以不忍人之心 行不忍人之政 治天下可運於掌上
이불인인지심 행부인인지정 치천하가운어장상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정치를 행한다면, 천하의 다스림을 손바닥 위에서 운용할 수 있을 것이다. - 공손추 상(公孫丑 上)
맹자는 모든 사람에게 차마 타인에게 하지 못하는 마음(불인인지심)이 있다고 얘기합니다. 달리 표현하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타인의 고통이나 불행을 외면하지 못하는 본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맹자는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측은지심을 그 근거로 삼습니다. 이것에 더해 맹자는 수오지심과 사양지심, 그리고 시비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맹자의 사단입니다. 이 네 가지의 마음이 각각 '인의예지'의 단서(실마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겠으나 사단 중 근본은 역시 수오지심입니다. 사람이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그가 여전히 반성과 성찰이 가능한 상태로 남아 있다는 얘기입니다. 자신의 잘못된 언행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칠 때 인간은 더 나은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됩니다. 그것으로 인해 상처 입은 타인에 대한 진심 어린 참회가 가능하다면 측은지심은 이미 그 속에 전제된 것입니다.
이태원 참사 1주기가 되도록 우리는 이 땅에 수오지심이 회복되고 있다는 증거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공감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차마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면서 측은지심이 있는 척 구는 자들에게 수오지심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나라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수오지심이 결여되어 있을 때 나라에는 낯뜨거운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이고 그 수치심은 오롯이 국민의 몫이 되고 맙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길을 걷던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목숨을 잃은 참사가 일어났어도 책임을 회피하는 정부가 있는 한 국민의 삶은 위태롭습니다. 공직자들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의무를 방기해도 처벌 받지 않는 사례를 만든다면 이후에도 국민을 억울하게 만드는 인재가 발생할 확률이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국민을 위하는 공직자라면 차마 할 수 없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는 모습을 보면서 수오지심을 상실한 인간들이야말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합니다.
비인간들에게 권력을 준 국민들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수오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는 맹자의 진단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