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 먹는 빵. 그 빵은 단지 밀가루와 물, 효모로 만들어진 음식이 아니다. 그 빵은 시장의 자유, 기업가의 책임, 소비자의 선택, 노동자의 땀, 자본가의 이윤추구가 복합적으로 얽혀 나온 결과물이다. 박정자 저자의 책 『우리가 빵을 먹을 수 있는 건 빵집 주인의 이기심 덕분이다』는 그 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잘 사는 나라, 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다시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사회주의 체제는 결국 인간의 자율성과 책임감을 마비시키는 체제다. 사람들은 '민중'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온갖 불합리를 정당화하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 사회주의자들은 돈을 천시하고, 이윤을 죄악시하며, 소유를 부정한다. 그러나 돈은 인간이 발명한 가장 위대한 자유의 수단 중 하나다. 개인이 자신의 노력과 능력을 통해 자원을 축적하고 활용할 수 있게 하는 통로이자, 선택의 자유를 실현하는 도구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주의적 경향에 깊이 물들어 있다. 정부는 아기부터 노인까지 현금을 쏟아내며 마치 전지전능한 존재인 양 행동한다. 그러나 그 돈은 결국 국민이 낸 세금이다. 국민의 자립성과 독립심은 약화되고, 정부의 의존성만 강화된다. 젊은이들은 자기 힘으로 길을 개척하는 대신, 수당과 지원금에 기대며 살아간다. 정부의 크기가 커질수록, 그 정부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더 많은 것을 통제하게 된다. 나눠주던 것들을 결국 다시 거둬가는 날이 오고야 만다.
벤 샤피로가 말했듯, 20세기는 사회주의의 실패를 증명한 세기다. 소련, 중국, 쿠바, 베네수엘라… 모두가 같은 길을 걸었다. 자본주의가 완벽한 체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인간의 자유와 가능성을 제약하지는 않는다.
하이에크는 『노예의 길』에서 자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자유란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이다. 그는 자유가 억압의 반대이며, 그 자유는 계획된 전체주의적 통제가 아닌 자생적인 질서 위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자유는 명령이나 통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책임 있는 선택과 행동을 보장하는 틀 안에서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하이에크에 따르면 진정한 자유는 '개인의 삶의 영역을 지키는 것'이며, 자유로운 사회란 바로 이 개인의 영역을 침해받지 않도록 하는 사회이다. 우리는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파괴하지 않기 위해 경계해야 한다. 그는 계획경제나 복지국가가 결국에는 개인의 선택권을 줄이고, 삶 전체를 국가가 규정하도록 만든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생산 수단을 국가가 독점하게 되면, 경제는 효율성과 창의력을 상실한다.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거래가 사라지면, 가격이 형성되지 않고, 무엇을 얼마나 생산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도 흐려진다. 경쟁이 없는 사회는 점점 더 형편없는 상품을 만들어내며, 국민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배급되는 물건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되면 자본의 투자도, 기술의 혁신도, 소비자의 만족도 사라진다. 경쟁을 상실한 사회는 결국 정체되고, 몰락하게 된다.
복지 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단기적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복지는 국민의 자립심을 앗아간다.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착각은, 사람들로 하여금 근육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든다. 근육이 퇴화하듯, 인간의 자립성과 노력하는 힘도 점점 사라진다. 돈을 벌 이유, 저축할 이유가 사라지면, 사람들은 소비에만 몰두하게 된다. 자산이 축적되지 않으면, 경제 성장도 불가능해지고, 빈곤은 오히려 더 고착화된다.
정치가들은 자신의 돈이 아닌 국민의 세금으로 선심을 쓴다. 그들은 하나님처럼 군림하고, 국민은 아이처럼 의존적이 되어 간다. 이런 구조 속에서 자립은 설 자리를 잃는다. 기본소득을 주면 사람들이 더 창의적으로 일할 것이라 주장하지만, 실험 결과는 다르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걷어차고 '편안한 저소득'에 안주한다. 공짜는 사람을 타락시킨다. 결국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보수적 가치의 재확인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가?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자유로운 나라, 자립하는 국민, 최소한의 것만 책임지는 국가가 있는 나라. 그런 나라가 잘 사는 나라다. 자본은 소비자의 욕구를 읽고, 그에 맞는 제품을 개발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은 더 나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 경쟁한다. 이 모든 과정이 모여 풍요로운 사회를 만든다.
공무원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는 멈춘 사회다. 반면, 소비자가 모든 것을 선택하는 사회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회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기술과 인간은 조화를 이루며 끊임없이 진화한다. 우리는 그 역동성과 가능성 위에 나라를 세워야 한다.
국가는 작아야 하고, 국민은 강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국민이 강한 국민인가? 강한 국민은 타인의 지원 없이 자신의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자립심을 지닌 사람들이다.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변화하는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끊임없이 배움을 추구한다. 강한 국민은 자기 이익만을 좇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건강한 질서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책임 있는 선택을 하는 시민이다. 자기 몫을 다하고, 남 탓보다 자기 성찰을 앞세우며, 국가는 최소한의 뒷받침만 하면 된다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다.
우리의 목표는 작은 정부, 강한 개인, 자유로운 시장이다. 그것이 바로 국부를 이루는 길이고, 우리가 진정 잘 사는 나라로 나아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