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변화 속에서 FOMO 느끼지 않기

by 둥치

00 그래서 그거 돈이 됩니까

오늘은 좀 가벼운 주제를 가져왔습니다.

제가 인스타나 스레드를 좀 하는데 요즘 스레드를 열면 매일 비슷한 종류의 글이 보입니다.


"이 AI 도구 모르면 뒤처집니다"

"오픈클로로 업무 자동화 했더니 하루 3시간 벌었습니다"

"옵시디언 + AI로 제2의 뇌 만들었습니다"

"디지털 인간 만들어서 나 대신 일 시킵니다"


새로운 무언가가 자꾸 나오니까 정말 안 써보면 뒤쳐질 거 같은 FOMO를 느낍니다. 이거에 매몰되어 매일매일 뒤처지지 않으려고 주말 내내 컴퓨터를 붙잡고 씨름한 적도 많습니다. 잠을 3시간 정도 자면서 회사에 출근하고 주말에도 거의 해 뜰 때까지 코딩하고 세팅하다 보니 문득 깨달았습니다.


"아, 이거 다 못 따라간다."

그리고 왜 FOMO를 느끼는지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도구를 알면 알수록 오히려 생산적인 활동이 늘지는 않고 도구를 살펴보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기준을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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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에 답이 안 나오면 그 도구는 지금 나한테 노이즈입니다.



01 같은 도구, 다른 결과

여러 글들을 읽어보며 느낀 점은 같은 도구인데 돈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는 겁니다. 오픈클로(OpenClo), 2025년 11월에 나온 오픈소스 AI 에이전트입니다. 60일 만에 깃허브 역대 최고 성장 기록을 깨고, 젠슨 황이 인류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라고 말했고, 개발자는 OpenAI에 영입됐습니다.

이 도구를 영업 자동화에 쓴 마케터가 있습니다. 리드가 들어오면 Slack으로 알림 → CRM에 자동 입력 → 보고서 생성까지 코딩 없이 2시간 만에 세팅했습니다. 기존에 사람이 하루 2~3시간 쓰던 일이 사라졌습니다. 줄어든 시간이 바로 보이고, 절감된 비용이 바로 보입니다. 돈이 됩니다.

같은 오픈클로를 "디지털 인간 만들기"에 쓴 사람도 있습니다. 뇌는 옵시디언, 몸은 오픈클로, 눈은 Perplexity, 입은 ChatGPT. 조립하는 과정은 재밌는데, 만들어놓고 "이걸로 뭘 하지?"가 됩니다. 돈이 안 됩니다.

스레드 자동 발행 ChatGPT + Zapier로 AI 도구 소개 글을 매일 자동 생성해서 올리고, 한 달 만에 2,500 팔로워를 모은 사례가 있습니다. 팔로워가 수익화 조건을 넘기니까 광고·제휴로 연결됐습니다. "콘텐츠 자동 생산 → 팔로워 축적 → 수익화"라는 파이프라인이 이미 있고, 거기에 AI를 끼운 겁니다. 돈이 됩니다.

같은 자동화를 "일단 팔로워부터 모으자"로 시작한 사람은 다릅니다. 수익화할 상품도 없고, 광고주와 연결될 채널도 없는데 팔로워 수만 올리고 있으면 그건 숫자 게임이지 비즈니스가 아닙니다.



02 패턴

사례를 계속 보고 내린 결론은 돈이 되는 쪽은 전부 "이미 돈을 벌고 있는 프로세스"가 먼저 있고, 거기에 AI를 끼운 겁니다. 영업 파이프라인이 있었고, 콘텐츠 수익화 구조가 있었고, 기존 비즈니스의 반복 작업이 있었습니다. AI는 그 프로세스의 특정 단계를 줄여준 것뿐입니다.

돈이 안 되는 쪽은 AI 도구부터 세팅하고 "이걸로 뭘 하지?"를 나중에 고민합니다. 도구가 아무리 좋아도 위에 올릴 프로세스가 없으면 빈 고속도로입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프로세스 → 도구이지, 도구 → 프로세스가 아닙니다.



03 기술 트레이싱의 함정

여기서 반론이 하나 나옵니다.

"나는 얼리어답터고 도구를 잘 쓰는 사람이니까, 도구를 많이 알수록 생산성이 올라가지 않나?"

맞습니다. 잘 쓰는 사람이라면 도구 하나를 알 때마다 생산성이 올라갑니다. 문제는 도구가 너무 빨리, 너무 많이 나온다는 겁니다. 오픈클로만 해도 2025년 11월에 나왔는데, 2026년 2월에 보안 취약점이 터지고, 3월에 OpenAI가 개발자를 영입하고, 지금은 기업용 래퍼까지 나왔습니다. 석 달 만에 판이 세 번 바뀌었습니다. 이걸 다 따라가면 따라가는 것 자체가 풀타임이 됩니다.

도구 수집이 취미가 되면 위험한데, 도구 추적이 취미가 되는 것도 똑같이 위험합니다. 둘 다 정작 도구를 써서 돈을 버는 시간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필요한 건 전수 조사가 아니라 필터입니다.



04 필터 만드는 법

저는 이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수집은 넓게, 판단은 좁게, 주기는 일주일.

일주일에 한 번 스레드, 레딧 등 기술 게시판에 올라온 "~~ 해봤다", "~~ 써봤다"를 일단 다 모읍니다. 과장이 많이 들어간 글이든 광고든 상관없이 다 수집합니다. 그리고 아래 체크리스트를 통과시킵니다.


1단계 — 내 파이프라인의 어디에 닿는가?

먼저 저는 제 시간을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간을 세이브해줄 수 있다면 돈을 버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지금 하고 있는 글쓰기로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주제 선정 → 리서치 → 대화하며 구조 잡기 + 글쓰기 → 이미지 → 발행/포맷팅"

새 도구를 봤을 때, 이 중 어떤 단계를 줄여주는지 생각해 봅니다.


2단계 — 대체제인가, 상위제인가, 하위호환인가?

대체제: 지금 쓰는 도구보다 같은 일을 더 잘함. 갈아탈 가치 있음.

상위제: 지금 못 하던 걸 새로 가능하게 함. 검토 가치 있음.

하위호환: 지금 쓰는 걸로 이미 되는 일. 혹은 파이프라인에 없음. 노이즈.


3단계 — 전환 비용 vs 절감 시간

도구를 배우고 세팅하는 데 드는 시간이, 앞으로 절약할 시간보다 크면 지금은 패스. 좋은 도구여도 타이밍이 안 맞으면 나중에 다시 보면 됩니다. 이 필터를 더 자세하게 적용해 봅시다. 지금 글을 쓰는 방식은 Claude와 대화하면서 인사이트를 얻고, 주제를 선별하고 글을 쓴 후 구조를 잡습니다, 이미지가 필요한 부분은 Gemini로 뽑고, 발행할 때 브랜치에 맞게 변환하고 문단을 맞춥니다.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구간은 "대화하면서 구조 잡기 + 글쓰기"입니다. 그런데 이 구간이 글의 퀄리티를 만드는 핵심이기도 합니다. 대화를 통해 "그 비유 좋은데?", "이건 이렇게 연결되네", "이 구조가 저 구조랑 같잖아"가 나오고, 그게 글의 차별점이 됩니다.

이 구간을 자동화하면 글이 나빠지고, 글이 나빠지면 여러분들이 제 글을 안 읽습니다. 여기는 줄이면 안 되는 구간입니다. 그러면 진짜 줄일 수 있는 건 대화 바깥입니다. 주제 선정 전의 트렌드 수집, 글 완성 후의 포맷 변환과 발행. 여기가 도구를 넣을 자리입니다.

이 필터를 적용하면 판단이 바로 됩니다.


"옵시디언으로 제2의 뇌 만들기"

→ 내 파이프라인 어디에 닿는가?

→ 안 닿음

→ 노이즈


"OOO으로 글 자동 포맷팅"

→ 내 파이프라인 어디에 닿는가?

→ 발행/포맷팅 단계

→ 대체제인가? → 지금 수동으로 하고 있으니 상위제

→ 전환 비용은? → 검토 가치 있음



05 마무리

AI 도구는 계속 쏟아지고 아마 내일도 "이거 안 쓰면 뒤처집니다"가 올라올 겁니다. 근데 좋은 기술이어도 내 돈에 안 닿으면 지금은 노이즈입니다. 과감하게 넘기면 됩니다. 그 도구가 나빠서가 아니라, 지금 내 프로세스에 필요하지 않을 뿐입니다. 모든 도구를 다 쓸 수는 없습니다. 도구든 시간이든 잘하는 곳에 집중해야 합니다. 전부 따라가느라 정작 돈을 버는 시간이 사라지면, 그게 진짜 뒤처지는 겁니다.

※ 썸네일 이미지: JTBC 〈재벌집 막내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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