰 이모 딸로 이름은 김하늘이고 체육대학교에 다녀요. 누나는 체육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래요. 성운이는 달리기도 축구도 수영도 잘하는 하늘이 누나가 부러워요. 그리고 많이 좋아해요. 

 “누나, 엄마는? 할머니도 안 계시네.”

 “응. 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병원에 갔어. 내일까지 누나하고 있어야 해.”

 “할머니가?”

 성운이가 놀라며 되물었어요. 

 “할머니가 걱정되는구나. 입원해서 검사 몇 가지만 하고 내일 오신댔어.”

 하늘이 누나는 할머니를 걱정하는 성운이가 기특했어요. 성운이는 할머니도 할머니지만 내일 삼신상을 차려야 하는데 엄마도 할머니도 없으니 걱정이었죠. 아빠도 출장 중이라 집에 안 계시고요.

 “누나, 그런데 누나는 삼신상 차릴 줄 알아?”

 “삼신상?”

 성운이는 누나 표정을 보고 역시나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휴, 걱정 가득한 한숨이 절로 나왔어요.

 “숨쉬기 힘들어?”

 하늘이 누나가 성운이를 살피며 물었어요. 

 “아니야.”

 성운이는 방으로 들어갔어요. 내일 삼신할머니가 올 텐데, 그러려면 삼신상을 차려야 할 텐데, 엄마도 할머니도 없이 어떻게 삼신상을 차려야 할지 고민됐어요.

 다음날, 성운이는 일어나자마자 커튼을 활짝 걷었어요. 아직 밖이 어두웠어요. 

 ‘그 방법밖에 없어.’

 성운이는 어제저녁, 하늘이 누나 몰래 초콜릿을 사 왔어요. 삼신상에 올릴 밥과 미역국 대신 초콜릿을 준비한 거예요. 

 성운이는 접시 가득 초콜릿을 담아 탁자 위에 올리고 삼신할머니를 기다렸어요.

 “하나만 먹을까?”

 눈앞에 초콜릿을 보니까 딱 하나만 먹고 싶었어요. 더구나 지금은 못 먹게 하는 사람도 없잖아요? 성운이는 초콜릿 하나를 집어 조심히 껍질을 깠어요. 엄마를 속이는 것 같아 살짝 죄책감이 들었지만 성운이는 자기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공성운, 열 살 생일을 축하해.”

 꾸르륵. 막 초콜릿을 입안에 넣으려는데 배가 살살 아팠어요. 성운이는 다시 초콜릿을 껍질에 싸서 바지 주머니에 넣고 급히 화장실로 갔어요.

 볼일을 보고 나오니까 거실 테이블에서 누군가 초콜릿을 먹고 있었어요. 한복을 입고 머리를 쪽진 모습이 그림책에서 봤던 삼신할머니하고 똑같았어요. 

 ‘삼신할머니인가?’

 성운이는 살금살금 다가가 조용히 물었어요.

 “삼신할머니세요?”

 “에구머니나.”

 작게 말했는데 할머니가 깜짝 놀라며 엉덩방아를 찧었어요.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성운이를 올려봤지요. 할머니의 입과 손에 초콜릿이 잔뜩 묻어있었어요.

 할머니는 벌떡 일어나더니 대답은 안 하고 아주 난처한 표정을 지었어요. 그러고는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혼잣말했지요.

 “이를 어쩌나? 들키고 말았네. 그런데 이게 뭔데 이렇게 맛있는 거야?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맛이 있어. 아, 내 정신 좀 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이제 어떡하지? 모른 척 사라질 수도 없고.” 

 할머니를 따라서 성운이의 고개가 이쪽저쪽으로 움직였지요. 성운이는 틀림없이 삼신할머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거실 끝에서 뒤돌아서는 할머니 앞으로 다가가 다시 물었지요.

 “삼신할머니가 맞죠? 진짜로 삼신할머니시죠?”

 할머니가 우뚝 멈춰 섰어요. 그러곤 무릎을 꿇고 앉아 성운이와 눈높이를 맞추고는 말했어요.

 “그래, 내가 삼신할머니다.”

 “진짜죠?”

 성운이는 놀라우면서도 기쁜 마음에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물었어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죠. 성운이는 혹시 꿈인가 하고 볼을 꼬집어봤어요. 아파요. 꿈이 아니에요. 정말로 삼신할머니예요. 

 성운이는 먼저 물휴지를 한 장 뽑아 삼신할머니께 줬어요. 

 “할머니, 입부터 닦으세요.”

 냉큼 물휴지를 받아 든 삼신할머니는 입 주변을 닦으며 물었어요.

 “그런데 이게 뭐냐? 뭔데 이렇게 맛있는 거야?”

 “초콜릿이에요.”

 “초오코올리이잇?”

 삼신할머니는 천천히 소리 내어 말하더니 성운이에게 직접 준비했냐고 물었어요. 성운이는 할머니하고 엄마가 삼신상을 못 차린 이유를 설명하고 직접 초콜릿을 준비했다고 말했어요. 

 “그래? 아주 특별한 삼신상이로구나. 맛있어. 정말 맛있어.”

 삼신할머니는 연신 맛있다며 입맛을 다셨어요. 아주 행복한 표정을 하고서요. 성운이는 삼신할머니가 기분이 좋을 때 태몽을 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엄마도 기분이 좋을 때면 게임을 10분씩 더 시켜주니까요.

 “삼신할머니, 제가 며칠 전부터 할머니를 손꼽아 기다렸어요.”

 “그래? 왜?”

 “태몽 때문에요. 태몽 주세요.”

 성운이는 태몽이 물건이라도 되는 듯 두 손을 모아 내밀었어요.

 “뭐? 태몽? 태몽을 달라고?”

 “네, 제가 태몽이 없어서 아파요. 그래서 뛰지도 못하고 그 맛있는 초콜릿도 못 먹어요.” 
  “네가 태몽이 없어서 아파?”

 삼신할머니는 기가 막혔어요.

 “네, 할머니가 아이를 보내주면서 태몽을 주시죠? 그럼 우리 엄마한테도 제 태몽을 주셨을 거잖아요. 그런데 엄마 아빠는 제 태몽이 없대요. 그러니까 할머니가 태몽을 안 준 거예요. 그렇죠?”

 “뭐야?”

 “깜빡하셨어요? 아니면 제가 미워서 안 준 거예요?”

 “······.”

 “정말 그런 거예요?”

 삼신할머니는 두 눈만 껌벅거렸어요. 성운이는 정말로 삼신할머니가 자기를 미워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생일마다 아프지 않게 해달라는 할머니와 엄마 소원도 들어주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런 생각이 드니까 슬퍼졌어요.

 “제가 왜 미운 건데요?”

 성운이가 울먹이며 물었어요. 

 삼신할머니는 난처했어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해야 성운이가 오해하고 있는 것을 풀어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지요.

 “성운아, 태몽은 내가 안 준 게 아니야. 그리고 네가 아픈 건 태몽이 없어서도 아니고. 또 나는 네가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늘 마음을 쓰고 있단다.”

 삼신할머니가 초콜릿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어요. 하지만 성운이는 삼신할머니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니잖아요. 태몽이 있는 다른 아이들은 건강한걸요?”

 “휴.”

 “할머니가 깜빡 잊고 제 태몽을 안 줬다고 해도 원망하지 않을게요.” 

 “에효.”

 “제가 정말 미운 게 아니면 지금이라도 태몽을 주세요.”

 “휴우.”

 삼신할머니는 한숨만 나왔어요. 사실을 말해도 믿지 않으니 난처했지요. 삼신할머니는 성운이의 눈길을 피해 창밖을 봤어요. 저 멀리 산 위로 해가 봉긋 올라오고 있었어요.

 “아이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삼신할머니는 성운이에게 성큼성큼 다가갔어요.

 “나는 정말로 네 태몽을 갖고 있지 않아. 그러니 줄 게 없단다. 네가 아픈 건 나도 마음이 아프지만, 그것도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다.”

 “아니잖아요. 왜 자꾸 거짓말하세요.”

 성운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어요. 삼신할머니는 성운이가 마음에 쓰였지만, 더는 인간 세상에 있을 수 없었어요. 

 “정말 미안하다만, 이제 진짜로 가봐야 해. 시간이 없어.”

 그러고는 획하고 방향을 틀어 성큼성큼 베란다 쪽으로 달려갔어요. 치맛자락을 들어 올리고 오른쪽 발을 베란다 밖으로 내밀었지요. 성운이는 삼신할머니가 이대로 가버릴 것 같았어요. 성운이는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뛰어 삼신할머니의 옷자락을 덥석 잡았지요.

 거실에는 삼신할머니가 먹고 버린 초콜릿 비닐봉지만 굴러다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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