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멜리 Amelie Jan 26. 2024

09. 리바운드에 대한 딸의 해석...아홉 살 맞니?

단체 운동하며 스포츠맨십을 배우는 아이...어른인 제가 더 배웁니다.

“엄마, 리바운드가 무슨 뜻인지 알아?”

“농구에서 쓰는 말인가? 공이 어딘가 부딪히고 다시 튀어 오른다는 뜻 같은데 모르겠어.”

“선수가 슈팅한 공이 골인에 실패하고 링이나 백보드를 맞고 튀어나오는 걸 말하는 거야.”

“아, 그런 거였어? 슈팅했지만 점수를 얻지 못한 거네.”

“그렇게 보면 실패한 것 같잖아. 그런데 그렇게 튀어나오는 공을 다시 슈팅할 수가 있어. 실패가 기회가 될 수 있는 거야.”


리바운드에 대한 아이의 해석을 들으며 세 계단 정도는 성큼 뛰어 오를 정도로 아이가 자랐구나 싶었다. 혹은 아이가 나보다 아는 게 더 많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스포츠 혹은 스포츠 경기 방법에 대해 아는 게 제대로 없다. 테니스를 4년 가까이 배웠지만 내 몸뚱아리 하나 움직이는 것도 버거워 게임 룰을 들여다볼 생각까지 못했다. 대학을 다닐 때, 잔디밭에 모여 앉아 2002 월드컵 한미전을 응원했지만 오프사이드가 뭔지 아직도 잘 모른다. 야구에서 9회 말 2아웃이 심장 쪼그라드는 순간이라는 정도는 알지만 삼루를 냅다 달려 본루로 들어오면 1점 난다는 것 외에 야구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이렇게 스포츠에 문외한이지만 팀으로 경기하는 스포츠가 아이들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농구에 흥미를 느낀 큰아이를 동네 농구 수업에 등록했다.


미국은 타운마다 레크리에이션 센터가 있다. 이곳에서 성인들은 운동, 취미 수업에 참여할 수 있고, 아이들은 하교 후 활동이나 운동 수업, 방학 중 캠프에 참여한다. 이번 농구 수업도 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 마련한 시간으로 타운 내 세 곳의 초등학교 대강당에서 진행된다.


초등학교 3-4학년 여학생 신청자의 실력을 평가한 후 6개 팀으로 나누고, 각 팀에는 2명의 코치가 배정되었다. 코치들은 농구 경험이 있는 학부모들이 주로 맡는데 큰아이팀의 코치는 아이의 학교 친구 엄마이자, 나의 친구인 동네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다. 매주 수요일은 코치와 연습을 하고, 매주 토요일은 다른 팀과 토너먼트 형식으로 게임을 한다.


첫 번째 경기를 보러 간 날이었다. 농구 규칙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였지만 아이들이 코트를 내달리는 발걸음 소리와 슈팅한 공이 링 안에 가뿐하게 들어갈 때 터지는 아이들의 함성, 한 쿼터가 끝나고 벤치에 돌아온 아이들이 경기에 대해 코치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들으면서 나도 덩달아 설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직관하기 위해 야구장으로 농구장으로 향하는구나 싶었다. 몸을 써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이란 바라보기만 해도 감동적이었다.


농구 코트에서 아이가 마주하는 스포츠맨십


나도 규칙적으로 달리기와 요가, 근력 운동을 하는 운동인이기에 운동의 매력에 대해서는 책 한 권 써낼 수 있을 만큼 할 말이 많다. 하지만 팀으로 진행하는 스포츠에 대해 아는 바가 없기에 이제서야 아이를 통해 그 매력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셈이다.


온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망아지처럼 농구장 코트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저절로 웃음이 났다. 아이들은 같은 팀 선수들과 손짓, 눈빛으로 서로를 응원하며 공을 향해 내달리고, 공을 던졌다.


이쪽 골대에서 저쪽 골대로 달려가며 선보이는 아이들의 드리블과 패스, 슈팅에서 우승을 향한 의지가 오롯이 느껴졌다. 농구 직관이 처음인 나는 어느 프로 선수들이 이런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아이들의 경기에 빠져들었다.


팀 스포츠에는 각자 역할이 있고, 제 역할에 충실하지 않을 경우 그 여파가 팀 경기 전체에 영향을 준다. 엄청난 역량을 가진 선수가 한 명 있어도 팀워크가 이뤄지지 않으면 그 팀은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없다. 다른 팀에 비해 평균 수준의 능력을 갖춘 팀이더라도 선수들 간의 호흡이 좋고 서로 도와가며 경기에 임할 때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


농구 연습이 시작하기 전 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 메일이 하나 왔다. 아이들이 숙지해야 하는 내용으로 팀별로 색깔이 다른 팀 티셔츠를 입어야 하는 것, 목걸이와 같은 액세서리는 착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규칙이 언급되어 있었다.


스포츠인이 가져야 할 기본자세인 스포츠맨십을 익힐 수 있도록 게임이 끝나면 상대 팀과 악수합니다.


스포츠를 통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는 정도는 생각했지만 스포츠맨십까지 배운다는 것은 생각이 닿지 않았다. 상대방을 대할 때 자제력을 유지하고, 공정하게 대우하고, 존중하는 것과 같은 마음을 운동으로 배울 수 있다니 농구 수업 안내 메일을 읽다 감동했다.


자제력을 상실한 채 제멋대로 행동하고, 권력이 있는 자들은 힘이 없는 사람을 공정하게 대우하지 않고, 똑같은 인간임에도 서로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의 뉴스가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아이들은 스포츠맨십을 배우고 있다니, 생각만 해도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훨씬 멋지고 존경스럽지 않은가.


큰아이는 농구에 흠뻑 빠져 있다. 연습 시간 20분 전에 학교에 도착해 몸을 풀고, 집에서도 시간 날 때마다 드리블 연습을 한다. 경기가 있는 토요일은 식구 중 가장 먼저 일어나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한다.

 

사진 속에 아이들의 경쾌한 발소리와 농구공이 튀어오르는 소리를 담고 싶다.


농구를 대하는 아이의 자세에서 또한번 배우다


총 네 번의 경기를 했는데 두 번은 이겼고, 두 번은 졌다. 질 때나 이길 때나 아이의 반응은 한결같다. 코트에서 부지런히 뛰었고, 적극적으로 패스했고, 기회가 있을 때면 슈팅했다고 했다. 이기고 지는 결과에도, 친구 중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도 관심이 없다. 무심한 듯 제 할 일만 할 뿐이다. 미리 나갈 채비를 하고, 달릴 수 있도록 몸을 풀고, 경기 시간에는 최선을 다하는 것, 그뿐이다.


두어 달 농구를 대하는 아이의 자세를 보며 또 배운다. 무언가 하는 과정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는지,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 하지 않고 다음 스텝을 위해 또다시 준비하고 있는지, 내일 있을 무언가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 알차게 준비하고 즐기고 있는지 자꾸만 나를 돌아보게 된다. 농구를 통해 팀워크를 배우고, 요행을 바라지 않고 무던하게 임하는 자세를 익히고, 몸을 움직이는 재미를 만끽하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나를 반성하게 된다.


나는 아이가 드리블을 얼마나 능수능란하게 하는지, 한 경기에서 몇 번의 슈팅을 하는지, 경기에서 이겼는지 졌는지 관심 없다. 수업 30분 전 경기장에 도착하려 준비하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누구보다 진지하게 경기에 임하며 코트를 누비는 아이의 분주한 발걸음에서, 농구를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의 얼굴에 피어난 웃음에서 아이가 농구를 만나 이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이보다 더 값진 시간이 또 있을까.


아침에 경기를 다녀온 아이에게 묻는다.

“오늘 경기 어땠어?”


아이는 덤덤하게 답한다.

“좋았어.”


기대가 섞인 목소리로 내가 다시 묻는다.

“이겼어?”


농구화를 벗는 아이가 무심하게 답한다.

“응.”


경기에서 이긴 날인데 경기에 임한 선수가 보인 저 무덤덤함이란, 프로의 세계를 누비는 농구 선수가 보여주는 모습 같아 그저 내 눈에는 멋질 수밖에 없다. 아이의 리바운드는 언제 어디서나 날숨과 들숨 사이에 등장하겠지, 실패의 얼굴을 했지만 기회라는 속뜻을 품은 마법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