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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더링과 위닝 멘탈리티

by 띤떵훈


위닝 멘탈리티. 한국어로 단순 번역하면 ‘성공하는 뇌’쯤 될 것이다. 말뜻은 더 깊다. 작은 성공의 경험을 축적해 스스로를 신뢰하게 만드는 것, 그 신뢰가 다시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가리킨다. 결국 승리는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반복된 체험 속에서 길러지는 습관이다.





작은 습관의 힘을 말하는 책들에서도 비슷한 메시지를 던진다. 달성 가능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며, 그 과정을 지켜내는 것. 입 밖에 낸 말을 지켰다는 자각이 신뢰로 바뀐다. 자기 신뢰는 만족감을 키우고, 만족감은 새로운 도전을 이끈다. 그렇게 조금 더 진취적인 인간으로 거듭난다. 말로는 간단하지만, 실제로 몸으로 경험해야 비로소 뼈에 새겨진다.





내게는 볼더링이 그 경험의 무대다. 클라이밍 짐에는 총 여덟 가지 난이도의 문제가 있다. 지금은 네 번째 단계, 초록색 홀드가 주는 문제들을 하나둘 풀고 있다. 여기에 도달하기 위해 1단계부터 3단계까지 수없이 반복해야 했다. 초록에 오르기 전, 나는 늘 낮은 레벨 문제로 몸을 풀었다. 웜업이자 복습, 동시에 자신감을 쌓는 과정이었다. 이미 풀어본 문제를 다시 푸는 일은 심리적 장벽이 낮다. 몇 개를 연속으로 클리어할 수도 있고, 그 안에서 새로운 동작이나 발 스텝을 시도할 여유도 생긴다. 반복은 지루함이 아니라 변주였다. 그 과정에서 문제들이 점점 더 쉬워졌다.





그렇게 준비하다 보면, 전에는 엄두도 못 냈던 초록 문제가 조금씩 풀린다. 최근에는 몇 차례 플래시, 그러니까 첫 시도에 바로 성공한 경우도 있었다. 초록 문제에 집중하다 보니, 오히려 아래 단계의 문제들이 훨씬 단순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손쉽게 풀어낸다. 각 레벨에는 고유한 기술이 숨겨져 있다. 예를 들어 손가락 끝으로만 잡아야 하는 홀드는 초록 단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이전에는 접할 기회조차 없던 동작이다. 지금은 그 홀드에 매달려 가능성을 시험한다. 더 높은 단계, 다섯 번째 문제도 도전한다. 대체로 여전히 버겁지만, 가끔은 손에 잡힐 듯한 가능성이 보인다.





오늘도 짐에 갔다. 한동안 무섭다고 방치했던 초록 문제를 다시 시도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해결했다. 예전 같으면 택도 없다고 생각했을 문제다. 그러나 세 달 반 동안 이어진 훈련이 판을 바꿔놨다. 동호회 회원들이 성장 속도가 빠르다며 칭찬해줬다. 사실 운동을 꾸준히 해온 이력이 밑바탕에 있다. 철봉을 즐겨 했는데, 그 근력이 클라이밍에서 고스란히 쓰인다. 볼더링 전에는 스트레칭과 행보드로 손가락 힘을 기른다. 기본 피지컬이 점점 보강되고, 덕분에 도전할 수 있는 영역도 넓어진다.





문제를 풀어내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갈래가 있다. 하나는 테크닉, 다른 하나는 피지컬이다. 적절한 풋 스텝과 무게 이동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있고, 반대로 팔과 손가락 힘으로 억지로 버티며 뚫는 방법이 있다. 이상적으로는 기술이 우선이지만, 힘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동선을 잡아도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 반대로 힘만으로는 인간의 관절 구조상 불가능한 자세도 있다. 그래서 결국 테크닉과 피지컬은 함께 맞물려야 한다. 예전에는 올바른 동선을 알고도 힘이 부족해 실패하던 문제들이 있었다. 지금은 하나둘 풀리고 있다. 지구력이 붙고, 팔에 굳은살이 배기고, 몸이 점점 문제에 맞는 형태로 변해간다. 피지컬이라는 장애물이 조금씩 걷힌다.





그 과정에서 깨닫는다. 위닝 멘탈리티가 생긴다. 어제까지 불가능하던 동작이 오늘은 가능한 동작이 된다. 그 작은 차이가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승리의 경험이 나를 앞으로 끌고 간다. 문제 하나를 해결할 때마다 자신을 향한 신뢰가 늘어간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졌다는 사실이 쌓인다.





네 번째 달에 접어든 지금, 나는 여전히 초보 클라이머다. 그러나 승리의 역사를 조금씩 써 내려가고 있다. 위닝 멘탈리티란 결국 이런 것이다. 작고 사소한 승리의 기록들이 이어져 하나의 서사를 만들고, 그 서사가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한다. 언젠가 정체기가 올 것이다. 그땐 또 좌절할 테고, 벽 앞에서 멈출지도 모른다. 하지만 승리의 역사는 벽은 언젠가 무너질 거라 말한다. 작은 승리가 이어질 때마다, 나는 나를 더 신뢰한다. 그 신뢰가 삶 전체를 밀어올린다. 결국 위닝 멘탈리티는 볼더링 체육관 안에서만이 아니라, 일상 전반에서 든든한 무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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