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브형 아이스크림 반 통을 비우고 낮잠에 들었다. 전기장판을 최대로 올려 불구덩이처럼 뜨거운 잠자리였다. 전날 밤에 충분히 수면을 취했다. 과수면, 유제품과 설탕 과섭취, 비정상적인 수면 온도가 더해져 꿈나라의 안내원이 됐다.
신화 멤버 분쟁 발발: 나는 1세대 아이돌 그룹 신화의 멤버다. 나 홀로 머물던 타운형 고급 리조트 호텔에 신화 멤버들이 모였다. 나와 에릭, 앤디 셋은 중앙 공용 공간에 있다. 나는 노래방 기기로 노래를 불렀다. 거기서 신화의 콘서트 실황이 나왔다. 웅장한 무대였고, 좋은 영상 업체를 사용해 때깔 좋은 영상이었다. 카리스마 리더로 잘 알려진 에릭의 낯빛이 푸르게 변했다. 앤디는 에릭의 폭발을 걱정하는 눈치였다. 이내 에릭은 내게 화를 냈다. 너 정신이 있냐, 이 영상이 우리에게 얼마나 상처인지 잊은 거냐고 말했다. 노래방 기기의 특성상 재생되는 영상을 선곡자 의도와 무관하다. 아무튼 그룹에 상처를 준 영상이 재생되게 방치한 것은 내 책임이므로 사과했다.
내부자 배신: 사과 후에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느새 멤버가 하나 둘 모였다. 전진에게 상황을 들었다. 내부자 누군가가 저 공연의 수익 일체를 횡령했단다. 신화 및 회사 전체에 엄청난 피해를 줬다. 나는 모두에게 상처가 되는 사건을 들춰낸 데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곧바로 전진이 한 사진을 보여줬다. 이 사람 알아? 프로필 사진을 보여줬는데, 어떤 방의 모습이었다. 기시감이 들어 가까이 들여다보니 그 곳은 우리 어머니 생전에 쓰던 방이었다. 나는 이 프로필을 쓰는 사람이 우리 어머니임을 밝혔다. 긴가민가 했지만 몇 번 더 생각해 보니 어머니가 분명했다. 어머니가 그 횡령범이냐 물었다. 전진은 답했다. 우리 어머니는 횡령범이 아닌, 신화 이미지를 실추한 주범이라고.
어머니의 신화 이미지 실추: 어머니는 유명한 악플러였다. 눈치를 전혀 보지 않았다. 신화를 위해 온라인 세상 전역을 누리며 댓글로 분쟁을 일으켰다. 아들의 그룹이 잘 돼야 한다는 일념으로 온라인에서 거친 언사를 쏟아냈다. 이 과정에서 다른 그룹을 공격하거나 악플러에게 악플로 응수했다. 일련의 활동이 한 사람 소행인 게 밝혀지면서 신화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나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가졌다. 어머니를 향한 연민, 신화 멤버들을 향한 죄스러움. 어머니는 병상에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자식을 위해 싸웠다. 가난과 암에 시달리는 몸으로 자식을 지켰다. 온라인 세상엔 가난과 육신의 제약에서 자유롭다. 효율적으로 댓글 공작을 펼치지 못 한 점이 어머니 답다고 생각했다. 그런 투박함이 꾸미지 않은 어머니의 사랑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현실의 피해를 본 멤버들에게 미안함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도였다.
사과: 신화 멤버들을 중앙 공용 공간으로 멤버를 불러 모았다. 멤버 여섯이 빙 둘러앉았다. 나는 그들에게 할 말이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로 인해 우리 그룹이 피해를 본 점을 정식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무릎 꿇고 절을 했다. 다시 일어나서 고개를 숙인 채로 동작을 멈췄다. 다리가 몹시 흔들리면서 균형을 잡기 힘들었다. 중요한 자리에서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난처했다. 그간 클라이밍을 열심히 해서 전신 근육이 튼튼해졌다. 너무 상체 위주로 훈련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하체 근력에 신경을 써서 나중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하겠다 다짐했다. 다리는 출렁다리처럼 흔들거리고, 나는 중심을 잡기 위해 발을 부지런히 놀렸다. 넘어지려는 쪽의 발을 옮기면서 중심을 잡았다. 이 정도 단순한 동작에 휘청거리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멤버들이 나의 진심을 오해하지 않을까 염려됐다. 다행히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고 진심을 받아줬다.
숙소 체크 아웃: 사과를 마치고 개인 공간으로 돌아왔다. 호주로 귀국하기 위해 짐을 쌌다. 짐은 기내 반입이 되는 소형 캐리어 하나가 전부다. 파트너가 챙겨 오라며 남겨둔 짐이 몇 개나 있었다. 하나하나 부피가 커서 도저히 내 캐리어에 담을 수 없었다. 파트너의 짐인데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물건들이었다. 남의 물건에 나의 유년시절이 담겼다.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고민하던 차에, 밖에서 멤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비행기 시간을 착각했다는 한탄이다. 나도 비행 일정을 잘못 짰을 수 있다. 지금은 9월 12일 오전 10시고, 비행기 티켓은 13일 오전 10시여야 했다. 12일 비행기라면 나는 이미 항공 편을 놓친 셈이다. 핸드폰을 꺼내 애플 월렛을 켰다. 월렛에 저장된 비행기 티켓을 보니 다행히 13일이다. 한숨 돌리고 다시 스크린을 보는데, 13일이 아닌 19일이다. 귀국편 날짜 설정을 한주 밀어서 한 탓이다. 달력에서 귀국편 날짜를 선택할 때 마우스 커서가 한 칸 아래를 클릭한 듯하다.
야만족의 습격: 일주일을 어디서 보내야 하는지, 짐은 어떻게 들고나가는지 고민하던 차에 적이 습격해 왔다. 좀비와 인간의 중간 형태인 존재로 우리를 제거하기 위해 떼로 몰려왔다. 내 숙소엔 호텔 조식뷔페가 차려져 있었다. 그들은 굶주렸고, 숙소로 들어오기 위해 철창이 달린 문을 부수고 있다. 문이 부서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나는 안전한 도주를 위해 적군 수를 줄이기로 마음먹었다. 보온 워머에 담긴 음식물에 스프레이로 독극물을 분사한 뒤, 그것을 손으로 한 움큼 집어 철창 밖으로 던졌다. 야만족은 음식에 달려들어 게걸스럽게 집어 먹었다. 이내 괴성을 지르며 음식을 먹은 존재들이 나자빠졌다. 철창이 무너지려고 하자, 준비된 음식 전체에 독극물을 분사했다. 그들이 우리를 죽이러 오기 전에 음식에 먼저 들를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야만족 대장은 지능이 어느 정도 있다. 음식에 독을 분사하는 내 모습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문이 무너지고 야만족 무리가 숙소로 들이닥쳤다. 나는 반대쪽 입구로 몸을 날렸다.
꿈에서 깼다.