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딸에게(수필과 시)
맛있는 초간단 유부초밥
입맛 없는 바쁜 아침, 새초롬 달코롬 유부초밥은 밥 안 먹으려는 아이들 입속에 쏙 넣어주기에 좋다. 평소 잘 안 먹는 야채도 감쪽같이 먹일 수 있도록 고슬고슬하고 따끈한 밥에 야채 가루를 솔솔 뿌리고 고소한 참기름도 골고루 섞은 후, 한입에 쏙 들어가도록 말랑말랑 얇은 유부 안에 넣으면 한 끼 식사로 훌륭하다.
너무 크지 않은 유부에 적당한 양의 밥을 꾹꾹 눌러 알맞게 만들어야만 가냘픈 유부가 터지지 않아서 먹기에 좋다. 아이들에게 많이 먹이고 싶은 욕심에 밥양을 조금이라도 과하게 넣거나 영양을 높이려 밥과 야채 가루 비율을 맞추지 않으면, 입맛 예민한 아이들은 한두 개 먹고 외면해버린다.
사랑하는 친정 어머니
어느덧 고희의 연세가 된 어머니는 여전히 딸만 보면 마음이 안 놓이는지 “눈 나빠지지 않게 책 좀 적당히 봐라.”, “안 먹어서 살이 더 빠진 것 같다.”, “아이들에게 인스턴트는 먹이지 마라” 말을 아낌없이 한다.
어머니는 수많은 말을 해주지만, 밥알이 삐죽삐죽 밖으로 튀어나온 유부초밥 같아서 내 마음 안에서 밀어내버린다. 건강이 안 좋아진 후 유난히도 많아진 어머니의 말밥에 속이 얹히는 것 같았고, 아버지도 심하다고 생각했는지 꼰대 좀 그만 부리라 한다.
친정어머니가 만든 유부초밥
아버지 핀잔에 섭섭했는지 어머니는 건강관리에 소홀했던 지난날이 후회된다며 사랑하는 딸에게 건강에 대한 불안감과 소중함을 애절히 호소한다. “너도 엄마처럼 아플까 봐 그렇지” 이 말 한마디는 폭신하고 부드러운 이불 유부처럼 따스하고, 단촛물처럼 달달하고 시큼하게 가슴을 자극한다. 어머니의 진심이 느껴지는 짧은 말 한마디가 입안에 쏙 들어가자, 오물오물 꼬오옥 씹어 잘 넘어가 허기진 마음이 감사와 사랑으로 어느덧 든든해진다. 건강을 회복하기까지 힘들었기에 가장 눈에 밟히는 딸을 보기만 하면 걱정하는 엄마의 본심이 헤아려진다.
사춘기 앓이
북한 공비도 무서워한다는 중학교 2학년 둘째 딸은 야행성 생활 습관이 있어 근심거리다. 항상 문을 잠그고 있어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가끔 호흡은 하는지 궁금하여 문을 두드려보기도 한다. 양치를 안 하면 치아 교정을 하고 있어서 충치가 심해지지 않을까, 성장 호르몬이 나오는 시간에 잠을 자지 않아 키 성장이 더딜까 염려된다. 배가 아무리 고파도 과일과 야채는 먹지 않고 편의점에서 라면과 삼각김밥만 사 먹는다. 유트브도 시청 시간도 많고, 자세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학교 숙제는 제대로 해가는지 모르겠다.
엄마의 지혜
딸은 항상 문을 잠그고 있어서 방 안에서 나올 때만 대화가 가능하다. 잠긴 문은 급한 일이 있을 때는 화를 나게도 하지만 사춘기 아이에 대한 예의를 지키게 해준다. 방이 돼지우처처럼 지저분하여 마음의 준비 없이 들어간다면 감정이 격양될 수도 있다. 아이가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는 동안 머릿속에 많은 말들을 정리한다. 꼭 필요한 말만 아이에게 잘 전달하여 마음을 움직일만한 방법을 연구할 시간을 확보해준다.
사랑의 유부초밥 만들기
심지어 방 안에서 나오면 반갑기까지 하여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하고, 어쩌다 방안이 생각보다 더럽지 않으면 대견하기까지 하다. 자정이 넘어가도 씻을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잔소리보다는 신중하게 생각하여 짧고 간결한 카톡을 보내주어 씻도록 마음의 준비를 시켜준다. 유부초밥 안에 박힌 알록달록 고소한 깨처럼 사랑의 깨알 같은 이모티콘도 잊지 않으면, 아이는 씻을 시간을 스스로 지정하여 재밌다는 듯 ‘ㅋㅋ’로 화답해주며 약속을 지킨다.
항상 믿음 상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 할 때의 일이다. 가족은 축하해주기 위해 예쁜 꽃다발을 들고 교실에 갔다. 졸업 행사가 차례대로 진행되고, 마지막에는 졸업생이 부모에게 드리는 상장을 수여하는 독특한 순서가 있었다. 상장의 제목과 내용을 학생이 직접 창작한 부분이 특별했다. 대부분 학생은 감사상이라는 제목으로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으로 상장을 만들어서 부모에게 주었다.
쑥스럽고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온 아이는 또렷한 목소리로 읽으며 상장을 내밀었다. 상장 제목은 [항상 믿음 상], ‘항상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으시고, 제 마음대로 하게해주시고, 제 선택을 이해하고 존중해주셨기에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가득 담아 이 상장을 드립니다.’
순간 진지하게 물었다. 진심이냐고. 아이는 진심이라며 웃으며 도망치듯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유부초밥이 영양이 높은 이유
철없는 사춘기 아이로만 생각했는데, 부모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이 대견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최대한 말을 아끼고 아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짧은 한마디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엄마의 의중을 알고 있는듯하다.
작은 유부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밥알이 들어간다. 영양 가득한 유부초밥처럼 아이가 주는 ‘항상 믿음 상장’도 아이의 모든 마음을 알게 하는 짧고 힘 있는 말이었다.
돼지우리 같은 딸의 방을 보며 시 한 편을 적으며 딸과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본다.
방이 돼지우리라도 좋다
굴속에서 고민과 슬픔의 성장통을 겪으며 잘 자랐기에
방이 돼지우리라도 좋다
굴속에서 너만의 성을 쌓고 있으니 언젠가 완성되어
너에게 묻겠지
엄마의 마음을 헤아릴만큼 성숙해진 것 같냐고
방이 돼지우리라도 좋다
이제는 너를 키워
꿈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보라고
작아져가는 침대가 말하겠지
돼지우리같은 방을 보면서도
화나지 않는 엄마의 마음은 무엇일까
부드러운 카스테라를 여유있게 먹으며 생각해본다
사춘기 소녀만의 이유가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