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정말 감사한 일이다

by 띤떵훈



콜링우드에 있는 볼더링 짐에서 운동을 마치고, 작은 로드스터를 타고 시티로 향했다. 운동화의 통풍을 위해 창문을 살짝 열었다. 겨울 공기가 볼을 스쳤다. 상쾌했다. 점심 무렵, 신호등에 자주 멈춰서는 복잡한 도로 위.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별 거 없는 하루인데, 새삼 행복하다. 문득 ‘감사하다’는 말이 떠오르는 것은, 내 삶이 잘 흘러가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한다. 살다 보니 맞는 말이다. 일상에서 사소한 감사를 자주 떠올린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의식적인 훈련 끝에 이제는 자동화된 일처럼, ‘감사하다’는 말이 입에 먼저 붙는다. 마치 감사 기계라도 된 듯이.



직장인에게 달갑지 않은 월요일 아침 9시. 나는 볼더링 짐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가뜩이나 없는 스트레스를 풀었다. 홀드를 잡고 벽을 오르면서 ‘이동진의 파이아키아’를 들었다. 그의 담담한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깊이와 명확한 문장들은 오랫동안 익숙한 참고서처럼 나를 안내한다. 학창 시절, 문제에 막히면 참고서를 펼쳤다. -이렇게 그렇게 저렇게 해서 푸세요- 조언을 참고하니 문제를 풀 수 있게 됐다. 삶도 그와 다르지 않다. 복잡한 장면마다 이동진의 언어가 힌트가 된다.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음을 깨닫는다. 벽을 오르면서, 세상을 여과하는 필터 하나가 늘었다.



이어서 들은 에피소드는 『편안함의 습격』 리뷰였다. 2025년 7월의 책으로 선정된 이 책은,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편안함'이 오히려 인류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지루함, 배고픔, 죽음 직면, 육체 노동—이 네 가지가 현대에 사라졌고, 그 결핍이 문제라는 논지다. 나는 특히 ‘지루함’에 귀가 멈췄다. 멍하게 있는 시간이 의미가 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요즘 지루함을 잘 견디는 연습을 한다. 이 책이 내 생각을 확인시켜줬다는 점에서, 그리고 마침 내가 구독 중인 리디셀렉트에 이 책이 있었다는 점에서 두 번 감사했다.



2시간가량 클라이밍을 하고 나면 근육은 바싹 짜낸 수건처럼 말라붙는다. 전완근이 욱신거린다. 꾸욱 꾸욱 눌러가며 손가락을 털어준다. 샤워실에서 발을 씻고, 건조기에 말린 후 로퍼를 신는다. 이 로퍼는 정말 잘 샀다. 중고로 50불 안쪽에서 샀을 것이다. 양말 없이도 편하게 신을 수 있고, 디자인도 무난하다. 땀이 식은 발에 푹신한 가죽이 닿을 때마다 이 저렴한 만족감에 다시 한번 감탄한다. 때로는 명품이 아닌 값싼 로퍼가 하루의 질을 결정한다.



식사 시간.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시간조차 즐겁다. 아침은 건너뛰고 점심을 일찍 먹는 루틴이다. 도미노 피자의 더블 치즈버거 피자를 생각했지만, 가격이 14불로 올라 있었다. 11불 선에서 머물 줄 알았기에 실망했다. 그 순간, 헝그리잭스 앱에서 6불짜리 와퍼와 미디움 음료 세트를 발견했다. 이득 본 기분으로 카운터에 줄을 섰고, 신선한 양상추와 토마토가 들어간 햄버거를 받아들었다. 6불로 해결되는 점심은 기특하다. 정말 감사한 Meal이다.



오후엔 특별한 일정이 없다. 5시 반에 간단한 미팅 하나가 있지만, 그 전까지는 자유다. 단골 카페 히카리에 가서 롱블랙 한 잔을 주문하고, 이 글을 쓴다. 글쓰기는 생각을 정리하는 행위이기도 하고, 동시에 내 하루를 되짚는 리추얼이다. 맛있는 커피 한 잔과 키보드 튕기는 시간. 이보다 사치스러운 조합은 많지 않다.



나는 나름 가성비 좋은 인간이다. 나를 즐겁게 만드는 일은 대체로 큰 돈 들지 않는다. 시간은 많이 든다. 경제적으로는 효율적인데, 시간 자원으로 보면 호화롭다. 긴 여가를 좋아하는 일로 채운다. 덕분에, 지금 이렇게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하루를 채운 작은 감정의 조각들, 소소한 풍경, 싸고 맛있는 한 끼, 적당한 피로, 고요한 시간, 선명한 언어. 이 모든 것이 내일도 가능하다는 확신은 요즘 내가 느끼는 가장 현실적인 행복이다. 반복할 수 있다는 것, 계속될 수 있다는 것. 행복은 결국 지속 가능성에서 비롯된다는 걸, 요즘 자주 생각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른이 못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