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7월.
경남 진주에서 방송기자로
첫 직장생활을 했다.
기자의 생명은 기동력.
군대에서 장교생활을 하며
시나브로 모은
다소간의 목돈으로
생애 첫 신차를 만났다.
차 안에 좌석을 모두 젖혀
8등신 모델이 시원스레 눕는,
당시만 해도
파격적인 콘셉트의
9인승 SUV에 빛나는
현대 트라제 xg였다.
경남 37다 8800.
기자니까
'팔팔하게' 뛰어다녀라고
동창 녀석이
매력적인 넘버까지 뽑아줬다.
나는 '팔팔이'로 명명한
이 친구를 타고
진주 사천 남해 하동 산청 함양,
취재 권역인 서부경남 곳곳을
누비고 또 누볐다.
정말이지 그땐
치열한 나날의 연속이었던
20대 열혈 기자의
피와 땀이 진하게 서렸을 거다.
일도 일이었지만
내 소중한 친구들을,
우리 식구와 친지들을,
일본 펜팔 할아버지 할머니 가족과
중국 명문가 출신의 소공자 같은~
인연 중 인연들을
부지런히 태우고 다니며
다시없을지 모를
추억의 파노라마를
수없이 만들었다.
그렇게 '팔팔이'는
2006년 초가을
멋들어진 웨딩카로 扮했고
2008년 늦가을엔
첫 아이의,
2011년 한가을엔
둘째 아이의,
세상 밖 요람이 되기도 했다.
이 친구는
내가 지금의 회사로 이적하며
부산에 새 둥지를 틀던
2012년 그 변곡점 시절에도
변함없이 날 이끌었다.
그리고 그 역시,
61수 2279(둘둘 친구)로
이름표를 바꿔 달았었다.
금강산이 지척인 고성 통일전망대,
강릉 속초 양양 삼척의 동해안,
설악산 치악산 지리산,
춘천 소양강과 정선 태백 영월 평창 대관령,
수도 서울과 수원 용인 과천,
도담삼봉과 온달 평강의 단양,
문경새재와 첨성대 안압지 불국사의 경주,
여수 순천 광양과 거제 통영, 울산, 부산까지
쉼 없이 거침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누적 주행거리 24만 km.
때때로 곤한 나를 위해
침실이 되어주던 그 아늑함도
결코 잊을 수 없다.
'받힌' 적은 있어도
'받은' 사고는 전무한
안전제일 차량이기도 하다.
언젠가 빙판길에서 속도를 줄이지 못한 채
그대로 미끄러지는 바람에
'큰 일 났다' 싶었는데
진짜 신기하게도
앞차와 딱 한 뼘 차이로 멈춰 선,
불가사의한 기억이 있다.
아내보다도 더 오래된 이 친구.
최근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다.
핸들이 잘 안 돌아가는가 하면
군데군데 삐걱거리는 소음이
갈수록 심해졌다.
'5등급 노후 경유차량'이라는
눈총까지 받아야 했다.
결국 오늘 아침, 그를 떠나보냈다.
고물 자동차 하나 폐차시키는데
뭐 그리 호들갑이냐 말할 수도 있겠다만
이 친구는 특별했고 각별했다.
옛날로 치면 분명 千里駿馬였을 터라
가슴이 몹시 시리고 아렸다.
말 못 할 미생의 고독과 애환을
늘 곁에서 말없이 지켜보고
묵묵히 들어주던 동반자.
애잔한 마음으로
영원히 그댈 그리워하리라.
"헤어짐에 대하여, 감사함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