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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선아 Nov 16. 2023

태몽 찾으러 왔어요 8

8. 재판     



 호랑이와 독수리가 성운이를 데리고 간 곳은 광장이었어요. 광장 한쪽에는 반달 모양의 구름 계단이 있었고 계단 맞은편에는 작은 의자가 두 개 놓여 있었어요.

 “올라가.”

 호랑이가 광장 한가운데 있는 구름 강단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성운이가 구름 강단 위에 한쪽 발을 올렸어요. 그러자 구름 땅이 도넛 모양으로 올라오더니 성운이의 두 손목을 수갑처럼 감쌌어요.

 성운이 앞에 있는 구름 계단에는 동물들과 아이들로 빼곡했어요. 모두 화난 표정으로 성운이를 바라보며 웅성댔어요. 성운이는 울고 싶었어요. 

 “우르르 쾅쾅.”

 천둥, 번개와 함께 아이 두 명이 나타났어요. 아이들은 쌍둥이인지 똑같이 생겼어요. 다른 게 있다면 한 아이는 번개 모양 모자를, 다른 아이는 초승달 모양 모자를 쓰고 있었어요. 

 두 아이가 의자에 앉자, 의자가 높이 올라갔어요.

 “이 아이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

 번개 모양 모자를 쓴 아이가 성운이를 내려 보며 물었어요. 

 “태몽을 훔치려 했습니다. 재판장님.”

 번개 모양과 초승달 모자를 쓴 두 아이가 깜짝 놀라며 의자 위로 폴짝 뛰어올라 섰어요. 성운이도 깜짝 놀랐지요. 재판장이라면 죄를 지어 재판을 받으러 온 거니까요. 감옥에라도 가는 게 아닌가? 그러면 집에 못 가나? 짧은 순간 많이 생각이 들었지요.

 “태몽을 훔쳤느냐!”

 “태몽 도둑이라고!”

 두 재판장이 인상을 찌푸렸어요. 

 “아니에요. 저는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어요.”

 성운이가 냉큼 말했어요. 구름 계단에 앉은 아이들과 동물들이 성운이를 무서운 눈으로 노려봤어요. 

 “장미꽃 아이의 장미꽃을 훔치려 했습니다.”

 “뭐라고?”

 “장미꽃 아이의 꽃을?”

 두 재판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목소리까지 떨며 말했어요.

 “세상에, 어떻게 그런.”

 “맙소사. 말도 안 돼.”

 광장이 탄식과 함께 소란스러워졌어요. 

 “죄송해요. 정말 잘못했어요. 하지만 장미꽃을 훔치려고 한 게 아니라 너무 예뻐서, 저도 모르게 손이······.”

 또다시 광장이 술렁였어요. 

 성운이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어요. 하지만 궁지에 몰린 쥐가 되니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았어요.

 “장미꽃이 태몽인 줄 몰라서 그랬어요. 나중에 태몽인 걸 알고 장미꽃 아이를 찾아가 사과했고요. 진짜로 미안했거든요.”

 “뭣이라고?”

 “장미꽃이 태몽인 줄을 몰라?”

 두 재판장은 더욱 놀라며 벌떡 일어났어요. 화가 아주 많이 나 보였죠. 광장에 있는 아이들과 동물들도 시끄럽게 웅성거렸어요. 성운이는 그제야 태몽인 걸 몰랐다고 말한 게 실수였다고 생각했어요. 인간 세상에서 온 걸 들킨 것 같아 가슴이 조마조마했지요.

 “아니, 어떻게 장미꽃이 태몽인 것을 모를 수 있느냐?”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만드는 태몽을 모른다고? 아무리 벌을 받기 싫다고 해도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느냐?”

 두 재판장이 으름장을 놓았어요. 성운이는 이럴 때 공작이라도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공작은 성운이가 장미꽃을 훔치지 않았다고 믿어준 유일한 아이니까요. 성운이는 구름 계단에서 공작을 찾았어요. 하지만 공작은 보이지 않았지요.

 그때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공작이 광장으로 들어왔어요. 성운이는 반가운 마음에 벌떡 일어나 소리쳤어요.

 “공작은 알아요. 제가 도둑이 아니라는 걸요.”

 그러고는 공작에게 양팔을 흔들었어요. 두 재판장은 의아해하며 공작에게 자세히 얘기해 보라고 했어요. 

 “재판장님, 저 아이는 태몽을 만들 거라고 했어요. 장미꽃을 훔치려고 한 건 오해가 있었다고 했어요.”

 “오해라고?”

 “네, 그리고 제 공작이 나는 연습을 하다가 땅에 떨어졌을 때 공작이 다치지 않았는지 걱정해 줬어요. 그런 마음을 가진 아이라면 분명 태몽을 훔치지 않았을 거예요.”

 성운이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공작이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게 있어요.”

 “이상한 거?”

 “이상한 거?”

 두 재판장이 동시에 놀라며 되물었어요. 구름 계단에 있는 아이들과 동물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어요. 성운이는 두 눈을 크게 뜨고 공작을 바라봤어요. 뭐가 이상했다는 건지 성운이도 궁금했지요.

 “상상이라는 걸 한다고 했어요.”

 “상상?”

 “상상?”

 두 재판장은 서로를 바라보며 말했어요. 그러더니 성운이를 보고 물었어요.

 “넌 어디서 그런 걸 듣고 알고 있는 거냐?”

 “상상이라고?”

 성운이는 ‘상상’이란 걸 이곳에 사는 아이들은 모르는 말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어요. 그래서 축제장으로 가기 전에 공작이 상상이 뭐냐고 물었던 거예요. 그러나 저러나 성운이는 믿었던 공작에게 발등이라도 찍힌 기분이었어요. 갑자기 말하지 않아도 되는 ‘상상’을 얘기하며 이상하다고 하니까요.

 “도대체 넌 누구냐?”

 머리에 반달 모양 모자를 쓴 재판장이 물었어요. 

 “너 누구야?”

 머리에 초승달 모양 모자를 쓴 재판장이 일어나 다그치듯 호통쳤어요.

 성운이는 울고 싶었어요. 하지만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꾹 참으며 이곳을 벗어날 궁리를 했어요. 좋은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어요. 사실대로 말하는 거예요. 대신 인간 세상에서 왔다는 말은 쏙 빼고요. 인간 세상에서 온 걸 들키면 다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요.

 “사실은요. 태몽을 만들었는데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태몽을 찾고 있었어요. 상상이라고 말한 건 그냥··· 지어낸 거예요. 거짓말이에요.”

 “태몽을 잃어버렸다고 했느냐?”

 “거짓말을 했다고?”

 그런데 분위기가 더 심각해졌어요. 성운이는 또 자기가 뭘 잘못한 건지 알 수 없었지요.

 “어떻게 태몽을 훔치려던 걸 숨기려고 태몽을 잃어버렸다고 하느냐?”

 “태몽은 잃어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하는데!”

 “더구나 지어낸 거라고? 어떻게 거짓말을 한 걸 자랑스럽게 말하느냐?”

 “거짓말은 자기 자신까지 속이는 것, 훔치는 것보다 더 큰 죄인 걸 모르느냐?”

 두 재판장은 무섭게 성운이를 노려봤어요. 구름 의자에 앉아 있던 아이들과 동물들은 야유하며 외쳤어요.

 “벌을 주세요!”

 “거짓말쟁이에게 벌을!”

 “아주 무서운 벌을!”

 광장이 소란스러워지자 독수리가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펼쳤어요. 그러자 아이들과 동물들은 바로 조용해졌지요. 성운이는 벌벌 떨렸어요. 심장이 두근거려 숨 쉬는 게 힘들 정도였어요.

 두 재판장은 이마를 맞대고 의논했어요. 두 재판장의 모자가 붉어졌다가 까매졌다가 했지요. 잠시 후 두 재판장의 모자 색이 처음으로 돌아오고 두 재판장은 성운이를 바라보고 앉았어요. 

 “태몽을 훔치려 하는 건 몹시 나쁜 죄다!”

 “더구나 거짓말은 죄 중에서도 가장 큰 죄!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죄지!”

 “죄인은 인간 세상으로 절대 갈 수 없다!”

 “태몽을 훔치려는 자, 거짓말하는 자는 아기 천사가 될 자격이 없지!”

 성운이는 놀랐어요. 판결이 내려졌나 봐요. 인간 세상으로 갈 수 없다니요. 그러면 엄마 아빠를 못 만나게 되잖아요. 인간 세상에서 왔다고 말하지 않아도 인간 세상으로 갈 수 없다니 믿을 수 없었어요. 

 “아니에요. 진짜로 전 도둑이 아니에요. 그리고 ‘상상’은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대로 말을 할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 그러니까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집으로 갈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거짓말한 거예요. 으앙.”

 성운이는 울음을 터뜨렸어요. 순간 광장이 조용해졌어요. 성운이의 울음소리만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죠. 성운이는 무슨 일인가 싶어 울음을 뚝 그쳤어요. 두 재판장과 호랑이와 독수리, 공작과 구름 계단에 있는 동물과 아이들이 성운이만 보고 있었어요. 모두 황당하고 놀란 표정을 하고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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