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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위의청년학교 Oct 04. 2024

안전한 관계의 공간은 어디일까?

정건희 교장(길위의청년학교)

이 땅에 천국


오래전 청소년들과 활동할 때의 사진을 찾았다. 회관에서 무박 캠프하고 새벽에 월명산에 올라 수시탑 앞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당시 캠프 한다면서 식사는 집에서 김치와 쌀을 가져와서 밥을 했고 자원봉사로 도와주던 동민 선생님과 청소년들이 카레를 만들어서 청소년들과 함께 먹었다.


프로그램은 청소년들이 원하는 데로 기획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늦은 밤에 옥상 올라가서 한 사람씩 작은 불꽃을 켜고 모두 탈 때까지 자신의 속 이야기를 나누었고, 담력 테스트한다면서 피가 묻은 칼이 있다고 전설처럼 내려오던 건물 지하실 다녀오는 활동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도 않는 프로그램이었다.


무박 캠프 기획할 때 옥상에서 별빛 받으며 서로 속 이야기 나누면서 조용하게 서로를 위로하는 상상을 했지만, 현실에서는 내가 화를 내고 있었다. 앞에서 반짝이 불꽃 피우면서 이야기하는 청소년도 장난을 치기 실수였고 나머지 앉아 있던 청소년들은 키득거리고 있었다. 12시가 넘은 밤에 구도심 한가운데 있는 오래된 건물(당시 활동 회관)의 옥상에서 큰 소리 내면 주민의 항의가 들어왔다. 지하실 다녀오다가 놀라게 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울다 웃기를 반복한 활동이었다. 그리고 새벽이 되면 3, 40여 명의 청소년을 데리고 월명산에 있는 수시탑까지 걸어갔다.



기타를 치는 청소년이 있어서 찬양도 하고 일요일 새벽에 청소년들을 위해서 잠시 기도해 주던 때였다. 청소년 대부분은 교회도 안 다니고 신앙도 없었다. 당시 내가 왜 그렇게 활동했는지 모르지만, 그때는 그랬다. 청소년들은 뭐가 좋았는지 그렇게 즐거워하던 때가 있었다.


충청지역에 100년 된 큰 교회에 오후 예배 강사로 초청받았다. 지난해 충북 지역에 청소년지도사, 상담사 선생님들 대상으로 매월 강의했었는데 수강생 중 한 분이 부탁했다. 교회학교를 잘하고 싶다면서 전문가 이야기를 성도분들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가게 됐다. 교회 강의여서 이전에 신앙 관점에서 활동했던 사례를 몇 가지 찾아보다가 찾은 사진을 보다가 오래전 청소년들과 좌충우돌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 무슨 마음이 있었는지 직장 그만두고 그렇게 정신없이 청소년 만나면서 활동했었다. 신앙 때문에 삶을 걸고 시작한 활동이었는데 시간이 가면서 교회 사역에 대한 내 안의 부족함과 회의가 커졌다. 신학적 사유 비슷한 것을 하며 어쭙잖은 공부 하면서 알게 된 게 너무 많았다. 와이가 기독교단체에서 직간접적으로 지역 교계의 어른들도 많이 알게 되었고 내밀한 그들의 모습도 조금씩 직접 경험하게 되었다.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청소년들에 의해서 즐거움도 있었지만 힘겨움도 동시에 커져갔다.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당시의 경험이 현재의 달그락과 같이 청소년 중심으로 이웃이 함께하는 공동체적 활동을 기획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준 것이다.


신앙은 가슴으로 체화되어 삶으로 살아 내지 않으면 빈껍데기만 남는 이상한 모양새가 된다. 누구도 존중하지 않고 다가오려 하지 않는 그들만의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공동체라는 말을 하기도 버겁다. 그들 안에 신앙으로 모였다고 우기는 사람들조차 그들만의 의지에 관계없이 가스라이팅 당하듯 두려움을 가지고서 세상 가운데 욕망이 범벅이 된 이상한 신념을 기준으로 살게 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교회에 청소년이 없다는 이야기를 오랜 시간 하고 있지만 특별히 변한 것은 없다. 그저 매번 젊은이들이 떠나고 없다는 이야기만 반복하면서 세속화된 세상 탓으로 돌리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 탓이 아니다. 중·고교에서 교회 다닌다고 하면 이상하게 볼 정도가 되어 버린 문화를 만들어 낸 나와 같은 개신교인들 삶의 문제다. 본질은 거기에 있다.


목사님, 신부님 등 종교인들 만날 때의 강연은 이전에 내가 선교라고 믿고 진행했던 여러 일들 가운데에 왜 ‘달그락’과 같은 지역 중심의 자치 공간을 기획하고 만들어 가게 되었는지가 초점이 된다. 달그락은 작지만 강하고 공동체적 성격이 강한 청소년 공간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개척교회 하듯이 사람 수 연연하지 않고 당사자의 삶과 지역사회의 긍정적 변화에 집중하며 따뜻하게 연결된 공동체와 네트워크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하지 않아도 만나면 미소가 나오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곳. 슬플 때 함께 슬퍼하며, 기쁠 때 같이 기뻐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관계하는 공간이다. 정책적으로도 전문화 되어 사회를 구체적으로 바꾸어 낼 수 있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곳이다. 당사자인 청소년이 중심이 되어 교육, 상담 등의 대상화로 치부하는 곳이 아닌 그들도 삶의 주인으로 참여하고, 꿈꾸는 사회를 위해서 주체로서 삶을 살아 내는 공간이다. 만나는 모든 이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받으며 신뢰하는 관계의 공간. 


내가 꿈꾸는 이 땅의 천국이다.



출산율 높이기 위한 청년정책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 정부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100조가 넘는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출산율은 전 세계 꼴찌다. 최근 자주 듣는 이야기가 출산율에 따른 대한민국 소멸이다. 매번 출산율 저하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원인이 있는데 너무 많이 들어 식상 할 정도다. 청년층의 취업난, 교육비 부담, 월급 모아 사기 어려운 아파트 가격, 복지 문제와 경단녀와 여성차별 등으로 집약된다. 거기에 청년의 절망 시대라고 일컫는 사회적 분위기를 대부분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대부분 공감하는 문제로 읽히지만 몇 가지 고려해 볼 문제가 있다. 이게 모두 돈과 취업, 차별의 문제에서만 기인했을까? 그 대안을 무조건 취·창업에만 목을 매는 게 올바른 대안인가? 


우리는 전쟁을 겪었고 이후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는커녕 100달러도 넘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에도 출산율은 매우 높았고, 독재와 쿠데타가 있었으며 경제와 제도가 엉망일 때도 사랑했고 아이는 낳았다. 현재 OECD 국가 중에 1인 가구 싱글이 가장 많은 나라는 복지도 잘 되어 있고 먹고 살만한 환경이 된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돈도 중요하지만, 사람은 돈만으로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럼 무엇이 중요할까? 


앞에서 일반적으로 문제로 하고 있는 취업난, 교육비, 집값, 복지정책, 차별 등 해결해야 할 일들 많고 공감이 되는 지적이다. 다만 이러한 문제 해결과 함께 공동체적 인간관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어디에 살고 있건 존재하는 공간에 사람들의 관계가 소중해 보인다. 사람은 그 어디서든 ‘정’을 나누고 ‘신뢰’하는 마음으로 함께 할 때 즐겁고 힘이 난다. 가장 힘겨운 일은 같이 붙어 있는데도 ‘혼자’일 때다. 자칫 그 공간은 지옥이 된다. 어디에 존재해도 함께 하는 삶. 따로 또 같이 있을 수 있는 공간. 공동체이고 관계가 살아 있는 공간이다.


청년이 그리고 우리가 존재하는 마을에 서로 신뢰하고 정이 흐르며 사랑하는 관계가 일어났으면 좋겠다. 특히 청소년 청년들이 함께하는 곳은 더욱 그러한 공간이 필요해 보인다. 온, 오프라인을 나누어 설명하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다. 


내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요즘 전국에 수많은 이들 만나면서 깨닫는 것은 온오프라인 어디에서든 어떻게 관계하는지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인간관계가 형성된다. 중요한 것은 내가 타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존중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에 있다. 타자가 잘 되기를 바라는 선한 마음이 요체다.


사회적 가치 실현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내 안에서 타자를 향해서 눈과 손이 밖으로 뻗어나가야 한다는 것. 정이 흐르는 관계가 살아 있는 공간이다. 그 어디든 따뜻한 공동체가 되기 마련이다.


이런 이야기 하면 분명 청년의 삶과 아이 출산과 무슨 관계냐며 헛(?)소리 그만하라는 이들. 인구정책, 청년 지원 정책에서 현실적이지도 않은 이런 귀신 씻나락 까먹는 대안은 그만하라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지금 청년취업난 때문에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공동체 운운하느냐고?


몇 년 전 청년정책 연구할 때 서울에서 귀향한 청년들과 인터뷰했었다. 당시 가장 큰 이유는 ‘안정성’이었다. 고향에는 부모님이 계시고 사회적으로 실패해도 존중해 줄 수 있는 친구나 지인이 있다는 관계의 공간을 고향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안정성은 공무원, 공사 취업해서 꾸준히 월급 나오고 연금 나오는 직업을 뜻하지 않았다. 치열한 경쟁에서 힘들어했고, 그곳에서 외로움은 극에 달한 청년들이 의외로 많았다. 연구 결과 취업을 하는 청년들 중 커뮤니티에 소속되어 활동을 이어가는 이들이 많았으며 미취업 하면서 삶의 질이 떨어지는 청년들은 커뮤니티가 없거나 활동이 미약한 경우도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나와 같은 현장에 청소년, 청년을 연구하고 활동하는 사람만 아는 내용이 아니다. 외로움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과 친밀하게 지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주는 조사는 의외로 너무 많다. 조현은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에서 “하버드대학이 1938년부터 79년간 724명의 삶을 추적 연구해 인가의 육체적·정신적 건강과 행복이 인간관계의 친밀감에 달려 있음을 밝혀냈다고 설명한다. 이 연구에 따르면 삶을 가장 윤택하게 만드는 것은 좋은 인간관계이고, 사람을 죽음에 내모는 것은 외로움이었다. 4번째 연구책임자였던 윌딩거 박사는 ‘가족과 친구, 공동체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영위했다’라며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은 건강했고, 더 장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조직 생활이나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외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며 ‘외로움은 흡연이나 알코올중독만큼 강력하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친구의 숫자보다 친밀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옆에 누군가 있다 하더라도 앙숙처럼 다투며 고통을 주고받는 당사자끼리 함께 있는 것은 따로 있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뜻한다. 주변인과 갈등 속에서 생활하거나 외롭게 산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고통인지 잘 알려주는 연구다. 심지어 영국은 체육·시민사회장관을 ‘외로움’ 담당 장관으로 겸직 임명할 정도가 되었다.


청년들에게 자본주의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가 집중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 중 하나가 ‘공동체’에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단편적인 예다.



그래서 존재하는 달그락과 길청


청소년, 청년들의 인간다운 삶, 그들이 속을 나누고 위로하고 기대며 서로를 위할 수 있는 공간,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학교는 길이다. 스승은 길 위에 있다. 학생에 걸을 수 있는 수준의 길 위에서 함께 한다. 전국에 훌륭한 스승을 만나고 배움을 청한다.” 길위의청년학교 모토다. 배움의 이유도 길 위에 있었다. 각자의 자기 가치에 맞는 삶을 살아 내면서 조금은 이 사회가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기를 바란다. 그 중심에 청소년이 있었고 청년이 함께한다.


길청 6기 졸업식(정건희, 박경미, 이강휴)


길위의청년학교(이하 길청) 6기 신입생 오티와 입학식 그리고 첫 졸업식을 진행했다. 이강휴 이사장님과 함께 박경미 소장님께 졸업장을 드렸다. 가슴이 뭉클했다. 수도권에서 살다가 몇 년 전 정읍으로 내려온 박경미 소장님. 길청 4기 합류 후 수료하고 지난해부터 정읍에 달그락 공간을 만들어 냈고 최선을 다해 활동 중이다.


삶을 걸고 꿈꾸는 일을 만들어 가는 사람을 만나면 좋다. 길청 졸업을 위해서는 자립해야 한다. 6기까지 오면서 첫 졸업식이다. 1기에 한 분 더 자립했으나 상황상 졸업식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어진 6기 선생님들의 길청 오티와 입학식이 이어졌다. 선배인 이재명, 하태호, 박경미 세 분이 길청에서 자신들이 배우고 변화된 내용에 대해서 안내해 주었다.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1년여 공부하고 함께 하면서 ‘삶은 자신이 의미부여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분이 계셨다. 


‘청소년관’이 바뀌었고 ‘함께’하는 활동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가슴 속 이야기할 수 있는 신뢰하는 동료와 선후배가 생겼다는 등의 이야기를 후배들에게 안내해 줬다. 한 분은 길청을 통해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



6기 청년들이 활동하는 곳은 서울부터 부산, 충북, 파주, 단양, 당진, 익산 등 전국이다. 각자의 현장이 있는 청소년 관련 전문가들인데 군산에 모여 자기 삶을 나눈다. 자발적으로 1년여간 조금은 빡센 공부와 활동을 함께 하기 위해서다.


수업료 받지 않고서 운영을 위한 어떤 사업을 하지 않아도 ‘길위의청년학교’는 매년 운영이 되고 있고, 이곳을 수료한 대부분의 청년들이 자기 변화를 고백하고 있다. 더 열심을 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10여 명의 청년들, 어떤 이상과 가치를 붙잡고 삶을 잘 살아 내려고 하는 친구들이 매해 일 년여 동안 계속해서 모이고 학습하고 자기 고민과 현장의 삶을 나누면서 만들어 가는 공동체에서 함께 한다는 것은 나에게도 복이다. 그곳에 사명을 가지고 함께 하면서 삶을 내어 주고 있는 이사님들과 후원자들에게도 배움이 있다. 더불어 만나는 길 위의 여러 스승에게도 감사함이 크다.


달그락과 같은 자치 공간을 만들도록 함께 하는 전 단계로서 길청은 소중한 공간이다. 소수 자립해서 자치공간을 만들어 가기도 하고, 현장에서 자신이 활동하는 기관(공간)을 중심으로 달그락과 같이 청소년이 중심이 되고 지역사회가 이들과 연결되어 함께 변화를 일구는 공동체가 되도록 노력한다. 일 년여 활동하면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동료를 만나게 된다.


우리가 실천하는 청소년, 청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은 단순하다. 지역 시민들이 자기 삶의 공간에서 살아 내면서 느슨하게 또는 강하게 연결되어 청소년들의 ‘비빌언덕’이 되어 주는 일이다. 청소년들은 교육, 복지의 대상만이 아닌 사회에서 기여할 수 있는 ‘시민으로서의 삶’을 살도록 돕는다. 달그락의 주요한 활동이다. 그 가운데 ‘길청’에서는 사회적 가치가 실현되는 공동체를 꿈꾸고 현실에서 활동할 수 있는 현장 활동가와 연구자를 키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이들은 청소년도 청년도 우리의 모든 이웃이 ‘안전한 관계의 공간’을 함께 만들고 정을 나누고 삶을 살아 내는 마을이 되도록 연결하면서 함께 하는 ‘활동’을 진행한다. 그 과정에 ‘청소년자치공간 달그락달그락’이 마을 안에 있고, 그 옆에 길위의청년학교가 함께 하고 있다.


언제나 사회는 밀알같이 작고 작은 변방의 민초들에 의해서 변화의 단초가 제공되었음을 안다. 사람들이 안전한 관계의 공간을 형성하고 설계하며 이 땅에서 실천되는 그 시작이 이곳이라는 것. 벌써 9년째 달그락은 달그락거리고 있고 길 위의 청년들은 관계의 공간을 여러 마을에서 만들어 가고 있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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