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에 오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생의 3분지 1을
여기서 보냈기 때문일까요?
굽이도는 남강처럼
내 마음도 따라 돕니다.
촉석루는 여전히
쓸쓸하면서도 고고합니다.
진주성은 갑자기 부는
북서풍을 오롯이 견뎌냅니다.
그래서 논개의 쌍가락지는
오히려 더 반짝입니다.
여기는 예로부터
백척간두 모진 풍파를 겪은 곳.
허나 억척스러우면서,
늘 유려했던 역사의 고도입니다.
옛말에 조선 인재의 절반은
영남에서 나오고,
영남 인재의 절반은
진주에서 나온다 했습니다.
북평양 남진주라고도
했습니다.
요즘 말로 연예인이 모여 살던
권번의 고장입니다.
'백정도 사람이다' 형평운동에다
기생 걸인 만세운동의
본향이기도 합니다.
뒤벼리를 따라 도동 초입을,
다시 남강다리목을 거쳐 천수교까지
걷고 또 걸었습니다.
온기를 품은 햇살이
구름 뒤로 숨어버린 덕에
진주의 운치는 배가됐습니다.
풋풋했지만 서글펐던
모순된 시절의 기억들이
서장대 성루에 꽂힌
깃발마냥 펄럭이는 건 왜일까요?
그렇기에 이곳 진주에 오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묘한 감정이 늘 요동칩니다.
강물은 저렇게나 잔잔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