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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 May 23. 2022

#10.키오스크, 너는 누구?

“어서오세요!”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들리던 인사말은 이제 듣기 힘들다. ‘딸랑’거리는 종소리만 손님을 맞는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다 순간 멈칫한다. ‘오픈 한 거 맞나?’ 아무 반응이 없는 곳에 들어가는 일은 아직 낯설다. 두리번거리며 오픈 한 것을 확인한 후 몸을 집어넣는다. 예전에는 “어서오세요!” 라는 반기는 소리와 함께 직원 분들이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었다. “특별히 찾으시는 게 있으세요?”,”뭐 찾으시나요?” 등 이것저것 물으면서 권하기도 하면서 옆에 물러서지 않았다. 이런 환대가 부담스러워 무미건조한 대답을 해야 했다. “제가 알아서 볼게요.”, “그냥 보는 거예요.”등으로 반응을 하면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의 현란한 말솜씨에 잠깐 정신줄을 놓아버려 원래 사려고 했던 물건 이외의 것도 종종 샀었다. 귀가 얇아 스스로를 방어하지 않으면 꼭 하나 더 사 가지고 나오는 터라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차갑게 반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귀찮아 하고 다가올까 봐 미리 방어막을 쳤었는데 지금은 그런 가게 직원이 그립다.


요즘은 가게에 들어가면 조용한 분위기에 일단 한 번 움츠러든다. ‘’뭐지?’ 눈치 보며 쓰윽 가게 분위기를 훑어 보고 기계 앞으로 무심한 듯 다가간다. 바로 ‘키오스크’라는 주문을 받는 기계 앞에서 숨을 고르고 분석을 하기 시작한다. 사람이 다가가면 ‘어서오세요, 환영합니다.’ 등의 인사말조차 하지 않는 키오스크의 얼굴을 하나 둘씩 두드린다. 오로지 하는 말은 ‘띡, 띡’ 버튼을 터치하는 음만 낼 뿐이다.


처음 이 기계 앞에 섰을 때 무척 당황했다. 기계를 무서워하는 한 사람으로써 짜증도 났고 심란하기도 했다. 나는 너를 결코 이용하지 않으리라는 마음을 먹기도 했다. 그런 나를 기계 앞으로 데리고 간 사람은 남편이었다. 새로운 기계만 보면 호기심을 숨기지 못하는 그 덕분에 맥도날드에서 처음으로 이 기계 앞에 섰다. 지금은 작동이 잘 되지만 기계가 나온 초반에는 오류가 많이 나 기계가 부셔져라 검지 손가락으로 여러 번 쾅쾅 두드려댔던 기억이 새롭다. 햄버거 주문은 선택할 사항이 너무 많아 마치 미국 서브웨이 매장에서 주문을 하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주문을 무사히 마치면 미국 어느 곳에서든 주문하는 일은 누워서 떡 먹기라고 할 정도니 가히 알만하다. 그래도 초반에는 이 기계 옆에서 도와주는 분들이 계셔서 대신 주문을 넣어주시기는 했다. 그 경험을 계기로 이제는 기계에서 주문하는 일이 좀 더 수월하고 편해지고 있기는 하다.


그래도 새로운 가게에서 기계에 주문하는 일은 아직 낯설다. 내 앞에 다른 사람이 주문을 하고 있으면 눈을 부릅뜨고 어떻게 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뒤로 줄을 선 사람들에게 결국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되어버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린 학생도 아니고 인생을 알만큼 알고 살만큼 살고 있는 아주머니지 않은가. 다른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기계 앞에서 감춰지지 않는다. 화면을 두드리다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얼굴이 점점 달아오르고 기계 앞에서 무능해지는 내가 싫어지면서 결국에는 아무거나 눌러버리고 만다.


‘아, 아이스 가득한 커피 한 잔을 먹고 싶었는데.’


얼음을 선택하는 일을 보지 못하고 건너뛰었더니 그냥 밍밍한 커피를 조심스레 내 앞에 내어주는 직원. ‘얼음 넣는 거 잊으셨어요?’ 말없이 나를 쳐다보며 조심스레 커피를 내어주는 직원의 눈길을 차마 마주하지 않는다. 내가 직접 주문을 넣었으니 어디에 하소연을 할까. 한숨을 푹 내쉬며 가게 문을 열고 나와 버린다.


언제부터 세상이 이렇게 빠르게 변했던 걸까. 엄마나 아빠가 핸드폰을 다룰 줄 몰라 한 시간 넘게 해 보시다가 내게 물어볼 때 그렇게 짜증을 냈던 일이 새삼 죄송해졌다. 새로운 변화들이 평온한 일상을 들썩이게 만들면서 부지런히 배우고 쫓아가지 않으면 어느 새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되면서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으로 분리되어 버린다. 창 밖에 펼쳐진 풍경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용하고 평화로운데 뉴스에서 전하는 소식들은 깜짝깜짝 놀라운 일들이 가득하다. 마치 이 지구 아래 두 개의 세상이 공존하는 듯한 착각이 들만하다. 느린 세계와 최첨단의 세계가 오고 가는 것 같다.


시간이 가는 만큼 나의 머리도 따라가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니 속상한 마음을 누구에게 터 놓을까. 아들에게 줌 수업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가 결국 화를 내어 버린다. 두 번 세 번 묻는 엄마가 답답한지 고운 소리로 알려주지 않는 아들이 왜 그렇게 섭섭한지. 마음은 나이 들어 가는 몸을 쫓아가지 못한다. 마음은 열정 가득한 이십 대, 몸은 사십 대. 점점 나이 드는 몸의 기능을 인정할 수 없는 게 아닐까. 나는 나의 엄마를 보며 답답해 하고 나의 아이들은 나를 보며 답답해 한다. 나도 한 때 40살이라는 숫자에 ‘헉! 엄청 늙었다!’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설마 내가 답답한 꼰대가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라떼는 말이야~’를 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노력하지만 결국 나이를 들어가면 마음과 몸이 따로 따로 분리가 되는 것 같다. 내가 그렇게 살아왔고 내가 살던 시대로 인정해 달라는 외침이 아닐까. 과거가 없으면 지금도, 미래도 없으니까. 그 때 그 시절도 최첨단 시대였다고 몸부림쳐 본다.


 키오스크! 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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