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학과 과학,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2025년 6월 29일 약 오후 3시경.
브런치 연재 3화
오늘의 주제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역학과 과학,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이상향의 방향성.
이것을 주제로 글을 시작해 보려 합니다.
1. 왜 ‘역학’과 ‘과학’인가
제가 ‘역학’과 ‘과학’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단순한 관심이 아닙니다.
모든 말, 논리, 의견 속에 반드시 ‘사실’과 ‘분명성’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의견을 말합니다. 하지만 그 의견에 과학적 근거와 논리가 붙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생각을 넘은 ‘이론’ 혹은 ‘방정식’**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과학이고, 철학이며, 종교이고 예술이며, 결국은 인간의 삶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런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외면합니다.
왜일까요?
진실은 때때로 고통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진실이 기쁨과 해방일 수 있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을 부정해야 하는 고통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2. 그래서 우리는 게임을 배운다
그래서 우리는 어릴 적부터 게임을 통해 고통을 배우고, 패배를 받아들이는 법을 익힙니다.
바둑, 장기, 체스, 카드게임 등. 그것들은 단순한 놀이가 아닙니다.
삶을 이해하는 도구입니다.
저는 바둑과 복싱을 통해 그것을 배웠습니다.
• 초등학교 때 바둑을 약 2년간 배웠고,
• 2016년 중학생 당시 단 3개월간 연습해서 대전 생활체육대회 복싱 중등부 85kg 미만 은메달을 수상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단순한 게임이나 운동이 아닙니다.
고통을 마주하고, 패배를 수용하며, 승리를 끌어내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경험들을 통해 삶의 수많은 게임들을, 이기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경제, 사회, 법률적 영역으로 확장시키고자 합니다.
3. 우리는 결국 입자일 뿐이다
결국 우리는 ‘입자’, 즉 과학의 지배를 받는 존재입니다.
이건 부정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진실이며, 과학의 언어입니다.
양자역학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경우라는 바닷속, 무수한 가능성 중 단 하나.”
우리가 잉태되고 태어나 삶을 살고 죽는 과정 역시, 수많은 확률 중 하나의 경우일 뿐이라는 해석입니다.
• 예술은 이를 ‘희극’과 ‘비극’이라 말하고,
• 종교는 ‘구원’ 혹은 ‘죄악’이라 부르며,
• 철학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이미 이런 진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단지 인지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4. 나는 이것을 체계화하고 싶다
저는 이 모든 개념들을 정리하고, 요소 화하며, 시각화하고,
나아가 활용 가능한 형태로 구체화하고자 합니다.
왜냐고요?
저는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꿈에는,
현실적으로 돈이 필수적입니다.
이것은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 보편적인 진리입니다.
5. 오만하다는 말, 이미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오만하고 교만한 자가 또다시 세상을 어지럽힌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는 그렇게 십자가에 달렸고,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시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들이 원했던 게 정말 그런 죽음이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끝’만이, 그들을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 있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맞았다는 사실은 점점 더 명확해졌습니다.
6. 나는 다시 묻고 싶다
왜 무지함을 선택합니까?
왜 생각하지 않습니까?
궁금하지 않다고 해서
진실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모든 진실과 정답은 어쩌면 신만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저 손을 놓고 있어야 할까요?
아니죠.
우리는 붙잡아야 하고, 이겨야 합니다.
저는 그 방법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 느낍니다.
갈 길은 멀지만,
그 끝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7. 이젠 함께 이기자
포기하지 않으면
진실은 반드시 드러납니다.
분명하고, 분명하게.
이제는 함께 이겼으면 합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지.
그리고
아픔도, 고통도,
불쾌함도, 기쁨도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우리는 신은 아니지만,
신에 가까워지는 여정에 설 수는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저의 세례명,
‘미카엘(Michael)’의 뜻입니다.
“누가 하느님 같으랴.”
다르게 말하면,
“누가 정답을 알 수 있을까?”
우리는 정답을 모르지만,
그 정답에 가까워지는 과정이 바로 삶이고, 아름다움입니다.
8. 끝맺으며
지금 여러분이 입고 있는 옷,
살고 있는 집,
쓰고 있는 휴대폰, 전자기기, 전등, 냉장고, 에어컨…
모두 누군가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도전’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입니다.
그 노력과 열정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돌을 굴리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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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저도 그 열정의 일부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그 과정에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함께 이겨냅시다.
감사합니다 Hm 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