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생활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죠. 보상, 동료, 상사, 경쟁, 워라밸, 승진 등등. 하나가 지나가고 조금 괜찮을만하면, 또 다른 어려움이 치고 들어옵니다. 마치 나를 시험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내가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더 이상 버틸 자신이 없었을 때, 하루하루를 진통제로 이겨내는 날이 이어졌을 때, 몇 가지를 포기하더라도 일단 내가 살아야겠다는 알람이 울렸습니다. 아직 제 손이 필요한 아이가 없었다면 바로 이직으로 이어졌겠지만, 육아도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취할 수 있는 선택지를 가늠해 보았습니다.
[옵션1] 같은 회사의 다른 팀 이동
장점: 현재 팀의 어려움 제거, 회사의 장점 유지
단점: 회사의 단점 유지
[옵션2] 무급 휴직
장점: 회사의 단점 일시적 회피, 새로운 커리어 도전
단점: 휴직 후 복직하면 상황이 악화, 일부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
[옵션3] 이직
장점: 회사의 단점 완전히 회피, 직무 커리어 강화
단점: 이직할 회사도 완벽하진 않을 것이므로 새로운 스트레스가 생길 가능성 높음, 육아 어려움
[옵션4] 현 상태 유지 (일명 존버)
장점: 익숙함, 육아와 회사 업무 밸런스 나쁘지 않음
단점: 스트레스를 너무 받음, 더 할 자신이 없음
각 옵션의 장점과 단점을 나열해 보며 비교해 봐도 답을 고르기가 여간 쉽지 않았어요.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Chat GPT에게 꼬리 물며 질문을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아 결국 멘토님을 찾기로 했어요. 멘토님과 약속을 잡았고, 식사 자리에서 내 상황은 이러저러하고, 갖고 있는 옵션이 무려 4개라며 자신 있게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정리한 옵션의 장단점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설명해 드렸어요. 최대한 누락되는 내용을 없게 하려고 한 음절 한 음절 꾹꾹 눌러 말했죠. 한참을 진지하게 듣던 멘토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다혜님한테 중요한 가치가 뭐야? 그걸 정하면 정답은 쉽게 골라지더라고."
멘토님은 저 대신 명쾌하게 답을 짠 골라줄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의외의 대답에 솔직히 조금 김이 빠졌어요. 멘토님은 제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며, 말을 이어 나가셨어요. 저의 우선순위가 '육아'라면 이직은 답이 아니며, 저의 우선순위가 '직무 역량 강화'라면 이직이 답일 것이라면서요. 그러고 보니, 같은 고민을 남편에게 나눴을 때, 남편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죠.
"하고 싶은 게 뭐야? 뭘 하고 싶다는 건지 모르겠어."
그동안 어떤 회사에 지원할까, 회사를 관둘까 와 같이 당장 취할 액션은 고민한 적이 많았어도 인생의 가치를 고려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가치'라니... 당장 밥 먹고 돈 버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잖아요. 그래도 속는 셈 치고 가치를 찾는 과정을 거쳤고, 가치가 명확하면 일상에 크고 작은 기로에서 선택이 한결 쉬워짐을 알게 되었어요. 선택하는 데 시간도 적게 들고, 맞을지 틀릴지 예상하기 어려워 생기는 불안함도 적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가치를 찾은 방법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어요.
인생의 가치는 고정값이 아니랍니다. 본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생각도, 가치도 유연하게 변하죠. 그래서 저는 앞으로 추구해야 할 인생의 가치를 시기별로 정의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만 1세였던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까지 남은 약 기간을 상반기와 하반기로 쪼개어 표를 만들었어요. 표의 열에는 이벤트, 목표 타임라인, 가치를 적었습니다.
이벤트: 각 시기에 있을 큰 이벤트를 적어요. 하와이 가족 여행,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처럼 삶의 방식에 변화가 생기거나 큰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참고할 사항들입니다.
목표 타임라인: 각 시기에 이루고 싶은 또는 이뤄야 할 목표를 적어요. 꼭 이루고 싶은 중요한 목표를 가장 먼저 쓴 이후에 역산을 하면 무에서 유를 쓰는 것보다 수월합니다.
저는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일 때에는 육아와 회사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싶지 않기 때문에, 2030년에는 자유롭고 유연하게 시간을 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늦어도 1년 전인 2029년 상반기부터는 '회사에서 독립하여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2029년 상반기 칸에 '1인 기업 완전 전환'이라고 적었어요. 여기에서부터 시간을 역행하며 올라갔죠. 1인 기업으로 완전히 전환하기 위해서는 수익이 안정화되어야 하고, 수익이 안정화되려면 인지도가 올라야 하고, 인지도가 상승하려면 가능성을 확인해야 하고, 가능성을 확인하려면 다양한 도전이 필요했지요. 적고 보니, 이 표를 적던 시기는 도전이 필요한 시기더라고요.
가치: 드디어, 가치를 적습니다. 목표 타임라인에 적은 목표를 왜 적었는지 이유를 따져보면 가치가 도출됩니다.
2026년에 다양한 도전을 하고 싶은 이유는 피고용인으로서 다른 이의 일을 돕기보다는, 스스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자율성'이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지요. 아래 질문에 답변하시면 가치로 다가갈 거예요.
왜 하필 이 목표인가? 그 시점에 나는 무엇을 잃고 싶지 않은가? 또는 어떤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은가?
가치를 정의한 후에 네 가지 옵션으로 돌아왔습니다. '자율성'이라는 가치에 적합한 옵션은 단 하나, '휴직'이었습니다. 다양한 옵션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무급 휴직을 제외한 세 가지 옵션은 사실 가치에 맞지 않아 있으나 마나 한 옵션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솔직히 저는 '휴직'이 가장 끌렸습니다. 하지만 '휴직이 현재의 어려움에서 도피하고 싶은 나약한 마음이 아닐까?'라고 스스로를 의심해 왔기에 선택하기 어려웠죠. 이 표를 만들고 가치가 잡히니 휴직은 단순한 도망이 아니었습니다. 제 커리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인 거죠. 쉬고 싶은 막연한 끌림이 전략으로 바뀐 순간입니다.
꼭 커리어가 아니어도 이런 고민을 많이 하실 거예요. 내 손에 있는 것 중에 뭘 고를까? (최근에 이사 갈 집을 보면서도 그랬습니다.) 뭘 골라도 답인 것 같고, 뭘 골라도 답이 아닌 것 같을 때. 그럴 때에는 한 단계 위로 올라와서 넓게 보세요. 들고 있는 선택지는 도구일 뿐입니다. 가치가 명확하다면, 쓸 도구도 쉽게 잡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