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퍼스의 부동산 투자자
시티에서 주차를 마치고 헝그리잭스에서 5불짜리 햄버거 세트를 주문했다. 햄버거를 한 입씩 베어물며, 우연히 마주한 쓰레드 글을 정독했다. 워홀 출신 한국인이 쓴 글이다. 그는 비교적 고액 연봉을 벌며 10년 가량 직장 생활을 했다. 5년 전에 로버트 기요사키의 투자 강좌를 보고 각성해서 50억 원 넘는 자산을 만든 이야기였다. 같은 나라에서 출발해, 비슷한 시기에 호주로 넘어와, 비슷한 관심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글은 유난히 흥미로웠다.
그의 투자 방식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그는 코로나 시절, 약 1억 원의 시드머니로 퍼스 외곽에 있는 5억 원짜리 주택을 구매했다. 대출은 80%를 활용했다. 이후 집값이 빠르게 올랐다. 오래지 않아 해당 주택의 가치는 배 가까이 올랐고, 그는 이를 기반으로 재융자를 받아 수억 원의 자기자본을 추가 확보했다. 그 돈으로 다시 1채를 구매했고, 그렇게 늘어난 자산을 담보로 다시 한두 채를 더 구매했다. 현재는 총 5채의 부동산과 몇 억 원의 현금, 그리고 연금 계좌까지 포함해 총자산이 50억 원이 넘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자산과 자본의 구분이다. 그의 부동산 가치는 약 50억 원이지만, 모두 대출 80%을 끼고 구매했다. 순자본(Equity)은 10억~15억 원 정도다. 그간 집값이 오른 걸 반영하면 15억 가까이 될 것이다. 자산은 커졌지만, 대부분은 빚을 끼고 만든 구조다. 레버리지를 적절히 활용한 셈이다.
수치만 보면, 대단한 결과다. 1억 원을 5년 만에 15억 원으로 만든다는 것은 웬만한 사업가에게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 구조가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전략은 아니다. 나중에 은행원인 친구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현실적인 코멘트를 남겼다.
"이건 조건이 꽤 많이 붙는 케이스에요. 퍼스처럼 5년 만에 집값이 두 배로 오르는 지역을 골라야 하고, 그게 예측 가능하진 않아요. 멜번은 퍼스만큼의 상승률을 기대하긴 힘들어요. 그리고 그렇게 부동산을 늘리려면 세금신고된 인컴이 있어야 은행에서 대출을 계속 해줘요. 결국 본인 소득이 그만큼 받쳐줘서 가능한 거죠."
그 말이 맞다. 이미 성공한 사례를 놓고 보면, 모든 게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정작 그 성공을 만들었던 변수들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다. 운이 따라야 하고, 상승장을 만날 타이밍이 맞아야 하고, 무엇보다 그 상승을 버틸 수 있는 소득과 저축력이 있어야 한다.
내가 이 사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그가 가진 ‘절약’ 능력이었다. 꽤 높은 소득을 꾸준히 저축해 나갔다. 단순히 부동산을 사서 기다린 게 아니라, 자금 관리를 정말 잘한 것이다. 그러니 4채, 5채를 살 수 있었고, 임대소득을 재투자하며 자산을 늘릴 수 있었던 거다.
그의 전략은 멋졌다. 레버리지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르는 자산을 잘 활용해 다음 단계를 만들었다. 하지만 같은 시도를 한다고 모두가 그만큼의 결과를 얻진 않는다. 그 점을 감안하고 봐야 한다. 내가 배운 건 ‘이 방식이 정답이다’가 아니라, ‘이 방식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5년은 아주 특별할 수 있다. 다만 그 특별함은, 타이밍과 실행력, 그리고 꾸준함이 뒷받침됐을 때 가능하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2. 멜번의 주식 투자자
나는 주식을 잘한다. 그리고 가치투자의 장점을 인지하고 있다. 우선 주식은 매매가 쉽다. 자산을 옮기거나 조정하는 데 물리적 수고가 없다. 보유에 따른 관리비나 유지비도 발생하지 않는다. 가격 변동 외에는 별다른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세입자의 전화, 파손, 렌트비 연체 같은 부동산의 일상적인 리스크로부터 한 걸음 멀어져 있다. 무엇보다, 가치투자는 레버리지를 쓰지 않는다. 시장의 단기 변동성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잠재적 하락 변수까지 감안하면, 레버리지를 썼을 때 손실은 원금을 넘어설 수 있다. 이런 통제 불가능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가치투자는 애초에 마이너스가 날 수 있는 구조 자체를 만들지 않는다.
물론 단점도 있다. 레버리지를 쓰지 않으니, 80% 대출을 끼고 부동산을 사서 자산을 5배, 10배로 불리는 식의 드라마는 없다. 가치투자의 연 평균 수익률을 12.5% 정도로 본다면, 1억을 5년 복리로 굴려봤자 약 1.8억이다. 8천만 원의 이익, 나쁘지 않지만 퍼스 부동산 투자자의 15배 수익과 비교하면 초라하다. 또한 가치투자는 분산 투자를 전제로 한다. 특정 종목이 10배 수익을 낸다고 해도 전체 포트폴리오에는 미미한 영향을 준다. 단일 종목에 과도한 기대를 걸지도 않는다. 본질가치에 도달하면 매도하니, 급등한 주식을 끝까지 들고 가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이 방식이 더 좋다. 주식은 복리를 누릴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포트폴리오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유동성도 뛰어나다. 시장 상황에 따라 즉시 리밸런싱할 수 있고, 자금이 묶이지 않는다. 양도소득세도 유리하다. 한국 주식은 아무리 벌어도 양도소득세가 0원이다. 호주도 1년 이상 보유하면 세금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반면 부동산은 세금이 무겁고 유동성이 떨어진다. 급전이 필요해도 곧바로 팔리지 않고, 팔더라도 세금과 거래비용으로 손실을 본다. 기회가 와도 움직이기 어렵다.
결국, 부동산 투자에서의 15배 수익은 엄청난 배짱과 리스크 감수가 필요하다. 가치투자는 다르다. 적게 벌더라도 오래 버티고, 무너지지 않는 쪽을 택한다. 찰리 멍거가 말한 "한 번만 부자가 되라"는 태도에 가깝다. 부를 꾸준히 유지하려면 리스크를 잘라내야 한다.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하이브리드 전략을 취한다. 주식은 기초 체력이고, 부동산과 사업은 근육이다. 주식으로는 꾸준히 복리를 쌓고, 부동산과 사업으로는 한 번에 큰 현금을 만든다. 그 현금을 다시 주식에 재투자한다. 예컨대, 레버리지를 최소화한 포지티브 기어링 구조의 임대용 부동산을 2채 정도 보유한다. 수익률은 낮지만 스트레스도 적다. 관리 역시 전문 업체에 맡긴다. 이렇게 확보한 고정 소득은 다시 주식 포트폴리오로 들어간다. 그 포트폴리오의 30%는 현금성 자산으로 구성하고, 오프셋 계좌에 둬 대출 부담을 줄인다. 이 전체 구조는 하나의 유기적인 시계처럼 맞물려 움직인다.
남의 15배 수익에 눈이 팔려 내가 잘하는 것을 잊을 필요는 없다. 주식은 내 주종목이다. 대신 나는 부동산과 사업을, 보완재로서 조심스럽게 활용할 수 있다. 너무 욕심내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지 않으면 된다. 큰 돈은 어렵지만, 오래가는 돈은 만들 수 있다. 그것이 내 우선순위다. 단기적 부자가 될 기회를 쫓기보다, 오래 버티는 사람으로 남겠다. 워렌 버핏의 말처럼, 내 능력의 범위 안에서만 움직이기로 했다. 그게 더 멀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