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냐면요
첫째로 글을 쓰고자 하는 의지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습니다. 아버지는 왕년에 이름 날렸던 문예부 출신으로 지금도 종종 지인들의 이름으로 시를 지어 선물하곤 하십니다. 비록 토끼... 아니 치와와 같은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영어 선생님이 되셨지만요. 아버지의 시인 DNA 덕분인지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독후감으로 문화상품권을 획득하는 쏠쏠한 이익을 얻었습니다.
두 번째로 글의 재료는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께 선물 받았습니다. 무엇이든 결과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투입물인 재료가 필요합니다.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것을 읽어야 쓸 수 있지요. 담임선생님의 방과후는 특별했습니다. 입시가 중요한 고3에게 수능 한 문제를 더 맞힐 수 있는 '문학 문제 뽀개기'가 아니라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을 뜻하는 말인 사유(思惟)를 할 수 있는 '현대문학 읽기'를 개장하셨거든요. ≪회색인간≫, ≪갑을고시원 체류기≫ 등을 발췌해 질문을 만들어 상상력과 추론능력을 키워주셨어요. 그때 작성했던 학습지들을 보물처럼 모아두었는데 이사를 다니며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이때의 자료들이 있다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미련이 자꾸 들 때마다 프란츠 카프카의 명언을 떠올리고 있어요. "네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아마 대부분 잃어버리게 될 테지. 하지만 결국 사랑은 다른 형태로 돌아오게 될 거야. (Everything you love will probably be lost, but in the end, love will return in another way.)" 예, 이 문장을 보고 반해서 최근 다시 책을 읽게 되었어요. 달팽이처럼 느려 터졌지만 한 자 한 자 꼼꼼히 읽으니 학교의 종소리와 글을 읽으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구름처럼 두둥실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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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와서는 전공과 별개의 글을 쓰고자 신문사에 입사했습니다. 글을 쓰는 능력을 기를 수 있으면서도 돈을 번다니, 이보다 더 효율적인 근로장학이 있을까요? 내 글이 종이로 실린다는 사실은 큰 만족감을 주었습니다. 사수들로부터 글의 흐름을 잣는 법, 양식에 맞춘 정석적인 글을 쓰는 법을 배우는 것도 퍽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3년쯤 지나니 오직 돈을 위해 글을 쓰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다 사건이 발생했죠.
대망의 마지막. 글을 쓰고자 하는 고약한 동기는 최근 선배로부터 받았습니다. 개그 스승 언니가 연재하는 블로그를 보고 자꾸만 웃음이 새어 '언젠가 나도 나만의 글을 써야지!' 하는 다짐을 했습니다. 이 언젠가를 억지로 정해줘 버린 것은 평소 참견쟁이 선배의 한마디였습니다. 교수님이 보내주신 글을 기사의 양식에 맞게 정리하고 있던 날. 지나가면서 그분은 "기레기네, 이 말 기분 나쁜 거 아니지?"라는 화살을 쏘시더라고요. 그래요, 이 말에 저는 정말 긁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보니 '긁'과 '글'은 자음 한글자 차이로 매우 닮았네요. 무언가라도 당장 써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습니다. 분노의 방향을 틀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선배님, 참으로 고오맙습니다.
그때부터 글을 쓰는 플랫폼을 뒤지기 시작했어요. 2015년 '우리는 좋은 글이 가지는 힘을 믿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했다는 브런치. 이 모토는 저를 낚아 올렸습니다. 당시 신문사에서 작성했던 펜소리와 함께 앞으로 적을 글들의 목차를 보내니 생각보다도 빠르게 '작가'라는 칭호를 수여받았습니다. 자격증 불합격으로 침울해 있었는데 부정적인 감정을 도움닫기 하듯 행복이 더 커졌습니다. 저에게 글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브런치팀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개 숙여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글을 쓰고 싶긴 한데 무슨 주제의 글을 적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역시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저의 가까이 있는 것을 소재로 삼아야 글이 제일 잘 나오겠지요? 저는 먹는 걸 제일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이런 음식과 관련된 에세이는 이미 수없이 많아요. 차별점이 되면서도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이 때 제 눈에 들어오는 것이 편의점에서 혼자 밥을 먹으며 핸드폰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아! 밥먹는 짧은 순간에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들을 재잘재잘 풀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만난 사람들과 음식을 추억으로 엮은 '밥친구'라는 글을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제 글이 삶의 낙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저만큼 하찮은 이유로 글을 쓰게 된 사람이 또 있을까요? 있다면 함께하여 위로를 얻고 싶습니다. 글을 쓰는 행위란 이토록 어렵고 천진하고 고뇌를 하게 만드네요. 글을 쓰면서도 '완전 MZ글이네, M: 모자라고 Z: 조잡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좋은 글'로 가기 위해 일단은 글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것부터 시작해 보려고요. 일단 무작정 활자를 누르고 있습니다. 이런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사랑합니다. 요즘 이 알림을 보는 재미로 살고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앞으로도 열심히 써보도록 할게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