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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 Amelie Oct 14. 2021

목말 타고 유치원 가는 아이

그로잉맘 열여섯 번째 이야기


싱가포르 유치원은 반일반과 전일반, 맞벌이 부부를 위해 하루 온종일 아이를 봐주는 데이케어(어린이집 정도로 볼 수 있겠다)로 나눌 수 있다. 둘째는 동네 유치원의 오전반을 다니는데 아침 8시에 유치원에 가서 12시에 집에 돌아온다. 당초 계획은 유치원에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고 일어난 후 하교하는 누나와 같이 오후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계획은 계획일 뿐, 코비드로 인해 자주 홈스쿨링을 하는 누나 덕분에(?) 둘째는 일찌감치 낮잠과 이별하고 하루 온종일 놀다가 저녁 식사를 마치자마자 쓰러지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6월 한 달 방학을 끝내고 개학날이 되었다. 특별하게 준비할 건 없었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해 일요일 저녁 잠들기 전 아이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내일부터 유치원에서 겪게 될 흥미진진한 일들에 대해, 보고 싶었던 친구들을 만나 같이 노는 즐거움에 대해, 학교를 다녀와도 엄마와 아빠를 만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싱가포르는 재택근무가 가능한 산업군은 끝이 보이지 않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다음날을 기대하게끔 만들었다. (아니, 기대하게 만들고 싶었다.)


“난 내일 학교에 안 갈 거야. 학교에 가기 싫어. 집에서 엄마 아빠랑 놀 거야.”


이게 무슨 날벼락같은 소리란 말인가? 일단 행복한 월요일 아침을 위해 잠을 청하기로 했고, 내일 아침이면 본인이 한 말을 잊고 유치원으로 향할 것이라 여겼다. 아침해는 밝았고, 눈을 뜨자마자 거실로 나오는 아이는 잊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다짐이라도 한 듯 이렇게 말했다.


“나 오늘 학교 안 갈 거야. 학교 가기 싫어. 집에 있을 거야.”


소파에 누워있는 녀석의 등허리를 쓰다듬어주며 달래보고, 아침밥을 먹으며 또 달래 보았으나 아이의 다짐이 단호하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양치와 세수를 하기 위해 화장실에 가자고 하니, 양치와 세수를 해도 학교에 갈 수가 없다는 말을 먼저 건네고 스스로 화장실을 향한다.


그리하여 아이는 지난 7월부터 9월 방학 전까지 유치원에 간 날을 손으로 꼽을 정도가 되었다. 대부분의 아침은 어르고 달래는 것으로 시작했고, 그중 하루 이틀은 버럭 화를 내고 보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발바닥이 땅바닥에 착 달라붙어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이 힘든 사람처럼,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시험 부담감이 커서 얼굴에 웃음기가 빠지고 걱정 근심만 가득한 고3 수험생 같은 모습으로 유치원을 향했다.


유치원에 물어보면 선생님은 아이가 잘 지낸다고 했다. 특별히 문제가 있어 보이는 건 없다는 것이었다. 집에서 아이는 누구보다 활발하게 잘 논다. 누나와 붙어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주 싸우지만 둘이 함께 놀 수 있는 공통의 놀이를 발견하면 그 누구보다 잘 논다. 주중에 나와 남편은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놀아줄 수가 없지만 주말에는 새벽부터 밤까지 아이들과 놀기 위해 부지런을 떤다. 밥도 잘 먹고 화장실도 잘 가고 잠도 잘 잔다. 도대체 왜 이 아이는 유치원에 가기 싫은 것인가?


한동안 이 주제로 얼마나 많은 글과 영상을 봤는지 모르겠다.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는 아이들의 이유는 많고 해결책도 다양했다. 때마침 그로잉맘에 어린이집 안 가는 아이들에 대한 글이 있어서 동아줄 잡는 마음으로 읽었다. 문제는 우리 아이의 등교 거부 이유는 알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또다시 9월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는 순간이 왔다. 이렇게 집에만 있게 해서는 안된다는 마음에 유치원에 가기 전 주말 내내 등교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늘 해왔던 이야기라 아이의 마음을 흔들지 못했다. 요즘 버스와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서 아이에게 물어봤다.


“그럼 유치원 갈 때 우리 뭐 타고 갈까? 유모차 타고 갈까? 아니면 스쿠터? 버스를 타면 좋은데 너무 가까워서 버스가 없어.”


“목말”


그리하여 아이는 목말을 타고 유치원에 갔다가 목말을 타고 집에 오는 생활을 하고 있다. 아빠의  귀를 잡고 운전을 하듯 방향을 조정하며 아빠 어깨를 자가 이동 수단으로 활용한다. 아침마다 치열하던 실랑이가 줄어들어서 아이의 등교 준비하는 시간이 평안하다. 하지만 궁금하다.  유치원에 가기 싫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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