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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 Jun 18. 2019

3년차 콘텐츠 마케터가 털리면서 배운 18가지

사회 초년생 실드 뒤에서 생각한 콘텐츠 마케팅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3년쯤 되었다. 내년이면 30살이다. 하나씩 따로 볼 땐 심드렁했는데 둘을 이어 보니 어이구야 싶다. 사회 초년생이라는 호칭이 나와 멀어지고 있다. 비브라늄으로 만든 방패 같던 그 말. '사회 초년생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웃음과 함께 사라지던 수많은 일들이 이젠 내 인사고과로 고스란히 남을 것이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인생의 쓴맛을 보기 전 되돌아본다. 콘텐츠 매니저, 콘텐츠 마케터, 콘텐츠 에디터. 직함은 조금씩 달랐지만 인하우스·스타트업에서 마케팅을 위한 콘텐츠 만드는 일을 계속해왔다. 서당개 3년 풍월을 읊듯 콘텐츠 마케팅의 이해와 실전을 주르륵 읊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여전히 나는 아는 것이 없다. 그치만, 그래서 이 시기에 콘텐츠 마케팅에 대한 내 생각을 의식의 흐름대로 써두면 어떨까 싶다. 몇 년 더 지나 초년생 딱지를 떼고 읽으면 이불킥을 하더라도 그동안 배운 게 없진 않구나 싶어 뿌듯하지 않을까. 그때를 위한 3년 만기 적금이라 치고 내 생각을 내 기준대로 솔직하게 늘어뜨렸다.



1. 짜릿하다. 늘 새롭다. 콘텐츠가 최고다.

- 가끔 빡치고 종종 열받고 자주 머리 싸맨다. 그래도 항상 "글 쓰는 일로 돈을 벌다니 나는 좋은 시대에 태어났구나!" 싶다. 내가 대학생 땐 디지털 마케팅이라는 말조차 생소했었고 글 써서 월급 받으려면 카피라이터나 잡지사 에디터가 되어야 하는 줄 알았다. 고등학생 땐 글 쓰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사범대에서 국어를 배운 거였고. 어째 많이 돌아왔지만 콘텐츠 마케팅이야말로 내가 좋아할 만한 일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일을 좋아한댔지 잘한다는 말은 아님.


2. 콘텐츠와 관련된 건 뭐든 내 일이라고 생각해야 맘이 편하다.

- 팀원 인터뷰, 컨퍼런스 취재, 브랜딩 콘텐츠 제작, 잠재고객을 타깃으로 한 인사이트 콘텐츠 제작 등등은 당연히 내 일. 성과가 잘 나올 소재를 골라 적절한 콘텐츠로 만드는 게 매일 하는 일이다.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콘텐츠의 목적만 확실하다면 무슨 내용을 어떻게 다룰지는 내 마음이고 내 역량이라 업무 자유도가 아주 높다. 글을 쓰건 그림을 그리건 영상을 만들건 타깃이 좋아할 콘텐츠가 나온다면야.

- 작은 회사로 간다면 보도자료 작성 등 기초적인 PR이나 광고 집행을 위한 기본적인 퍼포먼스 마케팅도 직접 해야 할 수 있다. 우리 회사 브랜딩, 내 콘텐츠 흥하라고 하는 것들이니 내 일이거니 해야지 뭐.


3. 콘텐츠로 만들 수 있다면 뭐라도 내 일이 될 수 있다.

- 작은 회사 콘텐츠 마케터라면 업무 범위가 생각 이상으로 넓어질 수 있다. 정도가 심하다면 대화가 필요하다.

- 우리 회사는 아직 HR 담당자가 없다. 작년 송년회 내가 기획했고 올해 워크샵 프로그램도 일부 공동 기획했다. 회사 이사할 때는 이사 콘텐츠에 들어갈 사진 찍으려고 주말 출근한 적 있다(대체휴무 받음). 모든 행사 후기 콘텐츠는 내가 쓰니까(=내 소재니까) 그럴 수도 있겠거니 했지만 행사 기획은 내 적성에 맞지 않아 크와앙 꽤 여러 번 울부짖었다. 얼마 전 정기 면담에서 업무 만족도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워크샵 끝나고 좋아졌어요 ^.^" 했을 정도. 얼마 지나지 않아 HR 담당자를 뽑는다는 희소식이 들려왔다.


4. 콘텐츠 마케터가 하는 일은 회사마다 다르다.

- 전 직장에서는 제품 상세페이지랑 페이스북 광고를 만드는 게 주 업무였다. 퇴사하기 전 잠깐 브랜디드 콘텐츠 에디터라는 직함을 달고 브랜디드 콘텐츠를 만들기도 했다. 현 직장에서는 그 일들은 물론이고 회사 브랜드와 제품 전반에 걸쳐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는 콘텐츠면 뭐든 만든다. 직무명은 콘텐츠 마케터/에디터로 되어 있는데 콘텐츠 에디팅의 영역에 브랜디드 콘텐츠까지 포함되어 있다. 웹툰 콘텐츠가 뜨고 나서는 "직무를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바꿔드릴까요?"라는 제안이 있었는데 내가 사양했다. 그러면 진짜 영상까지 해야 할 것 같잖아요...!


5. 그래서 회사를 잘 골라야 한다.

- 인하우스 기준 이야기다.

- 옛날 옛날 아주 오랜 옛날, 성형/뷰티 분야의 스타트업에서 콘텐츠 마케터로 1달씩 일해본 적 있다. 한 번은 내 발로 도망쳐 나왔고 다른 한 번은 내가 쫓겨났다. 나는 마케팅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닌 건가 좌절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잘된 일이지 싶다. 그 분야의 콘텐츠 문법을 이해하지 못하면 고객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만들 수 없다. 약속 없으면 쌩얼로 출근할 만큼 뷰티고 뭐고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좋은 뷰티 콘텐츠를 만들어낼 리가 없지.

- 회사가 속한 업계는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 B2B와 B2C의 콘텐츠 마케팅 전략이 다르고, 커머스와 IT 회사의 마케팅 콘텐츠는 전혀 다르다. 내가 재밌게 공부할 수 있을 만한 분야에 있는 회사가 좋다.


6. 그래서 대표, 팀장을 잘 만나야 한다.

- 회사가 지향하는 브랜딩이나 콘텐츠 마케팅은 무엇인지, 내 업무 자율도는 어느 정도로 보장되는지 등등등 많은 것들을 따져 보고 회사를 골라야 한다. 연봉 많이 주는 데 혹해서 포트폴리오로는 도저히 쓰지 못할 콘텐츠만 만드는 곳에 있으면 나중에 이직을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7. 그래서 좋은 팀원이 되어야 한다.

- 콘텐츠 소재나 조언이 필요할 때 가장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같은 회사 팀원들이다. 회사에서만큼은 인싸로 지내자. 두루두루 잘 지내다 보면 그분들께 배우는 것들이 다른 어떤 스터디나 모임에서보다 많을 거다.


8. 내가 세상에 내보내는 콘텐츠는 다 내 포트폴리오다.

- 일하기 싫을 때, 이만하면 완성되지 않았나 마음이 풀어질 때 꼭 기억하자. 내 콘텐츠가 내 얼굴이고 포트폴리오다. 아무거나 막 써서 내보내면 결국 내 평판에 독이 된다.


9. 좋은 콘텐츠에 대한 나만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거나 재미있어야 한다거나 공유할 가치가 있어야 한다거나, 콘텐츠의 목적이나 형태별로 기준 몇 가지를 정해두면 나침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 기준은 콘텐츠를 평가하는 이해관계자들보다 높아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그분들과 의견이 맞지 않을 때 내 주장을 펼치거나 더 좋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물론 돈 받고 하는 일이니만큼 기준은 보편적인 것, 회사에서도 납득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

- 맞춤법 검사는 필수! 표준어가 더 어색해서 고치지 않는 건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10. 콘텐츠를 만들 땐 타깃과 목적부터 설정해야 한다.

- 이걸 놓치면 콘텐츠가 산으로 간다. 지금처럼 개인적으로 쓰는 글은 타깃이 나 자신이고 목적은 내 생각 정리해보기 정도라도 충분하다. 하지만 회사에서 만드는 콘텐츠는 그러면 안 된다. 월급 받으니까.


11. 일정에 여유가 있어야 신선한 콘텐츠가 나온다.

- 신입 때 일이 년 정도는 생산하는 콘텐츠의 질보다 양으로 승부해도 배우는 것만 있으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근데 경력을 쌓아갈수록 '이거 제가 만들었어요!' 할만한 게 있어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생긴다. 내 경우엔 '생각보다 일정에 여유가 있네? 다음 콘텐츠는 뭘로 하지' 하다 재밌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많았다. 일이 너무 많다 보면 재밌는 아이디어는 됐고 오타나 없으면 다행일 콘텐츠만 나온다.


12. 일정을 못 맞출 것 같으면 차라리 터놓고 이야기하자.

- 한두 달 전이었나, 큼직한 콘텐츠를 하나 만들어야 했는데 도저히 문장이 나오질 않았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전에 썼던 콘텐츠를 이리저리 다듬어 재활용했다. 그때 처음으로 혼났다. 나에게 기대했던 장점이 전혀 없는 콘텐츠라는 말을 들었다. 차라리 일이 안 된다 싶을 때부터 일정 조정을 요청하는 게 맞았다. 이전까지 콘텐츠 일정을 미뤄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든 뭐라도 나와야지 했던 게 스스로 부담이었던 것 같다. 앞으론 안 그래야지 반성 많이 했다. 재미도 정보도 감동도 의미도 없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보다는 재정비 시간을 가지는 게 낫다. (이 에피소드는 그때 일정 미루고 작성한 콘텐츠가 잘 나와서 해피엔딩이었음!)


13. 다른 사람들이 만든 콘텐츠는 참고자료지 비교자료가 아니다.

- 내 콘텐츠 조회수가 바닥을 찍고 있는데 다른 회사 대박난 콘텐츠를 보면서 '난 안 될 거야 아마...' 하고 우울해져 있으면 나만 손해다. 내 콘텐츠도 언젠가 볕 들 날 오겠지 생각하고 행복회로를 돌리는 게 정신건강에 이득이다. 그렇다고 다른 데 올라온 영 별로인 콘텐츠 보면서 내 것과 비교하며 자기위안하는 것도 영 좋지 않은 행동이다. 물론 쉽지 않다. 나이 먹고 경력 더 쌓이면 의연해지지 않을까 기대 중이다.


14. 포트폴리오는 미리미리, 성과 캡쳐는 제때제때

- 일하다 보면 내 콘텐츠가 운 좋게 어느 커뮤니티에 퍼진다거나 포털 메인에 뜰 수도 있다. 메인은 일시적이지만 캡쳐는 영원하다. 포트폴리오는 생각날 때마다 보완해두는 게 좋은데 현실적으로 어려우니까 하다못해 페북에 콘텐츠 링크를 공유해두기만 해도 나중에 도움이 된다.


15. 회사에서 포트폴리오를 쌓을 수 없다면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야 한다.

- 직장인이 퇴근 후 할 수 있는 사이드 프로젝트는 무궁무진하다. 콘텐츠 마케팅이랑 관련된 거면 나중에 이직할 때도 도움이 된다. 나는 현 직장으로 이직했을 때 전 직장 업무경력보다 사이드 프로젝트 경력이 더 힘을 실어줬었다.

- 회사생활만 잘해도 포트폴리오를 쌓을 수 있는 환경이라도 사이드 프로젝트는 하는 게 좋다.


16. 특기 하나쯤 있으면 말할 거리가 많아진다.

- 영상 툴을 다룰 수 있다거나 외국어를 잘한다거나 등등. 포토샵 기초는 기본 소양이라 특기로 치기 어렵고, 차라리 업무와 무관하더라도 덕질이라 할 만큼 파고드는 게 있다면 어디서 뭘 만들든 돋보이는 것 같다.


17. 내가 잘하는 것, 못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스스로 알아야 한다.

- 하고 싶은 일만 할 순 없지만 내 커리어의 방향은 내가 잡아야 한다. 잘하는 걸 더 잘할 수 있게 노력할지, 못하는 걸 할 수 있도록 노력할지 우선순위를 마음 속으로라도 정해두자. 앞으로 어떤 분야에서 어떤 형태의 콘텐츠를 계속 만들고 싶은지도 꾸준히 생각해봐야지. 회사에서 모든 시도를 할 수 없으니 내 커리어 방향을 설계하는 데 사이드 프로젝트를 활용하자.


18. 마케팅 스터디도 좋지만, 일단 마케터 친구를 두자.

- 브랜딩이나 마케팅 관련 스터디를 찾아 들어볼까 고민했지만 후기를 몇 들어보니 나와 맞지 않을 것 같더라. 비슷한 고생을 하고 있는 마케터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회사 기밀을 제외한 이런저런 솔직한 마케팅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좋을 수 있다.

- 다만 최측근이 퍼포먼스 마케팅 스터디를 하고 있는데 만족도가 하늘을 찌른다. 경력이 확실한 분들끼리 모이면 스터디 도움이 많이 되나 보다.



  이게 뭐라고 며칠 걸려 썼다. 번호를 더할 때마다 갸웃했고 문장을 빼고 더할 때마다 기우뚱했다. 짧은 생각이지만 계속 가져가고 싶은 것들만 골라 추려냈다. 아직 콘텐츠 마케팅 경력도 얼마 안 되는 내가 뭐라고 이런 글을 올리나 싶지만 아직은 사회 초년생 실드가 제기능을 하고 있으니 괜찮겠지. 좀 더 경력이 쌓이면 그땐 정말 사회 초년생 콘텐츠 마케터에게 도움이 될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 그때까지 콘텐츠로 잘 먹고 잘살면 좋겠다!


그리고... 이 글을 쓴 사람은 3년 후 이런 글을 쓰게 됩니다.



* 제 글을 메일로 편하게 받고 싶으시다면? > https://bit.ly/yoona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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