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글로 제가 '하프타임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졸업 후 처음 입사한 회사의 연봉이 1,400이었던가, 1,600이었던가. 아무튼 고생했다고 1,800으로 올려준다는 메일을 받고 참 기뻤습니다. (아, 물론 단위는 만원입니다^^) 연 1,800만 원에 아침 9시 30분부터 밤 9시 30분까지, 어떨 때에는 밤을 새우고 새벽 5시에 퇴근해 아침 9시 30분에 다시 출근하는 가성비 일꾼이었죠. ‘요즘 청년들은 끈기가 없다’는 악평에 머뭇거리다 결국 그곳을 도망친 후 다섯 번의 이직이 있었고, 회사를 떠나야겠다고 결심했을 때에는 적지 않은 금액이 꼬박꼬박 통장에 들어왔습니다. 편했어요. 하지만 돈과 영혼을 바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회사는 승진과 연봉 인상을 미끼로 저에게 회사에 최적화된 인물이 되기를 요구했고 저는 의심 없이 그렇게 해왔습니다. 상황 대처 요령이 쌓이니 쉬워지더라고요. 평가도 좋았어요. 그래서 점점 대충 했습니다. 회사라는 틀 안에서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세상이라는 무대에서는 확실히 뒤로 가고 있었습니다. 저만 알고 있는 이 무서운 진실이 티 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했지만, 힘에 부치면 그 마저도 금세 포기했고, 포기하는 날은 많아졌어요. 발전이 없다고 느끼기 시작한 후 2년이 지났을 때에는 2년간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무엇이 남았는지 말하기 부끄러워 숨기고 싶었습니다.
달콤한 월급은 내가 멍청해지는 데에 지불하는 심심한 위로금이 아닐까?
초가을비가 내린 주말이 지난 월요일. 최고 기온이 더 이상 30도를 넘지 않을 거라는 앵커의 말처럼 아침 바람이 선선했어요. 늘 그렇듯 출근을 위해 지하철 역으로 향하는 길에 두 마리 작은 새가 짹짹거리며 허공을 갈라 나무에 앉았습니다. 노란색과 빨간색 털이 인상적인 가냘픈 새들이었어요. 그 자리에 앉아 가을 공기를 휘감고 마냥 새들을 보고 싶다는 충동이 솟구쳤지만 정시에 도착하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다리를 바삐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제 몸은 출근하도록 길들여졌으니까요.
새를 좋아하지는 않기에 단순히 탐조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회사의 기준에 맞춰 사느라 내면의 열망을 무시하면서 세상에서 퇴보하는 것이 아니라, 내 열망에 응답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을 놓치고 있을까? 일 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는 단순함이 과욕인 걸까?
아쉽게도 저는 이러한 순수한 마음 만으로 선뜻 퇴사를 결심할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 [초중고 > 대학교 > 취직 > 결혼 > 육아]라는 평범한 길을 걸어온 저를 울타리 밖으로 몰아내기 위해서는 원기옥이 필요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원기옥은 회사가 만들어주었습니다. (질투, 인정, 보상 등 막장 드라마처럼 진부한 이야기라 자세히 하지 않겠습니다.) 아무튼 회사와의 싸움에 지쳐 있을 때, 한 선배가 저에게 대뜸 다가와 말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회사를 관두면 안 돼요. 경력이 끊기면 다시 회사에 돌아오기 힘들어요."
저보다 한참 앞서 갈등을 겪은 분의 생생한 조언이었어요. 업계에 오래 몸 담고 계신 선배는 모든 회사원의 미래나 다름없었죠. 회사를 관두지 않는다면 N년 뒤 제 인생은 선배와 비슷한 모습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쉽게도 그 모습은 제가 꿈꾸는 미래와 거리가 아주 멀었죠. 결국 선배의 조언은 의도와 다르게 회사 생활을 중단하는 데에 확신이 들게 만들었답니다. 앞에서는 ‘그렇군요.’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Thank you, but NO. (조언은 고맙지만, 싫어요.)
회사에 다니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저의 경우, ‘회사’가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곳이라 믿었습니다. 회사에서의 커리어가 곧 나의 성공을 보여준다고 의심치 않았기에 누구보다 성실하게 해냈습니다. 그래서 ‘더 알려진 기업’ 혹은 ‘더 큰 기업으로 이직’이 삶의 목표였어요. ‘안정적인 수입’ 때문에 다녔던 적도 있지요.
살면서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는 계속 바뀝니다. 현재는 수입이 적더라도 ‘시간의 자율성’과 ‘일의 주체성’이 더 중요합니다. 새로운 렌즈를 끼고 바라보니 ‘회사는 가치를 실현하기에 적합한 도구가 아니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회사원으로서 해보고 싶었던 게 두 개 있었어요. 첫 번째는 연봉 1억을 넘겨 프라이빗 카드 발급받기. 두 번째는 해외 출장 가기. 둘 다 이루지 못했습니다. 회사를 떠나도 이루기 어렵겠지요. 하지만 차이는 확실합니다. 스스로 만들어볼 수 있다는 점이죠. 연봉 인상을 기다리고, 해외 출장에 끼워주기를 기다리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연봉이 오르도록, 해외에 나가도록 기회를 만들어볼 수 있을 거예요. 비록 이루어지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을 것 같아요. 그 과정은 회사가 아니라 온전히 나에게 축적되니까요.
당신의 커리어는 본인으로부터 시작되었나요, 가족이나 지인에서 시작되었나요, 혹은 생각해 볼 겨를 없이 사회에서 시작되었나요? 결론이 회사원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시작이 본인이라면요. 하지만 다른 이의 기준이 무례하게 침투해 본인을 흔든다면 주문을 외워봐요.
Thank you, but 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