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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선아 Nov 16. 2023

태몽 찾으러 왔어요 6

6. 공작     



 “헉헉.”

 더는 숨이 차서 달릴 수 없었어요. 성운이는 커다란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어요. 그러곤 바위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지요. 다행히 쫓아오는 아이도 동물도 없었어요.

 “휴.”

 성운이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어요. 순간 숨이 차지 않다는 걸 느꼈어요.

 “이상하다. 이 정도 달렸으면 숨 쉬가 힘든데······. 흡입기를 한 것도 아닌데······.”

 성운이는 가슴에 손을 댔어요. 콩콩콩 요동치던 심장이 규칙적으로 뛰었어요. 급하게 오르락내리락했던 가슴도 천천히 올라갔다 내려왔어요. 

 “아직 태몽도 찾지 못했는데 아픈 게 다 나았나?”

 성운이는 믿을 수 없으면서도 기뻤어요. 먼 거리를 뛰었는데도 숨이 차지 않다니 행복했지요. 이곳에서는 흡입기가 필요 없을 거라던 삼신할머니 말도 떠올랐어요.

 “여기서는 아무리 뛰어도 괜찮나 봐.”

 성운이는 폴짝폴짝 뛰어봤어요. 제자리 달리기도 해 봤지요. 숨이 차지 않았어요. 살짝 콩닥거리기는 했지만, 가슴이 아프지 않았어요. 성운이는 이대로 집까지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늘이라도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았지요. 

 “맘껏 달릴 수 있어!”

 성운이는 바위 주변을 달려서 돌다가 벌러덩 누웠어요. 순간 가슴이 철렁했어요. 공작새 한 마리가 성운이의 머리 위를 날고 있었거든요. 달려도 숨이 차지 않아 기쁜 마음에 쫓기고 있다는 걸 깜빡 잊었지 뭐예요. 성운이는 급히 숨을 곳을 찾았지만, 하늘에서 내려 보고 있는데 숨을 곳은 없었지요. 

 “어떡하지?”

 꼼짝없이 들켰구나, 생각하는데 갑자기 하늘을 날던 공작새가 성운이 옆으로 곤두박질쳤어요. 잘못 내렸는지 한쪽 날개가 접혀 구름 땅 위를 데구루루 구르면서요. 성운이는 공작새가 다치지 않았는지 걱정돼 냉큼 달려갔어요.

 “괜찮니?”

 그러고는 공작새의 몸을 이리저리 살폈지요. 공작새가 바로 일어나 괜찮다는 듯 꽁지깃을 활짝 펼쳤어요. 부채처럼 펼쳐지는 꽁지깃이 반짝거렸어요. 

 “우아, 멋지다.”

 “조금 더 연습해야겠다. 그래도 어제보다 좋아졌어.”

 어디선가 나타난 아이가 공작새를 살피더니 성운이를 봤어요. 아이와 성운이의 눈이 딱 마주쳤지요. 성운이는 이번에는 진짜 잡혔구나, 생각하면서 변명하듯이 말했어요. 

 “조금 전에는 내가 장미꽃을 훔치려고 했던 게 아니라······. 그러니까 오해가 생겨서······.”

 일단 말을 꺼냈지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어요. 그런데 아이는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어요.

 “알아. 네가 정말로 장미꽃을 꺾으려고 했겠어? 그게 어떤 꽃인데. 공작이 다쳤을까 봐 바로 달려와 준거 보니까 분명히 뭔가 오해가 있었을 것 같아.”

 성운이는 아이가 자기를 믿어주는 것 같아 고마웠어요.

 “맞아. 오해가 있었어. 난 단지 장미꽃이 멋지고 예뻐서······.”

 “그럼. 그 장미꽃은 여기 있는 아이들이 모두 부러워하잖아. 장미꽃 아이가 십 년도 넘게 애지중지 키운 태몽이니까.”

 “태몽?”

 성운이는 갑자기 나온 ‘태몽’이라는 말에 놀랐어요.

 “응, 태몽. 뭘 그렇게 놀라?”

 성운이는 흠칫했어요. 장미꽃이 태몽이라니 정말 놀라웠어요. 그러면서 공작새도 태몽인가 싶기도 했지요. 성운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물으며 확인해 보기로 했어요.

 “네 태몽인 공작새도 멋지다.”

 “고마워. 엄마 아빠에게 멋지게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매일 연습 중인데 잘 안 돼.”

 “엄마 아빠한테?”

 성운이는 거듭 놀랐어요.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요. 그리고 곰곰이 생각했어요. 

 ‘장미꽃하고 공작새가 태몽이라고? 엄마 아빠한테 보여준다고? 그러면 마을에서 아이들이 돌보던 동물과 꽃들이 모두 태몽인 거야? 그렇다면 아이들이 직접 태몽을 만들고 엄마 아빠한테 주는 건가?’

 그런 것 같았어요. 아니, 그런 거예요. 마을에서 아이들과 있었던 동물과 식물은 반 친구들이 태몽이라고 자랑하던 거북이, 딸기, 수박, 고래 등등이었으니까요.

 ‘바보, 그렇다면 내가 직접 태몽을 만들고 안 가지고 간 거야?’

 성운이는 자기 머리를 콩 쥐어박았어요. 그러자 아이가 웃으며 물었어요.

 “너 정말 재밌다. 자기 머리를 때리고. 그런데 넌 태몽이 뭐야?”

 성운이는 대답할 수 없었어요. 태몽이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민찬이한테 거짓말한 것처럼 치타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게··· 생각 중이야.”

 “아직 결정 못 했구나.”

 성운이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하긴 나도 공작으로 태몽을 정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어. 태몽을 정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야. 태몽을 만들고 돌보는 일은 더 힘들고. 그래도 태몽을 갖고 인간 세상으로 나가서 엄마 아빠를 만날 생각을 하면 행복해.”

 아이가 미소 지었어요. 성운이는 아이를 따라 미소 지으며 자기의 태몽을 상상해 봤어요. 

 ‘내 태몽은 뭘까? 공작? 민찬이 같은 호랑이? 아니면 정말 치타일까? 아니야, 그런 것보다 더 특별했으면 좋겠어.’

 성운이는 자기 태몽이 세상에 없는 아주 특별한 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날개 달린 뱀은 어떨까? 기린처럼 목이 긴 돼지? 걸어 다니는 물고기? 말이 많은 장미꽃도 좋을 것 같아.’

 상상하다 보니 웃음이 나왔지요.

 “무슨 생각하는데 그렇게 즐겁니?”

 혼자서 웃는 성운이를 보고 아이가 물었어요.

 “태몽으로 뭐가 좋을지 잠깐 상상해 봤어.”

 “상상? 그게 뭔데?”

 아이가 물었어요. 

 “상상을 몰라? 상상은··· 그러니까 상상이란··· 그냥 상상하는 거야.”

 성운이는 상상을 설명하는 게 어려웠어요. 상상을 모르는 아이가 신기했지요. 그런데 아이가 묘한 표정을 하고 성운이를 봤어요. 성운이는 아이가 자기를 이곳 아이가 아니라고 의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떻게 말해야 의심을 풀지 생각하고 있는데 멀리서 피리 소리가 들렸어요. 성운이는 냉큼 물었지요.

 “어, 음악 소리네. 무슨 일이지?”

 “축제가 열리나 봐. 우리도 가보자.”

 다행히 아이는 ‘상상’에 대해 더는 묻지 않았어요. 

 “축제라고? 재밌겠다. 무슨 축제야?”

 축제란 말에 성운이는 설렜어요. 아주 재밌을 것 같았지요. 

 “응. 태몽을 완성한 아이가 있나 봐. 빨리 가서 세상으로 나가는 아이를 축하해 주자.”

 순간 성운이는 걸음을 멈췄어요. 축제장이라면 이곳에 사는 아이들과 동물들이 모두 모이겠지요? 그러면 성운이를 알아보고 도둑을 잡겠다며 달려들 게 뻔해요. 

 “뭐 해? 빨리 와!”

 아이가 뒤돌아 성운이를 보며 손짓했어요. 공작새는 되돌아와 부리로 성운이의 등을 살짝 밀었고요. 성운이는 어쩔 수 없이 아이 옆으로 달려갔어요.

 “아주 멋지고 신나는 축제가 될 거야. 참, 나를 부를 때는 공작이라고 불러.”

 성운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걱정을 한가득 안고 공작을 따라갔어요. 태몽을 완성한 아이가 궁금했지만, 축제장으로 가는 건 스스로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여우 같았죠. 또 축제까지 즐기기에는 시간도 부족할 것 같았어요.

 성운이는 고개를 돌려 지고 있는 해를 봤어요. 해가 딱 반만 보였어요.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았어요. 

 성운이는 엉거주춤 공작을 따라 축제장으로 갔어요. 얼굴을 가릴 가면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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