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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머티브 메일

by 띤떵훈

요즘 SNS에는 ‘퍼포머티브 메일(performative male) 되는 법’을 알려주는 콘텐츠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이는 단순히 신세대 남성을 분류하는 밈을 넘어, 하나의 사회적 통과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정해진 아이템과 행동 양식을 따르기만 하면 누구나 이 의식에 참여할 수 있다. 말차 라떼, 유선 이어폰, 에코백, 필름 카메라, 그리고 어려워 보이는 책 한 권. 이 조합을 SNS에 기록하면 완성이다. 이 의식의 본질은 ‘보여주기’ 에 있으며, 그 뒤에는 복잡한 사회적 심리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모든 행위의 전제는 ‘굳이’ 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의도적인 불편함의 선택이다. LP를 예로 들어 보자. 스트리밍 서비스가 음질, 편의성, 비용 모든 면에서 우세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LP를 선택한다. 판을 구하고, 플레이어를 설정하며, 10~15분마다 일어나 레코드를 뒤집는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한다. 퍼포머티브 메일은 바로 이런 ‘굳이’의 미학을 일상 속으로 끌어들인다. 근사한 불편이다. 물건이 가진 세련된 이미지가 실제 불편함을 상쇄하는 순간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현상이 단순한 모방을 넘어 콘테스트화되었다는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의도적으로 이 스타일을 더욱 과장되게 따라하고, 누가 더 '완벽한' 퍼포머티브 메일인지를 두고 경쟁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보여주기 문화에 대한 풍자이자 반발의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마치 "이렇게까지 보여주기에 집착하는 모습이 우스우니, 아예 더 극단적으로 따라해 보자"는 식의 자기반성적 유머인 셈이다.



각 아이템은 나름의 진입 장벽을 통해 소비자의 의지를 시험한다. 말차 라떼는 그 떫은맛과 높은 가격으로, 유선 이어폰은 현대적인 무선 기술과 대비되는 불편함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에코백은 친환경적 이미지를 내세우지만, 이미 가방이 여러 개 있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소비의 역설을 드러내기도 한다. 필름 카메라와 종이책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디지털 효율성을 거부하는 동시에, 그 선택을 통해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가 된다.



이 모든 행위의 중심에는 연출이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연출이 실제 취향을 앞서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나는 이것을 좋아한다”보다 “나는 이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라는 식의 정체성 구축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SNS는 이러한 연출을 증폭하는 장으로 작용한다. 이미지의 전복이다. 많은 이들이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해 취향을 소비하는 시대다. 진정한 사용가치는 종종 교환가치 뒤로 밀려난다.



나의 경우를 이야기해 보자. 나는 효율적인 삶을 지향한다. 옷장은 최소한의 아이템으로 꾸려졌으며, 로고보다는 오래 입을 수 있는 기본템을 선호한다. 말차 라떼 대신 롱블랙을 마시고, 무선 이어폰을 사용하며, 에코백 대신 이미 있는 가방을 오래 사용한다. 그러나 나 또한 완전히 기능만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시계나 안경처럼 개성과 상징이 담긴 소품을 선택하기도 한다. 다만, 그 선택에는 항상 ‘왜?’ 라는 질문이 수반된다. 내가 그것을 진정으로 원해서인지, 아니면 단지 그렇게 보이기 위해서인지. 그 경계를 의식적으로 가르는 노력이 필요하다.



퍼포머티브 행위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연출은 필수적인 기술이기 때문이다. 면접에 입는 정장, 장례식의 검은 옷, 중요한 자리에서의 단정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 모두는 일종의 퍼포먼스이다. 문제는 그 퍼포먼스가 실제 자아를 잠식할 때 발생한다. 하루의 에너지가 보여주기에 집중되면, 정작 자신의 삶은 공허해지기 쉽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의 밸런스다. 나는 가능한 한 실제 사용가치를 먼저 고려한다. 연출은 그 다음이다. ‘굳이’가 떠오를 때면 늘 이유부터 묻는다. 그 이유가 빈약하다면, 과감히 내려놓는다. 이미지가 실재를 압도하지 않게 말이다. 그 경계를 지키는 것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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