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단골 카페에 나왔다. 이곳은 일본 잡지 몇 가지를 구독한다. 손님은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오늘은 랩탑을 펴기 전에 잡지 두 권을 훑어봤다. '뽀빠이'와 '브루투스'다. 둘 다 패션지다. 여러 패션과 아이템을 보며 나 자신의 옷 취향을 돌아봤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는 옷의 목적이다. 이전엔 자아표현의 목적이 컸고, 이제는 이미지 메이킹의 목적이 크다. 안전한 사람,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을 표방한다. 그러기 위해선 모난 구석이 있으면 안 된다. 모난 구석은 상황에 따라 특별함으로도 읽히겠지만, 대체로 관계의 초반에는 장벽이 된다. 인간은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을 경계한다. 경계심을 낮추려면 익숙하고 무난한 모습을 연출할 필요가 있다. 이전엔 내가 얼마나 특별하고 훌륭한 패션 감각의 소유자인지 드러내고자 했다. 이제는 얼마나 평범한 사람인지 드러내려 한다.
모나지 않은 복식을 추구한다. 그 복식은 말한다. ‘이 사람이 상식이 있고, 물길을 거스르지 않으며, 행동이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 있다.’ 개성 있는 차림은 상대에 따라 예측 범위를 벗어난 신호로 읽히기도 한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나 인간을 보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떻게든 이해의 범주에 두고자 한다. 범주 밖에 있는 사람을 한정된 소스로 해석하려니 지친다. 가까이 하지 않는다. 내게 있어서 관계는 중요하다. 타인은 내 인생의 전부라 해도 다름이 없다.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타인으로 하여금 자아를 깨닫는다. 기준이 없다면 규정도 없다. 결국 타인과 잘 사는 것이 내 삶의 제1 목표다. 옷은 이 목표 달성에 도움을 주는 수단이다.
다른 변화는 미니멀 삶 지향이다. 나는 물건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타입이다. 물건이 너저분하게 쌓여 있고, 한가득 공간을 채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 기가 빨린다. 통제 범위 안에 두려 한다. 내 생산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 두려 한다. 이런 생각은 최근 더 심해졌다. 그래서 물건을 최소로 구매하려 하고, 들여온 것보다 더 많이 처분하려 한다. 집의 여유 공간을 늘리는 것이 목적이다.
미니멀한 삶, 미니멀한 옷장을 추구하며 쇼핑 습관이 생겼다. 3번 묻는다. 내게 꼭 필요한지 묻고, 겹치는 아이템이 있는지 묻고, 집에 있는 옷보다 더 마음에 드는지 묻는다. 이전엔 하나의 장점이 쇼핑의 충분조건이 됐다. 이제는 몇 가지 필요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다. 결국 보수적인 시선을 갖게 만든다.
브랜드 로고가 밖으로 보이는 옷을 지양한다. 유행하는 브랜드의 옷은 멋지다. 지금 이 순간 모두가 욕망하는 그것이기 때문이다. 갖고 싶은 소재와 형태의 옷에 유행하는 브랜드의 로고가 박힌다. 매력은 플러스 알파가 된다. 유행은 언젠가 끝난다. 유행 주기는 짧아졌다. 어제 모두가 욕망했던 브랜드의 로고는 내일 과장된 표식이 될 수 있다. 보통 로고는 가격에 프리미엄을 붙인다. 두 가지 불이익이 생긴다. 웃돈 얹어 샀는데 입기도 싫다. 오늘 입은 옷 내일도 입으려면, 로고가 보이지 않는 편이 안전하다.
다만 원형에 가까운 제품의 로고는 예외로 둔다. 그것은 과시가 아니라 형식의 출처를 알려주는 최소한의 표식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청바지는 리바이스 501, 카라 티셔츠는 라코스테의 폴로 셔츠. 리바이스의 백포켓 스티치, 손톱 크기의 라코스테 로고 정도는 허용 범위다. 세대를 건너 살아남았다. 유행과 무관하게 입을 수 있다. (의류와는 결이 다르지만, 시계까지 포함하면 롤렉스처럼 전통 모델이 있다. 이 범주는 별개로 본다.)
유별난 소재와 핏의 옷을 지양한다. 예전엔 핏을 변주하는 옷을 좋아했다. 이를테면 꼼데가르송의 알라딘 바지, 밑위가 긴 속칭 똥싼바지, 몇 사이즈 크게 구매한 오버핏 재킷 등. 얼핏 보면 무난한데, 자세히 보면 개성을 드러내는 옷이다. 이젠 자세히 봐도 무난한 옷을 추구한다. 아방가르드는 전위다. 말 그대로 기존 형식을 흔들겠다는 태도다. 물결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나의 의도와는 멀다.
구매할 수 있는 옷의 개수를 한정하다 보니, 한 번 사서 오래오래 잘 입을 옷을 찾게 된다. 좋은 소재로 만든, 내 몸에 딱 맞는 옷이다. 가장 기본적 형태에 부합하는 옷이 좋다. 그 장르의 원형에 가까운 옷을 찾게 된다. 물론 중세 복식사까지 가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 시대 사람들이 공유하는 옷의 기본 형태에 가까운 디자인과 소재를 찾는다. 치노바지라면 면 100%의 턱이 잡힌 바지를 찾는다. 재킷이라면 기본 형태에 맞는 라펠 크기, 형태, 포켓 배치, 총장 등을 고려한다. 니트도 울 100% 혹은 캐시미어 혼방 소재로 만든 기본 형태를 구매한다. 여기서 팔과 전체 기장이 맞는지 확인한다. 몸에 잘 맞고, 천연 소재를 사용했고, 기본 형태에 가깝다면 구매한다.
이 기준이 절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옷은 결국 맥락과 취향의 합이다. 어떤 날은 로고가 필요하고, 어떤 날은 무지 티셔츠가 더 낫다. 다만 내 일상에서 피로를 줄이고 관계의 마찰을 낮추는 쪽을 기본값으로 두려 한다. 예외는 숨구멍이다.
덧붙이자면 원칙주의자가 되지는 않는다.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도 나와 있듯이, 자신을 너무 억압하면 반작용이 생긴다. 적당히 숨 쉴 공간을 안배하는 것이 오래 가는 길이다. 내가 세운 원칙에 미묘하게 어긋나더라도 잘 쓸 수 있겠단 확신이 있다면 구매한다. 가까운 예로 무신사의 슬랙스가 있다. 원래라면 레귤러핏의 울 100% 소재를 산다. 허벅지가 두꺼운 편인 내게 일반 스트레이트핏보다 턱이 있는 와이드핏이 편하다. 그리고 옷 입을 때 더 맵시가 있다. 약간의 신축성이 있고 튼튼한 폴리 혼방도 고려할 여지가 있다. 특히나 무게감 있는 슬랙스라는 옷의 허들을 낮춰 일상적으로 입도록 도와준다. 회색과 검정색 슬랙스 하나씩 구매했다. 일 년 중 절반은 이 두 바지를 돌려 입는다. 단정해 보이면서도 튼튼하고 편해서 손이 간다. 내 일상과 취향을 고려해 약간의 변주를 허용한다. 융통성은 일상을 편하게 만든다.
옷을 입으면 자신감이 생긴다. 전사들이 전투복을 입는 기분이 이럴까. 손톱 발톱을 깎고, 눈썹과 수염을 정리한다. 머리를 깔끔하게 손질한다. 체형에 잘 맞는 슬랙스, 울 스웨터, 부드러운 가죽 구두, 캐시미어 코트를 입는다. 몸에 잘 맞아 단정하면서도 편하다. 모나지 않다.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유발하지 않는다. 사회의 룰에 잘 따르는 시민1을 연출한다. 차림새로 인해 불이익 받지 않을 거란 판단이 선다. 사회가 요구하는 범위 안에서 단정하게 선다. 물결을 거스르지 않고, 인파 속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