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신의 존재를 다루는 방식에 관하여

존재론적 증명과 양상논리학

by 가지무침


인터넷을 보면 간혹 철학이 왜 신을 다루는지에 관한 질문이 나오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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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선 철학이란 무엇인지, 신을 왜 다루는지, 어떤 연구를 했는지 등에 관해 간략히 보일 것입니다. 또한 여러 신 존재 증명 중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증명, 괴델의 양상-존재론적 증명을 소개하고 비평할 것입니다.


1.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아직까지 합의된 표준적인 정의도 없습니다. 제 나름의 임시 정의를 소개하겠습니다.


1) 의미: 무언가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것


철학은 보통 무언가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행위입니다. 단, 이 정의의 단점은 너무 광의적입니다. 거의 모든 학문이 철학으로 포섭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추가적으로 연구 분야를 지정해줍니다.


2)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논리학은 철학이다.


형이상학은 존재의 본성이나 구조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인식론은 지식이란 무엇이며,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아는 것이 가능한지 탐구하는 것입니다. 윤리학은 옳음, 좋음 등을 탐구하는 것이고, 논리학은 올바른 추론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입니다. 논리학의 경우 전통적으로 철학을 하는 도구였으며, 현대에 와서는 하나의 분과 학문으로 발전했습니다.


대략적으로 이렇게 정의 내린 후, 탐구 주제에 따라 하위 분과가 더 파생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학: 아름다움은 무엇인가(형이상학) + 아름다움을 어떻게 아는가(인식론)

정치철학: 국가란 무엇인가(형이상학) + 정의란 무엇인가(윤리학)

과학철학: 과학적 진리는 실재하는가? 어떻게 아는가? (형이상학+인식론)

deontic 논리학: 윤리적인 명제들도 논리적 체계로 연역할 수 있는가?


이 외에도 하위 분과들은 굉장히 많지만 여기선 이 정도 예시만 간략히 기술하겠습니다.


2. 형이상학, 특수 형이상학


고대 그리스에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등은 만물의 근원이 무엇인지 탐구했습니다. 탈레스는 물, 아낙시만드로스는 아페이론, 아낙시메네스는 공기가 근원(구성 물질)이라며 자신들만의 답을 내놨습니다. 이러한 논의 속에서 "변화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문제 제기도 등장했습니다. 파르메니데스라는 철학자는 '변화는 없다'는 주장을 했고, 반면에 헤라클레이토스라는 철학자는 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논쟁들을 검토 후, 이들의 문제의식을 계승하여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 구조는 어떠한가라는 탐구로 확장합니다. 즉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지, 변화가 가능한지 등에 관한 논제들을 종합하여 존재 일반에 대한 질문으로 바꾸었고, 자신만의 이론(4원인설)을 도입하여 형이상학을 체계화했습니다.


존재하는 것들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 궁극적인 원리를 탐구하는 것은 형이상학의 핵심 주제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탐구는 특정한 존재자에 대한 연구로도 파생되는데, 이를 특수 형이상학이라 부릅니다. 특히 존재의 최초 원인을 신적 존재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과거 형이상학의 중요한 분야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연구를 신학으로서의 제일철학으로 분류했습니다.


3. 신 존재 증명: 존재론적 증명

3-1. 안셀무스


여러 종교의 신화들에서 신은 그냥 등장합니다. 종교적 문헌에서 몇몇 선지자 혹은 인간은 그들과 대화하는 직접 경험을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경험을 할 수가 없습니다. 철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중세 신학자들 중 어떤 이들은 경험이 아니라 논리적 추론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많은 시도들 가운데 여기서 소개할 것은 11세기 안셀무스라는 신학자의 존재론적 증명입니다. 신 존재 증명 중 존재론적 증명 계열이 "논리학을 도구로 사용하여 철학하는 방법"을 특히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기에 이 계열을 소개하겠습니다. 안셀무스의 증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안셀무스는 신을 "그보다 더 큰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라고 정의 내리지만, 말이 조금 어지러워지므로 문장을 최대한 덜 어렵게 변형했습니다.)


안셀무스 존재론적 증명(필자의 간략화 버전)

전제 1: 모든 측면에서 완전한 것은 신이다.(신의 정의)

전제 2: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더 완전한 것이다.

전제 3: 신은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

결론: "존재하지 않는 신"은 전제 1과 모순이므로 거짓이다.(즉 신은 존재한다)


3-2 괴델

존재론적 증명에 대한 많은 비판과 계승이 있는데, 그중 괴델의 현대적 계승 버전도 살펴보겠습니다. 괴델은 불완전성 정리로 유명한 논리학자인데, 그의 사후에 그가 신 존재 증명을 다뤘던 문건이 발견됐습니다.


image.png 괴델의 신 존재 증명


괴델의 증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괴델의 신 존재 증명(필자의 간략화 버전)

전제 1: 어떤 속성 P가 긍정적 속성이면, 그 부정인 not P는 긍정적 속성이 아니다.

전제 2: 만약 P가 긍정적 속성이고 P가 Q를 함축한다면, Q는 긍정적 속성이다.

전제 3: 모든 긍정적 속성을 본질적 속성으로 갖는 것은 긍정적이다.

전제 4: 필연적 존재는 긍정적이다.

결론: 모든 긍정적 속성을 본질적 속성으로 갖는 것(신)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긍정적 속성이 무엇인지 불명확하지만 신 존재 증명의 역사를 생각했을 때(그리고 전지전능한 하나님 같은 통속적인 표현을 고려했을 때), 괴델이 말하는 긍정적 속성의 예시들은 완전한 선, 완벽한 힘, 완벽한 지식 등일 것이고, 추가로 그는 "필연적 존재(=반드시 존재하다)"이 긍정적 속성임을 공리로 도입했습니다. 즉, 완전히 선하고 전지전능한 것을 신이라 하고, 이 신은 다른 모든 긍정적 속성들을 가진다고 합시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존재함"은 긍정적 속성이므로 이 속성을 가지는 신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특히 괴델의 버전에서 안셀무스의 버전과 대비하여 주목할 발전은 "필연", "가능" 같은 형이상학적 개념을 도입한 양상논리를 사용한 것입니다. 괴델의 메모를 잘 보면 Necessity(필연)은 N으로 Possibility(가능)는 M으로 표기해 놨습니다(간략화 버전에서는 이러한 표현들을 생략했습니다). 존재론적 증명을 양상논리로 다시 간략하게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양상-존재론적 증명(필자의 간략화 버전)

전제 1: 만약 신이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면, 신이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가능하다.

전제 2: 신이 존재하는 것은 가능하다.

결론 1: 신이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가능하다.(전제 1-2 전건긍정)

전제 3: 어떤 것이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양상논리 S5 체계의 공리)

결론 2: 신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결론 1-전제 3 전건긍정)


4. 양상논리학

양상논리학은 20세기 이후 발전한 논리 체계입니다. "C. I. Lewis"라는 철학자는 필연성, 가능성 등의 양상 개념을 형식 논리로 다루기 위해 양상논리 체계를 제안했습니다. 이후 솔 크립키, 데이비드 루이스 같은 철학자들에 의해 가능세계 의미론이 발전하면서 양상논리는 더욱 정교해졌습니다. 가능성, 필연성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능세계: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하나의 가능한 상태 또는 상황을 가정한 세계

가능하다: 적어도 하나의 가능세계에서 참이다.

필연적이다: 모든 가능세계에서 참이다.


이러한 양상 개념을 활용하는 것이 양상논리학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동전을 던진다고 생각해 봅시다. 동전이 앞면이 나올 수도 있고 뒷면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동전이 앞면이 나오는 것은 2+2=4처럼 반드시 성립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동전이 앞면이 나오는 것”은 가능한 것이지, 필연적인 것은 아닙니다. 양상논리학은 이처럼 가능성과 필연성 같은 개념을 논리적으로 다루는 체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 개념을 이용해 존재에 관한 논증을 전개한 것이 바로 앞에서 소개한 양상-존재론적 증명입니다.


5. 양상-존재론적 증명에 대한 생각


안셀무스나 괴델의 증명에 대한 비판들을 일일이 설명하기보다는 저의 견해를 밝히며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솔 크립키는 우리가 물=H2O가 아니라 물=xyz인 세계를 상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세계가 실제로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저는 이러한 비판에 동의하여 양상논리학이 잘못하면 너무 많은 것들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체계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선 신 존재 증명이 그러하고, 또 다른 예로 심리철학 분야에서는 차머스라는 철학자가 "철학적 좀비"라는 개념의 상상 가능성으로부터 그것의 형이상학적 가능성을 도출한 후 물리주의가 거짓임을 증명하는 논증을 펼칩니다. 저는 상상 가능한 영역과 그것이 실재하는 것의 영역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인지 불분명하다고 의심하는데, 어떤 이들은 양상논리학을 활용해 두 영역을 거침없이 연결합니다. 상상 가능성과 형이상학적 가능성을 동일시하는 방식의 논증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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